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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889975
1992년 대선 직전에 터진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의 배후조종자로 활약하다 북한으로 귀환한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李善實)
이 84세를 일기로 지난해 8월 7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북한 고위 간부들의 최근 신상변동 현황' 을 보고하면서 "李씨가 지난해 8월 심장병이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밝힌 바 있으나 날짜까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평양의 애국열사릉을 둘러보고 온 한 해외동포는 "애국열사릉의 가장 뒤쪽 신설묘역에 이선실의 묘가 있었다" 며 묘비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은 대남사업 고위 간부라는 李씨의 신분을 감안해 사망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李씨는 북한 고위인사로는 드물게 남파돼 활동했으며 특히 재야와 운동권 학생.야당 인사 등과 접촉하며 중부지역당 결성을 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당 정치국 후보위원(당 서열 19위)
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으나 묘비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 으로 돼 있다.



한편 70년대 노동당 대남연락부장을 지낸 고위 간부 정경희도 96년 6월 4일 68세로 사망해 애국열사릉에 묻힌 것으로 확인됐다.



정창현 기자 <jchmin@joongang.co.kr>



안기부에 따르면 이선실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서열 22위. 그는 66년 이후 3차례에 걸쳐 국내로 들어와 직파 간첩 10여명을 지휘, 남한내 북한 공작지도부를 구축했다는 게 당국이 발표한 내용이다.


구속자만 62명에 이르고 수배자가 300명에 달하는 등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이라 불리며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와 민중당내 지하지도부를 구축해 간첩활동을 한 손병선씨, 민중당 전 공동대표 김낙중씨, 전 민중당 정책위의장 장기표씨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43733&C_CC=AZ

1992년 10월 발표됐던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은 건국 이후 최대간첩사건으로 분류된다. 북한은 당시 조선로동당 서열 22위 간첩 이선실을 남파, 95년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하에 남한에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 등을 구축했다.
  
  당시 안기부가 밝힌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선실은 4·3 제주폭동 유가족을 칭하고 재야단체와 민중당 등에 접근, 민중당 대표 김낙중·민중당 조국통일위원장 손병선 등으로 하여금 운동권과의 연대투쟁 공간을 마련하고, 연방제 통일 실현을 위한 ‘상층부 통일전선공작’에 주력하도록 했다.
  
  이선실은 과거 남로당과 같은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1980년 舍北(사북) 사태를 주동한 바 있는 황인오를 포섭, 강원 및 충남·북 일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한 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위장명칭·민족해방애국전선·이하 민애전)을 구축했다,
  
  안기부는 북한이 민중당에 침투시킨 간첩 김낙중·손병선 일당 여섯 명과 ‘남한 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직원 400여 명 중 총책 황인오 등 124명을 검거, 이 중 68명을 간첩·反국가단체 구성 혐의 등으로 구속, 송치하고 잔당을 추적 중이다. 同수사과정에서 권총, 수류탄 등 각종 무기류와 무전기, 亂數表(난수표) 및 공작금 100만 달러 등 총 149종 2399점에 달하는 공작금품을 압수했다>

  
  ▪ 간첩 이선실은 80년 3월경부터 90년 10월까지 10여 년 간 남북한 및 일본을 왕래하며 북한에서 직파된 공작원 10여 명과 함께 대남공작을 지휘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90년대 초부터 김낙중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주도하며 민중당 내 핵심당원들을 포섭했다.
  
  ▪ 간첩 김낙중은 1955년 월북 후 남파, 36년간이나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며 북한에서 총 210만 달러(한화 16억 원 상당)의 공작금을 받아왔다. 이중 쓰고 남은 1백만 달러는 권총·독총 등 공작 장비와 함께 그의 집 장독대 밑에서 발견됐다.
  
  김낙중은 이 공작금을 통해 이우재 등 14대 총선 때 민중당 후보로 출마한 18명에게 선거자금으로 제공하는 등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한 내 합법적 친북전위정당 건설을 기도했다.
  
  김낙중은 대남공작의 업적을 인정받아 북한으로부터 91년 10월 ‘김일성 공로훈장’ 91년 12월 ‘민족통일상’을 받았고, 김일성이 특별히 보낸 산삼과 녹용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 간첩 황인오는 이선실에게 포섭돼 1990년 10월17일 월북, 간첩교육을 받은 뒤 같은 달 23일 남한으로 돌아왔다. 황인오는 半(반)잠수정에 탑승해 북한에 도착한 뒤 평양에서 김일성 동상·만경대·주체탑·혁명열사릉 등을 참배(?)하고 김일성·김정일 찬양 영화 및 임수경 체북 기록영화 등을 관람했으며 주체사상 등 사상교육과 권총 사격훈련 등을 받고 조선노동당에 정식 입당했다.
  
  남한에 돌아온 황인오는 포섭대상자들에게 권총·무전기 등을 보여주고 북한의 ‘담보방송(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지령방송)’을 청취시켜 자신이 북한과 직접 연계돼 있음을 확인시켰다. 황인오는 같은 방법으로 이철우 前열린우리당 의원 등 주사파 12명을 포섭해 입당식을 가졌다. 황인오는 이를 북한에 보고한 뒤 간첩지령용 A-3방송을 통해 조선노동당원으로 승인을 받았다.
  
  황인오 등은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한다’는 내용의 노동당 규약과 김일성에 충성을 다짐하는 맹세문을 채택했다. 관련자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조직원들이 남한 현지에서 입당했던 이른바 ‘현지입당’ 절차는 이러하다.
  
  <입당 대상자는 황인오 등 입회자와 함께 중앙에 서서 노동당기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향한다. 입회자가 “‘조선 노동당’강령과 규약을 승인하였으므로 지금부터 입당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선포. ‘赤旗歌(적기가)’와 ‘수령님께 바치는 충성의 노래’ 제창. 오른손을 들고 ‘맹세문’ 낭독. 맹세문 내용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조선이 치켜든 찬란한 주체의 횃불에 따라 장엄한 역사적 진군을 시작하는 성스러운 이 시각에 나는 조국과 민중 앞에 숭고한 사명을 심장깊이 새기며 영광스런 우리 전선과 수령님 앞에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1.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1. 나는 전선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1. 나는 한국 민중의 애국적 전위이다.
  1. 나는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중의 벗이다.
  1. 나는 목숨 바쳐 전선과 혁명을 지킨다”
  
  맹세가 끝나면 입회자가 “조선 노동당 당 중앙의 위임에 따라 동지의 조선 노동당 입당을 허가함을 선포한다”고 말하고 입당자에게 당원 부호(대둔산 ○호)와 조직內에서 통용하는 조직명(가명)을 부여. 이어 입회자가 “오늘 동지의 맹세가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바란다”고 다짐한 후 “우리의 임무는 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도 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 지도부 성원이다”라고 고지. 입당자와 입회자 간에 악수를 나눔>

  
  92년 김낙중·황인오 등이 검거된 후 이른바 좌파의 석방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98년 4월에는 고영구 前국정원장, 강만길(前상지대 총장), 윤성식(前 사월혁명연구소장), 리영희(前한양대 교수), 홍근수(前향린교회 목사), 이창복(前국회의원), 강정구(前동국대 교수), 이장희(한국외대교수), 김금수(前노사정위 위원장 ), 박순경(자주민족화해 자주평화통일 상임고문), 박형규(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용길배우 문성근 모친) 32명이 발기하여 ‘평화주의자 김낙중 석방대책위원회’를 결성, “김낙중은 민족화해와 평화적 민족통일의 기수이므로 그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대중 정권은 김낙중·황인오 등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의 주범들은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모두 석방했다.
  
  김낙중은 석방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양심수(?) 석방’을 주장했다. 그는 이후에도 통일운동가라는 직함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1년 12월 ‘디지털 말’지에 실린 ‘겨레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북한이 남침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비합리적 생각이며, 오히려 한·미·일 공조체제의 이름으로 북한을 목 조르는 정책은 평화적 통일을 방해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요지의 글을 실었다.
  
  남한 조선로동당 사건에 연루된 이철우 前열린당 의원은 93년 7월8일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 후 한탄강 댐건설 반대를 위한 시민운동 등을 벌여오다 99년 2월25일 특별복권됐고,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됐었다.
  
  트위터 : @Ourholykorea


남파간첩 이선실 資料

차례
1. 거물남파간첩 이선실의 실체
□ 이선실의 신원을 밝히게 된 경위
□ 이선실의 신원
□ 신순녀로 국내입국 합법신분 구축

2. 국내 활동상황
□ 김옥기와 동거, 비판적 언동
□ 정치인 관련내용
□ 김옥기에게 선물제공, 환심유도
□ 문익환 집안과 친교
□ 신원미상 키큰 할머니를 김옥기에게 소개
□ 진보정당 모임 관여
□ 황인오·손병선 포섭, 간첩교육
□ 『영웅』칭호 수여

3. 이선실 국내 활동자금 증식 상황

4. 북한에 복귀 후 상황

1.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의 실체
〈이선실의 신원을 밝히게 된 경위〉
□ 안기부에서는 1992년 8월 말경부터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중부지역당 총책인 황인오(36세)로부터
-지난 1990년 10월17일 남파간첩 이선화, 권중현, 김돈식과 함께 강화도에서 반잠수정으로 월북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해주를 거쳐 평양 순안비행장에 가니까 북한의 대남공작 부서인 사회문화부 부장 리창선 등 고위인사들이 직접 영접하여 극진한 환영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선화는 환영식장에서 보니 리창선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이선화는 키가 약 155cm정도 되고 머리는 반백이며 금테안경을 끼곤 했다.
라는 내용의 진술을 확인하였다.

□ 한편 안기부에서는 공개할 수 없는 각종 첩보 및 정보자료를 통해 황인오가 진술한 『이선화』는 지난 1980년 이후 북한언론 등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 9월9일 북한정권 수립 44돌 행사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권력서열 22위로 발표된 이선실』과 동일인임을 밝혀내고 이선실이 1980년 이후 행적이 전혀 없다가 1990년 10월 복한으로 복귀 후 1991년 1월에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점으로 보아 황인오와 함께 입북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간첩으로 암약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 그래서 1992년 9월18일경부터 이선실의 남파 기간중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전담 수사팀이 12명 4개조로 편성되었다.

□ 먼저 전담 수사팀은 이선실의 남파 기간중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황인오를 직접 신문했다. 그때 황인오로부터
-이선화를 그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1990년 9월경 남파간첩 권중현(50대)을 대방전철역 부근에서 만나 함께 장승백이로 걸어간 일이 있는데 그때 권중현이 대방동의 한 주택가를 손으로 가르키며
·우리가 할머니(이선화 지칭)와 함께 살고있는 집이 이 근처에 있는 2층집이다.
·2층에 방 3개를 전세로 얻어 살고 있는데 그중 방 1개를 가난한 모녀에게 주어 같이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대문에는 「방범순찰함」이 부착되어 있어 수시 경찰관들이 대문 앞에 오기 때문에 우리를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라고 한 일이 있다.
는 내용의 진술을 받아냈다.

□ 9월20일 오전 10시경부터 수사팀은 직접 황인오를 데리고 대방전철역 부근에서부터 노량진의 장승백이로쪽으로 도보로 걸으면서 권중현이 가르켰던 주택가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 일대 주택가의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을뿐 아니라 황인오 자신도 2년 전의 일이고 그 지역이 잘 모르는 지역이어서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 대방동 일대를 10여 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찾아보았으나 결국 문제의 주택가를 찾지 못했다.

□ 다음날인 9월21일에도 수사팀은 다시 4개조로 나누어 대방동, 노량진 2동 일대를 통·반장 등을 중심으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본격적인 탐문내사를 했으나 위 주택가는 주민들의 전·출입이 빈번할뿐 아니라 주민들이 옆집 사람을 잘 몰라 이선실 등의 남파간첩이 은거했던 아지트를 찾는데는 또 실패했다.

□ 그래서 수사팀은 황인오가 허위진술을 하고 있지 않나 해서 그를 다시 재신문하였더니 황인오는 대방동 주택가가 틀림없다고 하면서
-권중현이 어느날 『내가 살고 있는 집 부근에 개업한 목욕탕에서 준 것이다』라고 하면서 『대방사우나』라고 인쇄된 볼펜 1자루를 준 일이 있다.
는 내용의 추가진술을 얻어내고 9월23일 경 수사팀을 2개조로 편성, 한 팀은 동사무소, 구청 등에 가서 대방동, 노량진 일대 목욕탕중 상호가 『대방사우나』로 되어있는 곳을 찾는 한편 다른 한 팀은 직접 현지에 나가 『대방사우나』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그날 오후 1시쯤 직접 현지에 나가있는 팀이 문제의 『대방사우나』를 찾아냈다. 그래서 수사팀은 직접 목욕탕 주인 김모씨를 접촉하여 개업기념으로 볼펜을 만든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개업기념 볼펜을 제작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권중현이 『대방사우나』를 이용했으면 그들이 은거했던 곳도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대방사우나』 일대 주택가를 찾아 다시 탐문에 들어갔다.
그날 오후 3시쯤 목욕탕 뒷편 주택가에 살고있던 주민 ○○○로부터
-대방동 13-61번지 2층 양옥집에 2년 전에 『신』씨라는 일본 할머니란 사람이 살았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모녀가 지금도 살고 있다.
-『신』씨 할머니는 키도 작달만 하고 머리는 반백이며 금테안경을 끼고 있다.
는 내용의 제보를 하여 즉시 대방동 13-61번지를 찾아 가보니 황인오의 진술에서처럼 그 집은 2층 양옥집이었고 대문 앞에 『방범 순찰함』이 부착되어 있었다.
수사팀은 이 집이 틀림없이 이선실이 은거했던 집이라고 확신하였다. 한편, 그때 동시에 장기표 담당 수사팀으로부터
-동인의 수첩에 신순녀 명의의 전호번호(T. 813-7063) 가 있는데 그 전화번호가 노량진 전화국 관할이니 참고하라.
는 연락을 받았다. 그 즉시 수사팀은 위 전화번호를 가지고 노량진 전화국의 협조를 받아 1990년 8월경 가입자 및 설치장소를 확인해보니 대방동 13-61로 나왔다.

□ 수사팀은 장기표 수첩에 적혀있던 전화 설치장소와 황인오 진술 나왔던 방범순찰함이 부착되어 있는 집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 그래서 문제의 13-61소재 집주인의 허락을 받은 후 2층으로 올라가서 당시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던 김점숙 모녀를 만났다. 그때 김점숙 모녀는
-같이 살았던 할머니 이름이 『신순녀』이다.
-그 할머니는 우리에게 『나는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다. 일본에는 지금도 이복동생들이 살고 있고, 고향은 전라도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할머니는 1990년 8월말쯤 건강이 안좋아 강원도기도원에 간다면서 이사를 갔으나 지금까지 한번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 할머니는 키가 매우 작고 머리는 반백이다.
라는 등의 황인오가 진술한 이선화의 용모와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 그러나 수사팀은 이선실이 이선화라는 이름을 쓸 줄로 추정했었는데 『신순녀』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대방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해보니 김점숙 모녀의 진술대로 그 집에 살았던 할머니는 『신순녀』였고 엄연히 주민등록도 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선실과 신순녀는 동인이명인지 아니면 전혀 서로 다른 별개의 인물인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만약 이선실과 신순녀가 전혀 다른 인물이라면 과연 신순녀가 누구인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 대방동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신순녀가 1980년 4월 주민등록 발급시 및 1983년 12월 주민등록 갱신시 주민등록부상에 부착해 놓은 흑백사진과 칼라사진 1매를 입수하였다.

□ 그날 밤 입수된 신순녀 사진을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황인오 및 동인의 모 전재순, 동인의 제 황인욱, 동인의 처 송혜숙 등에게 제시하자
-1990년 10월 황인오가 월북할 때 같이 간 이선화가 틀림없다.
고 하였다.

□ 수사팀은 결국 이선실과 신순녀는 동일인임을 확인하고 9월24일경부터 신순녀의 신원추적에 나섰다. 먼저 이선실이 은거했던 대방동 13-61번지에 가서 김점숙 모녀를 재접촉하여 그들로부터 이선실이 사용하다 남기고 간 악어핸드백, 카메라, 스토로보, 책자 등 총 19종 38점을 넘겨받았고 이선실이 그 집에서 사용하던 장롱, 씽크대, 냉장고, 문갑 등도 넘겨받았다.
특히 입수된 책 중에는 문익환의 처 박용길이 저술한 문익환의 옥중 서한집인 『꿈이오는 새벽녘』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989년 새해에 신순녀님께 문익환 드림』이라는 문익환의 친필 서명이 있었다.

□ 그후 실제인물인 신순녀라는 사람에 대해 신원을 추적한 결과
-신순녀는 전북 완주군 이서면 상계리 305번지 출신으로 아버지 신길서라는 분과 함께 7살 때인 1924년경 일본 고오베에 가서 살다가 정○○씨와 결혼하여 정길자(54)를 낳은 후 1960년 4월28일 제19차로 북송된 사람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연고자가 국내 및 일본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전주거주 언니 신양근(82)씨를 찾아 이선실의 사진을 제시하였더니 『진짜동생 신순녀』라는 것이었다.

□ 그래서 신양근씨에게 『어떻게 친동생인지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신순녀가 7살 때 일본으로 가서부터 서로 헤어져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생이 부모 나이와 이름을 알고 있고
-어렸을 때 언니 등에 엎혀 살았다.
-언젠가 한번 언니한테 호되게 매를 맞은 적이 있다.
라고 어렸을 때 둘만이 아는 기억이 말해주어 동생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사결과, 이선실은 남파시 북송된 신순녀의 신원 및 어릴 때 환경을 자세히 파악, 요해하여 진짜 신순녀가 어릴 때 헤어진 점을 이용, 자신이 신순녀로 위장 활동하였음)

□ 그러나 수사팀은 북송자인 신순녀가 어떻게 국내에 영주 귀국하여 살수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분명히 이선실과 신순녀는 다른 사람이고 이선실이 신순녀로 위장했을 것이란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 그래서 수사팀은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에게 서울에서 입수한 신순녀의 사진을 보내면서 긴급히 신순녀의 일본행적을 추적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9월 하순경 일본에 파견되어 있는 직원이 일본 고오베에 거주하는 진짜 북송교포 신순녀의 이복동생 신성복(57)을 만나 본부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진짜 누나 신순녀가 맞느냐고 확인한 결과 신성복으로부터
-그 사람은 가짜 신순녀이다.
-북한에 있는 누나 신순녀는 나와 함께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잘 안다.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1974년쯤인가 내가 고오베에 살고있을 때 이 사진의 인물이 나를 찾아와 저의 부모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가 너의 누나 신순녀다.
·부산에서 살다가 소화 40년에 밀항 도일하여 대판 입관에 자수하여 신순녀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외국인 등록을 했다.
·입관사람들이 네가 살고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찾아왔다.
라고 하여 처음에는 별 희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누나는 내가 얼굴을 안다. 얼마 전에 이북에서 사진과 편지도 받아보았으나 금전적으로 별다른 손해도 없고해서 이를 묵인했을 뿐 북송된 신순녀는 절대 아니다.
라는 내용을 확인하고 일본대사관 직원은 그 조사결과와 진짜 신순녀의 사진을 보내왔다. 진짜 신순녀의 사진을 보니 대방동사무소에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하면서 부착해놓은 사진과는 한눈에 전혀 달랐다. 결국 대방동사무소에 부착된 사진은 신순녀로 위장한 이선실 사진이었던 것이다.

□ 그러니까 이선실은 북송된 신순녀의 신원을 자세히 요해한 후 결국 그녀로 행세한 것이다. 그래서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가짜 신순녀로 행세한 이선실의 행적을 추적해 보니 그녀는 국민등록, 외국인등록, 모방단 입국, 영주귀국 및 국내에서의 주민등록 발급 등 일체의 서류를 완전히 신순녀로 위장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 수사팀은 결구 이선실이 북송교포 신순녀로 위장하였다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선실의 출신지, 본명 등 실체는 오리무중이었다. 단지 북에서 남파된 간첩이라는 사실외에는 그에 대한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수사팀은 계속 이선실이 은거했던 아지트를 찾아다니며 숱한 주변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이선실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얻었으나 그녀의 진짜 이름이 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단서는 얻지 못했다.

□ 한편 수사팀은 수사방향을 재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조사한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집요하고 과학적인 신문 끝에 이선실이
-1990년 7월 민중당보에 『제주도 출신 이선화 75세』라는 이름의 축시를 기고한 바 있고 국내 암약시 포섭한 국내 간첩들에게 『나는 4·3 사태때 피해를 입은 가족이며 이름은 이선화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과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국민등록 및 외국인등록을 할 때 제주출신자들을 그 보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
등 주요언동 내용 및 단서를 포착하고 틀림없이 이선실은 제주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판단, 그 무렵부터 내사에 활기를 띠고 제주 현지 수사관들과 합동으로 이선실의 신원추적에 나섰다.

□ 그리하여 제주 수사 합동팀은 약 20여 일에 걸쳐 밤낮으로 밀항자, 실종자, 월북자, 4·3 사건 연루자, 북송자를 중심으로 이선실이 남파하여 활동 기간중 사용하였던 『이선화』라는 이름과 수사팀이 추적한 결과 일명 『이옥녀, 이선녀』 등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하여 방대한 양의 자료를 추적하였다.

□ 먼저 이선실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였던 『이선화』를 중심으로 각종 자료를 검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선실과 나이가 비슷한 제주출신 『이선화』라는 이름을 10여 명 발견하였으나 현지 확인결과 우리가 찾는 이선실은 아니었다. 계속하여 같은 방식으로 『이옥녀, 이선녀』의 신원을 추적해 보았지만 결과는 역시 이선실과는 무관한 인물만이 발견되었다.

□ 그래도 제주 수사 합동팀은 이선실이 분명히 제주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다시 한번 앞에서 열거한 이름들을 검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선화와 이름이 앞뒤로 바뀐 월북자 『이화선』이 발견되어 혹시 지금까지 착안하지 못햇지만 이선화가 이화선으로 이름을 뒤바꿔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먼저 이화선의 기본 신원을 추적해보니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 552 출신으로 밝혀졌다. 대정읍 사무소에 가서 호적을 열람하였으나 이화선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아 제적부를 열람해보니 이재춘의 맏이로 등재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때부터 제주팀은 대정읍사무소 호적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이화선의 연고가족 호·제적부를 모두 열람해보니
-이화선은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 552 출신임이 밝혀졌고
-이선실이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외국인등록을 할 때 세대주로 신고한 이창해는 이화선의 6촌동생으로 밝혀졌으며
-이선실이 기 검거한 간첩 황인오(36) 및 손병선(52), 손민영(31) 등과 일본연락거점으로 약정한 『大阪市 生野區 桃谷 3-15-12』에 살고 있는 이행자(37), 송태영(36)이는 이화선의 친동생인 이치효(70)의 딸과 사위라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선실의 실체가 압축되기 시작하였다.

□ 그래서 본부수사팀은 수사인원을 보강하여 제주도 현지로 출장수사를 하게 되었고 제주팀과 합류하여 이화선의 국내 연고선 추적에 총력을 경주한 결과
-제주도에 94세가 되는 생모와 친동생이 제주도 대정읍 하모리에 그리고 시가, 외가 식구들이 서울, 제주시 등지에 많이 살고 있고 일본에도 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 따라서 친인척을 중심으로 수사를 병행키로 하고 먼저 이화선의 막내동생인 이창계(53)를 조사했더니 이창계는
-자신은 큰누나 이화선이 출가한 이후에 출생하였고 또한 어머니로부터 누나 이화선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해 이화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고 진술하였다. 이어서 생모 김경량(94)에게 신순녀로 위장한 이선실의 사진을 제시하며 『이화선』이 맞느냐고 물어보자 그 사진을 한번 쳐다보고는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진술을 거부하였다. 그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김경량이 분명히 자기딸 이화선이 틀림없음에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수팀은 약 2시간에 걸쳐 설득하였으나 결국 진술을 거부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차선책으로 이화선의 출신지인 가파도에 가서 70세 이상 되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하였다.

□ 먼저 원주민인 이화선의 5촌 외숙모 이정이(67)씨를 만나 이선실의 사진을 제시하자
-화선이가 많이 늙었구나
-이마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깊이 패어 있는 등 어릴 때 이화선의 이목구비와 틀림없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화선의 얼굴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고 하였고,
이화선과 동갑인 원주민 강옥선(76세)을 만나 이선실의 사진을 제시하지 그 할머니 역시
-키가 작고 얼굴과 입 모양이 어릴 때 이화선의 모습과 똑같다.
-지난번 간첩사건 발표 때 TV를 보고 이선실이라는 사람이 이화선과 많이 닮았구나 하고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고 하였고,
이화선의 고향선배인 김창화(80세)는
-이화선은 키가 작았는데 사진을 보니 비슷하다.
고 하였으며,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을 많이 출입하였다는 원주민인 이도해(79세) 역시 이선실의 사진을 보더니 이선실과 이화선이 동일인임을 확인해주는 한편
-이화선이 다녔던 가파국민학교는 과거 김성숙이라는 사람이 세운 신유의숙에서 시작하였다.
-김성숙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도 하였으며 해방이후에는 대중당 소속으로 5대 국회의원도 지냈지만 5·16 이후에는 회색분자로 몰리기도 하였다.
-이화선이 학교에 다닐 때 선생이었던 장종식은 해방 후 북한에 가서 문교부장관을 하였다.
※장종식은 해방이후 월북,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교육국장 역임
-4·3 사건 때에는 가파국민학교 선생 중에도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 사람이 있었다.
-이화선은 이런 선생들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4·3 사건 때 이화선의 아버지 이재춘이 일본에 다니면서 낳은 이복동생인 이창하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화선이 가파국민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에 갔으나 아버지 이재춘은 그때 동경 부근에 있는 삼택도 라는 섬에서 제주도 출신 해녀들을 모집하여 해산물 채취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화선은 동경에서 가내 수공업체에 다녔다.
-이화선이 김태종과 결혼하여 대마도에 살다가 애기가 없어 이화선이 부산으로 와서 젊은 남자와 어울려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는 등의 추가 제보를 하여 주었다.

□ 또한 이화선의 고향친구로 77세된 재일교포 김영순(가명)이라는 사람이 북한을 방문 이화선의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제주도에 체류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수사팀은 김영순을 만났는데 김영순은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북한을 방문하여 이화선 소식을 듣고 귀국, 제주도에 체류 중 지난 10월6일 남한 조선노동당 간첩단 사건 발표시 TV화면에 나온 북한공작총책 이선실을 보고 이화선임을 직감하고 옆방에 있던 남편에게 다가가 『여보! 여보! 내가 북한에서 고위층에 있다는 고향친구 화선이가 저 사람이다』고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으로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옆에 있는 남편에게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해 보이기까지 하면서 『그런 일이 있었지요』라고 남편에게 재확인하기도 하였다.

□ 우리 수사팀은 모든 정황으로 보아 이선실이 이화선과 틀림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아무리 주위에서 이선실과 이화선이 동일인이라고 하여도 생모 김경량이 자기딸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득력이 없었다.

□ 그래서 우리 수사팀은 재차 김경량을 조사하기 위해 대정읍 하모리에 가서 그녀의 손자인 이태봉(30) 및 아들 이창계를 배석시키고 손자 이태봉을 통역으로 하여 조사를 시작하였다. 김경량은 고령으로 귀가 어두운데다가 심한 제주도 사투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통역이 없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 조사가 안되었다.
처음에는 김경령이 계속 진술을 거부하다가 약 30분 가량이 지나자 그는 이선실의 사진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이 사진은 내 딸 이화선이 틀림없다』면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일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 순간 동석했던 수사팀은 지리한 장마 끝에 햇살을 본 것처럼 짜릿한 환희를 느끼며 그동안 약 2달간의 추적 조사가 막을 내리는 것 같은 순간을 맛보았다.
그래도 본부에서는 이 사실을 재확인을 위해 간부님들이 직접 제주에 직접 내려오셨다. 다시 원주민인 이도해, 강옥선, 김창화 등을 만나 위 사실을 재확인한 간부님들은 이선실이 이화선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 일단 수사팀은 이선실이 제주출신 이화선이라는 실체를 규명하는데 성공했지만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이선실이 국내 연고가족을 중심으로 연고지 공작을 했는지의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계속 제주에 머물면서 이선실의 연고자들을 조사했으나 아직 연고지 공작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 이선실이 출생한 가파도는 태평양의 파도가 밀려와 덮치는 곳이라 하여 파도가 다른 곳보다 더 세다는 의미로 더할 『가』, 파도 『파』자를 쓰는 섬이라 한다. 가파도는 그 면적이 2.3km이며 인구는 270세대 약 760여명이 살고 있고 본도와는 약 5.5km 가량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그 곳에는 하루 2회 정기여객선이 운항중이며 그 소요시간은 약 25분 걸린다. 가파도는 70세 이상 고령자가 80여명이 넘는 등 장수마을로 통한다.

□ 이선실이 다녔던 가파국민학교는 1922년 4월 이화선의 전남편 김태종의 망숙부 김성숙이 사설로 설립한 신유의숙으로 시작해 1946년 3월 현재의 가파국민학교로 개명을 했다. 가파국민학교는 지금까지 46회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현재 전교생은 약 65명이다. 가파국교가 개명되기 전 신유의숙 시절에는 당시 제주도에 6년제 교육기관이 없어서 본도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중학교에 가기 위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가파국교의 설립자 김성숙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 후 일제식민지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5대 국회의원(대중당)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한다.

□ 11월16일 제주공항에서 제주팀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모슬포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시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 받아 출동한 경찰관에게 신분증을 휴대치 않아 곤욕을 치르던 일
-가파도에서 1주일 가량 있을 때 유일한 민박집이 때마침 발전설비 공사때문에 와있던 인부들이 사용하고 있어서 어렵게 빈방 하나를 구해 차가운 방에서 라면과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소주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던 일
-수사일정상 가파도에서 본도로 나올 때 폭풍주의보로 인해 계속 정기여객선이 운항을 못해 소형배 한 처을 얻어 모슬포로 나와야만 했고 그 당시 험한 파도를 만나 생사를 걸었던 일
등 제주팀이 겪었던 고생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밝혀진 이선실의 신원〉

□ 李善實(76세)은 1916년 1월(호적상 1917년 2월13일생)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섬)에서 아버지 이재춘(일본 오사카 거주타, 1977년 8월 사망)씨와 현재 제주도에 살고 있는 어머니 金庚良(94세)씨의 6남1년중 맏이로 李花仙이란 이름으로 출생하였다.

□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물도 곱고 머리가 명석하였지만 생활이 어려워 11살 때인 1927년 가파도 辛酉義塾(현 가파국민학교) 4학년을 다니다 중퇴하였다. 재학시 그녀는 장종식(해방 후 월북,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교육국장 역임) 등 젊은 교사들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는다.

□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잠수부일을 할 줄 몰라서 14살 때인 1930년경 어머니와 함께 당시 일본 동경부근 삼택도(섬)에서 제주도 출신 해녀들을 모집, 잠수부 중개업을 하던 아버지(李在春, 1915년 말경 도일)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가내 수공업체 공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3년만에 혼자 귀국하였고 어머니는 6년 후인 1936년경에 귀국하였다.

□ 21살 때인 1937년(호적상 1939년 12월)에 가파국민학교 동창으로 당시 부산에 살고 있었던 金太鍾(76세)이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부산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이후 어머니 김경량은 자신의 딸인 이화선을 만나보지 못했다 한다.

□ 1940년경 남편과 함께 對馬島로 건너가 그 곳에 살면서 자신은 삯바느질을 하였고, 남편은 잠수부 생활을 하였다.

□ 해방이 된 후 1947년경 남편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영도에 정착해서 생활을 하였지만 자녀를 낳지 못하여 당시 4세쯤 된 양녀를 주어다 키우며 살았다. 그 무렵 그녀는 이복동생인 이창하가 4·4 사건시 억울하게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 그때 남편 김태종이 다시 對馬島로 밀항하자, 이화선은 부산 영도에 살고 있던 고향 친구 李純烈(75세, 사망)이라는 사람 집에서 살았는데 당시 30대 초반의 여자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교육을 받고 남노당에 가입하여 여맹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당시 북한에서 남파된 남자공작원과 함께 지내며 은신처를 제공해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잡혀서 처형되자 『원수를 꼭 갚고야 말겠다』면서 6·25 직전인 1950년 4월 양녀를 친구집에 남겨둔 채 단신 월북하였다.

□ 한편, 원적지 원주민들에 의하면 남편 김태종은 대마도에서 새로운 부인을 얻어 애를 낳고 살다가 부산 영도에 있는 양녀를 데려다 키웠으며 그후 김태종은 이화선을 못잊어 1971년 8월25일 이화선을 만나보기 위해 양녀를 데리고 입북하였다 한다.

□ 그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했던 李花仙은 인민군 복장을 하고 서울에 내려와 정치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남편 김태종의 형인 시숙 金太能(86세, 사망)씨를 서울에서 만난 사실이 있다고 하였다.
※김태종은 김태종의 이복형(김태종은 1971년 8월25일 제159차로 북송)

□ 6·25가 끝나고 이화선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서 노동당 중앙당 산하에 있는 『금강학원』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공산주의 사상학습을 받았고 그후 노동당 경공업위원회 과장, 황해도 여맹간부를 거쳐서 평양시 여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해 오다가

□ 1963년경 김일성에게 『조국통일사업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고 탄원하여 대남 공작원으로 소환되어 공작원 양성소인 『695 정치대학』이라는 곳에서 전문적인 간첩 교육을 받고

□ 1966년과 1973년에 과거 생활 연고지였던 부산으로 남파되어 암약타가 복귀한 바 있어 이 때 대남공작 성과를 인정받았다 한다.

□ 그후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이 李花仙을 다시 장기간 남한에 침투시켜 적화통일을 위한 대남공작을 시키기 위해 1960년 4월28일 제19차로 북송된 교포 申順女(74)라는 사람의 신원을 이화선에게 상세히 요해시킨 후 그의 신분을 위장토록 철저히 교육하고

□ 이렇게 하여 이화선은 신순녀로 완벽하게 위장한 후 1974년초 북한 공작선편으로 일본 해상으로 침투, 오사까지역에 은거하면서 재일교포를 포섭, 만경봉호 등 공작선편으로 입북시키는 등 암약타가 그해 3월 東京 荒川區役所에서 자신의 6촌동생이자 조총련에서 활동하고 있던 李昌海를 세대주로 하여 申順女라는 이름으로 외국인등록(제164742호)을 하고 나서

□ 그 당시 神戶에 살고 있는 진짜 申順女의 이복동생 申性福(57)씨를 찾아가 申順女의 부모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가 너의 누나 申順女다.
-부산에서 살다가 소화 40년에 밀항하여 오사까 入管에 자수하였다.
-入管사람들이 네가 살고 있는 곳을 가르쳐주어 찾아왔다.
라고 위장하여 그때부터 申性福의 도움을 받아 申順女로 행세해왔다.

□ 한편, 그 당시 신성복씨는 북송된 누나 신순녀가 아닌 처음보는 어떤 부인이 찾아와 자기가 누나 신순녀라고 주장하기에 『별 희한한 사람 다봤다, 당신은 나의 누나가 아니다』라고 하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별다른 손해도 없고 해서 이를 묵인하였다고 한다.

□ 그후 이화선은 1974년 11월에 일본에 거주하는 이화선의 먼친척인 李柄夏(92세, 사망)씨 가족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申順女 명의로 국민등록(제35167)을 하고 1977년 2월 東京 荒川區役所에서 申順女 명의의 외국인등록증(제166140호)을 갱신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김정숙 회갑 축시 제작용 천, 금실, 은실 등을 수집, 송부하였다.

□ 그리고 이화선은 일본에서 1978년 5월까지 재일교포를 포섭해서 입북시키기도 하였으며 또 만경봉호가 일본에 입항할 때 직접 만경봉호에 승선하여 북한공작원과 만나 공작토의를 하는 등 이러한 공작 성과를 인정받아 당시 김일성은 李花仙에게 보신용 웅담을 직접 보내주기도 하였다 한다.

□ 계속해서 李花仙은 남한에 침투, 장기적으로 공작기반을 구축할 목적으로 1978년 5월 고오베에 살고 있는 진짜 申順女의 이복동생 신성복에게 『전주에 사는 언니(申良根)를 만나러 가자』고 하여 그와 함께 모국방문을 신청하고 『모방단 일원으로 입국할 예정이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전주거주 신양근에게 발송한 후 1978년 6월4일 단오 모방단원으로 함께 국내 입국하여 전주시 평화동에 살고 있는 申良根씨 집을 찾아갔다.

□ 그때 李花仙은 申良根에게 부모성명과 둘만이 알고 있는 어린시절 추억을 화제로 자매지간 임을 인식시키는데 성공을 하고

□ 그 집에서 체류하면서 3박4일간은 단체로 산업시찰을 하고 개별적으로 전주시내, 김제 금산사, 광주 무등산을 관광하고 申良根의 식구들에게 세이코 손목시계, 카메라 등을 선물하는 등 완전히 한가족으로 행세한 후 6월9일 상경하여 1978년 6월11일 개별 출국 일주일만에 다시 도일하였으며 일본에 도착된 시 전주 신양근에게 안부와 함께 영주 귀국하여 고국 땅에 살고 싶다는 등 내용의 편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 1978년 7월 일본 니이가다에 가서 공작선(만경봉호 추정)에 승선, 북한공작원과 공작 토의

□ 1978년 7월25일 고오베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 신순녀 명의로 국민등록 갱신(제35343호)

□ 그로부터 6개월 후인 그해 1978년 12월24일 다시 입국을 해서 역시 申良根의 집에 체류하면서 申良根의 가족의 안내로 단체관광객 30여명과 함께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제주도를 관광하였다. 그때 이화선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제주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용두암에 가서는 『바위가 어쩌면 저렇게 용처럼 생겼느냐』
-『제주도는 기후가 따뜻하고 아름답다』, 『좋은 곳을 구경시켜 주어 대단히 고맙다』
라고 하면서 제주도에 처음 온 것처럼 능청을 떨기도 하였다 한다.

□ 그후 이선실은 1979년 1월 말경 일본으로 건너가서 북한의 공작지령에 따라 일본에서 북한으로 일시 복귀하였다가 그해 7월 다시 일본으로 침투하였다.

□ 그리고 1979년 9월29일 3번째로 국내 입국하여 申良根씨의 집에 체류하면서 조국에 뼈를 묻히고 싶다며 영주 귀국 의사를 표시하고 향후 자신의 공작 아지트로 활용하기 위해 신양근의 넷째며느리(李奇順)에게 『일본에서 살던 집을 팔아 1,000만엥을 가져왔다. 영주 귀국하게 되면 살 집이 필요하니 미리 구해달라』고 부탁하여 서울 동작구 대방동 344-5번지 단층 양옥집을 3,675만원에 사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친족관계라는 확신을 주기 위하여 申良根의 차남 白德萬(59세, 사망)의 명의로 동 가옥을 등기하고 그해 10월16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1980년 1월19일 니이가다에 가서 공작선(만경봉호 추정)에 승선, 북한공작원 김모와 공작토의를 하는 한편

□ 1980년 2월에는 남한 체류시 기독교 신자로 위장, 활동할 것에 대비해 일본에서 교회에 다니면서 영주 귀국자로 위장키 위한 중고 생활용품, 냉장고, TV, 오토바이, 전기밥통, 재봉틀 등을 구입하였음.

〈신순녀로 국내 입국 합법신분 구축〉

□ 1980년 3월30일 이선실은 영주 귀국키 위해 이불 4점, 구형 TV, 녹음기 2대, 재봉틀 1대, 오토바이 1대, 카셋트라디오 1대, 의류 등 생활도구를 가지고 김포공항으로 입국, 전주에서 상경한 신양근의 장남 백덕산, 4남 백덕조 등 2명의 출영을 받고 그들의 안내로 전주시 평화동 1가 617-2 신양근 가로 가서 일시 거주하면서 그해 4월15일 국내 주민등록을 위해 전주 상호미상 사진관에서 주민등록증 신청용 사진을 촬영하는 등 합법토대 구축을 위한 기본 활동을 계획대로 추진한다.

□ 이선실은 4월22일 당시 전주 평화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근무하던 위 백덕산의 주선으로 신양근의 주소지인 전주시 평화동 617-2에 신규 주민등록을 함으로써 완전한 합법신분을 쟁취하고
-그경 백덕산에게는 50cc 일제 오토바이 1대(90년도 폐기)를 선물로 제공하고 당시 공군에 복무중인 백덕산의 아들 백용현(35)에게는 일제 세이코 손목시계 1개를 제공하는 등 신양근 가족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공세도 하였다.

□ 1980년 5월15일 이선실은 기 구입해 놓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344-5(제 2아지트)로 이주, 은거하면서 1981년 11월19일 위 신양근의 3남 백덕만(59, 사망) 명의로 했던 동 가옥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 이전하고 본적을 전북 완주군 이서면 상계리 305번지에서 거주지인 대방동으로 전적한 후, 이때부터 서서히 국내 및 재일 신양근 집안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신순녀의 가족이 찾아오면 『뭐하러 자꾸 오느냐, 돈이 탐이나서 그러느냐』는 식으로 민망하게 만들어 따돌렸던 것이다.

□ 한편 이선실은 신순녀의 원적지인 전북 완주에서 대방동 344-5로 전적 후 신길동 소재 영동교회에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1982년 1월경 위 영동교회에서 알게되어 친구처럼 지내오던 집사 정옥주(69)를 통해 김옥기(53, 대한교육보험 외무사원)를 소개받고 그를 수양딸로 삼아 자신의 대방동 집 방 1칸에 무상으로 입주시켜 신변안전 조치를 취하는 등 완벽한 내국인으로서 행세를 하는데 주력한다.

※김옥기 구속 송치

1982년 4월경에는 김옥기와 함께 수안보 관광(당일)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내 정세수집 및 활동에 익숙해지면서 이선실은 자신의 가명인 신순녀 명의로 대방동 아지트에 신규전화(T 813-7063)를 설치하고 국내에서 지실자 및 재일 연고가족들과 통신연락을 취하는 한편 1982년 6월경에는 대방동 제 2아지트에서 재일 신성복의 처 나가이 요꼬(54)의 방문을 받고, 재일가족 동향 및 안부 등을 전해듣는 등 내국인으로서 합법 신분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시작한다.

2. 국내 활동상황

〈김옥기에게 들려준 비판적 언동〉

□ 이선실은 국내 아지트를 마련하고 김옥기(54, 보험회사 영업사원)를 자신의 신분보장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완복한 내국인 행세를 하였다. 이선실은 1982년 8월부터 1990년 10월17일 북한 복귀시까지 김옥기와 동거 등 수시 접촉해오면서 국내생활의 이모저모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북한의 실정과 비교하였고 그럴 때면 예외없이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잊지 않았다.
예컨데,

□ 1982년 8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이선실은 김옥기에게
-생선을 바닥에 놓고 파니 더러워서 먹겠느냐, 위생상태가 엉망이다.
-북에서는 생선은 포장해서 진열장에 잘 보관하여 위생적으로 판다더라.
고 하였고

□ 1983년 10월 발생한 버마 아웅산 사건에 대해서는
-아웅산 테러는 북한에서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혼자만 살아남은 것을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무슨 관련이 있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

□ 1982년 2월 중순에는 한보관광(주)에서 수안보 온천 관광권 2매(1인 5,000원)을 구입하여 단체관광객 45명과 함께 수안보에 가서 온천 입욕 및 나이트클럽 등지를 관광(당일 코스) 후 귀가하면서
-일본 온천은 한 사람이 3평 정도 차지할 수 있도록 시설이 설계되어 있어 공간이 넓은데 수안보는 공간이 좁고 사람은 너무 많은데 그게 무슨 온천이냐.
-낙후된 나라는 할 수 없다.
-다시는 안 가겠다.
는 등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강한 어투로 얘기를 한 적이 있으며

□ 1984년 여름 북한이 수해물자 보내는 것을 보고는
-북한이 훨씬 잘 살고 있으니 저렇게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너무 낙후되어 있어 비가 많이 오면 피해가 크다.
는 등 얘기하면서 은연중 남한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김옥기로부터 동조의 발언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 그후 1985년 6월 이선실은 구로공단 동맹파업에 대해 김옥기에게
-나라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니까 근로자들이 길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자본이 편중되어 있어 문제가 많다.
-앞으로 중소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기도 하였으며

□ 1986년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보고는 김옥기에게
-경찰들이 저러니 나라가 한심하고 썩었다.
-같은 여자로서 가슴이 아프다.
-권양이 커서 여성운동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며 권인숙의 대정부 투쟁을 희망하면서

□ 1986년 5월 김옥기와 보라매공원 산책시에는
-잔디도 없는 흙바닥에 나무조차 없는데 이게 무슨 공원이냐.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에 대해서는
-이 나라 경찰들은 모두 썩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 1987년 11월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서는
-앞으로 김현희는 영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현희는 한국에서 죽일 것이다.
-김현희와 같은 공작원인 남자(신이찌)는 잘 죽었다.
라고 하며 KAL기 사건이 북한 공작원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암시를 주는 이야기도 하였다.

□ 그리고 1987년 12월 중순 대통령 선거 후 이선실은 김옥기에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군인정치가 끝나지 않았다.
-○○○씨가 당선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큰일이다.
-○○○씨는 후덕한 인상이지만 정치는 모르는 사람이다.
라고 얘기하면서 ○○○ 지지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 한편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 개막식 장면을 보고는
-지금 남한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카드색션은 이북을 따라갈 수 없다.
라고 말하는 등 매사 남한의 실정을 비판적 시각으로 매도하면서 상대적으로 은연중 북한의 사회실정을 추켜세우는 찬양성 발언을 잊지 않았다.

〈김옥기에게 선물제공, 환심유도〉

□ 1982년 9월경 무더위가 한풀 꺾인 밤 깊은 시간, 거의 자정쯤 되었을 때다. 대방동 아지트의 이선실은 자신의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에 레시버를 끼고 방송을 청취하였다. 당시 김옥기는 잠도 오지 않고 하여 무의식중에 이선실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게 웬일인가!
이선실은 화들짝 놀라며 귀에 꽂은 레시바를 순식간에 발 밑으로 감추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곧이어 이선실은 노기띤 표정으로 김옥기를 쳐다보며 『왜 노크도 없이 남의 방문을 여느냐』며 큰소리로 화를 냈다 한다. 그후 이선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하면서 행동에 은밀성을 가일층 강화하였다 하며 이때부터 김옥기는 이선실이 간첩임을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 한편, 이선실은 1982년 8월부터 1985년 4월초까지 3회에 걸쳐 도일하여 매회 2~3개월씩 일본에 체류하면서 김옥기에게
-주사약이 떨어져서 한 보름간 일본을 다녀오겠다.
-동생(신성복 지칭)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올 때는 전주 언니집에 들렀다 오겠다.
고 하면서 여행용 가방을 들고 출타 후 돌아와서는 꼭 김옥기에게 일제 세이코시계, 18K 금반지 및 보석반지 등 1개씩을 선물로 주었고 그후에도 일제 재봉틀, 찜통, 카메라, 손목시계, 금목걸이 등 다양한 선물을 주어 김옥기에게 환심을 끌며 인자한 할머니 같은 성품을 보일려고 노력하였다 한다.

□ 1987년 7월에는 한때 이선실이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홍익외과의원에서 위염, 장염, 흉통 등으로 통원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당시 이선실은 김옥기에게 종로 및 경동시장에서 한약재, 등푸른 생선 등을 심부름시켜 복용하면서 고맙다는 표시로 그에게 일제 단파라디오를 주기도 하였다.

□ 그후, 이선실은 1987년 9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한참이 지난 후 주변이 모두 잠들어 조용한 시간이었을 때 갑자기 김옥기를 자신의 방으로 부르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 나이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어머니는 『네 여동생을 꼭 찾아서 돌봐주어라』고 하면서 내 속옷에 글씨를 써놓으신 적이 있다.
-내가 만약 죽게되면 신문에 『신순녀 사망』이라고 광고를 내주고,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찾아오거든 그에게 인감도장을 주고 이 집을 팔아서, 그 동생에게 90%를 주고, 나머지 10%는 네(김옥기 지칭)가 갖도록 하여라.
라고 하면서 눈가에 깊이 패인 주름을 더욱 찡그리며 사뭇 심각한 어조로 나직히 말하였다. 김옥기는 그동안 수년을 같이 생활했지만 그날 같이 힘없는 표정과 침울한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다. 마치 그것은 유언성 발언과도 같았다.

〈문익환 집안과 친교〉

□ 1986년경 이선실은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문익환의 어머니 김신묵씨를 가끔 방문하고 돌아와 김옥기에게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그 집 며느리(박용길)를 존경한다.
라는 말을 자주하면서

□ 문익환이 다니는 『한빛교회』에 다녀온 후에는
-문익환 부인(73, 박용길 지칭)은 참 훌륭한 사람이다.
-남편이 교도소에 있어도 남편에게 불만이 없고 시어머니에게도 잘하고 있다.
-구김없이 꿋꿋이 잘 생활해 나간다.
-한빛교회에 나갈 때마다 만나보는데 인품이 부드럽고 인자하다.
-문익환의 어머니는 나이가 97세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있어서 글씨도 잘 쓰는 것을 보니 너무도 부럽게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훌륭한 여성지도자들이 별로 없느냐.
-한국여자들은 게을러서 일도 안하고 손톱에 메니큐어만 칠하고 있다.
라고 얘기를 하는 등 문익환 일가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빈번히 하였으며 이후 수유동 소재 문익환의 집을 수시로 출입하면서 문익환의 모 김신묵 및 처 박용길 등과 친교를 유지하였다.

□ 그리고 1987년 12월경 대방동 391-312 거주시 마침 13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김옥기에게
--오늘 보라매공원에서 개최된 ○○○씨 유세장에 갔다가 문익환씨의 어머니와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그 노인(문익환 모, 91년 사망)은 진짜 훌륭한 분이다.
-앞으로 문익환씨가 다니는 수유리 『한빛교회』에 다녀야겠다.
-문익환씨의 부인(박용길)이 일하고 있는 곳(민가협 지칭)에 가서 일을 도와주어야겠다.
라고 얘기를 하면서

□ 며칠 후 이선실은 불쑥 김옥기에게
-문익환씨 어머니(김신묵)에게 용돈을 주었다.
-민가협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서 문익환씨의 부인과 40~50대 여자들을 만나면서 지낸다.
-민가협에 매월 회비(액수미상)를 내고 있다.
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도 민가협 회원인양 자랑을 떠벌리며 김옥기에게도 좋은 단체가 있으면 들어가서 후원하는 것이 좋다라며 조언하기도 하였다 한다.

□ 그후 이선실은 1989년 1월초 도봉구 수유동 소재 문익환집을 신년인사차 방문, 문익환으로부터 『꿈이 오는 새벽녘』 책자 1권(당시 문익환은 동 책자에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989년 새해에 신순녀님께, 문익환 드림』이라고 기재)을 받고 돌아왔으며

□ 1989년 5월 하순에는 대방동 아지트에서 김옥기에게
-문익환의 집 살림살이는 보잘 것 없더라.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동생 문동환이 매달 30만원씩 보태준다더라.
-할머니(김신묵)는 아들이 감옥에 있어도 눈물하나 흘리지 않고 꿋꿋하며 높이 우러러 보아야 할 사람이다.
-문익환이 하던 일을 할머니와 그의 부인이 다하고 있더라.
-한빛교회에 갔다가 문익환의 어머니와 함께 문익환의 집에 들렸더니 『문익환 부인이 이것이 산 것이 아니고 선물로 들어온 것이니 약소하지만 가져가라고 하면서 주기에 받아왔다』
라고 말하면서 대나무 상자에 포장된 약과 1상자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여준 사실이 있다.

□ 1989년 7월 김옥기는 하루종일 보험 영업활동을 한 후 더위에 지쳐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서 쉬고 있을 때 이선실이 다가와 불현 듯
-신촌에 신부 드레스 판매상점 2층에 있는 ○○당 ○○○의 개인 사무실에서 오후 2시에 유명인사 부인들과 만나기로 되어있는데 오늘 문목사 부인이 우리집에 오면 함께 갈 예정이다.
라고 자랑하듯 얘기를 꺼내며 『문목사 부인을 만나면 웬지 편안함이 있고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라고 하면서 문익환가 와의 친교유지를 퍽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다.

〈신원미상 키큰 할머니를 김옥기에게 소개〉

□ 1987년 12월경 이선실은 자신의 제 4아지트에 자칭 강원도에서 왔다는 키큰 여동생(67세 가량 노파)과 그의 아들이라 부르는 이동진(28세 가량)이 방문, 이들과 함께 근 1년간을 동거하였는데

□ 1987년 12월 하순 당시 옆방에 기거하던 김옥기가 퇴근하여 귀가하자 처음보는 키큰 할머니와 28세 가량의 남자가 와 있어 이상히 여기던 차에 이선실이
-이 사람(키큰 할머니)은 나의 여동생이고 이 총각(28세 가량)은 내 조카 동진이다.
라고 하면서 이들을 소개하여 김옥기는 그들과 처음으로 인사교환을 하고 그날 밤 8시경 김옥기 방으로 건너온 이선실에게
-전에는 남동생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어떤 여동생이냐
라고 묻자
-나는 이 동생과 핏덩어리채로 헤어졌기 때문에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이 동생이 일본으로 연락을 하여 알아보니 내가 안양에 산다고 하여 다시 안양 부흥(아)B-208호에 갔다가 집주인이 대방동으로 이사갔다고 하여 이곳으로 찾아왔다고 하더라.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여기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
라고 이선실은 말하였다.
-어떻게 작은 방에서 셋이서 삽니까.
-내 방을 쓰도록 하세요.
라고 김옥기가 말하자 이선실은
-아니다. 셋이서 함께 내방을 쓰겠다.
라고 얘기한 사실이 있었다.
□ 1988년 1월 초순경 김옥기는 마루에 나와있던 동진어머니(키큰 할머니)에게
-어디서 살았느냐
-할머니(이선실) 친동생인데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다.
라고 말을 건네자, 동진어머니라는 여자는
-강원도 공사장에서 인부들 밥을 해주는 함바를 하면서 살았다.
-언니(이선실 지칭)는 아버지 닮고 나는 어머니를 닮았다.
-나는 가진 것(재산)이 하나도 없어서 신세지는 것 같아 도저히 올 수가 없어 이제야 왔다.
라고 얘기를 하며 자신의 과거가 파란만장했음을 은연중 암시해 주었다.

□ 며칠 후 김옥기는 동진 모자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창 일하고 배워야할 청년(동진 지칭)이 이렇게 놀아서 되겠느냐.
고 하자 동진은 빙그레 웃으며
-나는 배운 것도 없고 강원도 같은 시골에서는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놀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동진은 1988년 1월4일 당시 제 4아지트 세입자인 이강숙(34)의 소개로 빙그레 우유 노량진 대리점 배달원으로 취직하여1988년 3월22일 퇴직 때까지 약 384만원 가량의 판매실적을 올렸고 그 판매수당으로 약 53만원을 수령하였다. 이동진은 1988년 3월 중순경 위 대리점에서 주민등록등본과 재정보증서를 요구하자 『주소지가 강원도이므로 강원도에 다녀와야 한다. 얼마 전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관절염이라고 해서 앞으로 일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등의 핑계를 댄 후 그만두었다고 한다.

□ 한편, 1988년 2월 초순경 김옥기는 동진 모자와 좁은방에서 동거하는 이선실에게 너무 신세지면서 생활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간직해오던 중 이사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지내기가 불편하고 돌봐줄 동생이 있으니 이사를 가야겠다.
-1987년 2월 대방동 집 살 때 내가 보탠 1,200만원을 돌려달라. 그리고 그 집 팔 때 이익금도 생각해 달라.
-돈이 없으면 1987년 1월 초에 가입(김옥기 명의)된 1년만기 적금 2,000만원을 찾아서 쓰겠다.
라고 하자, 이선실은
-2층 세든 사람을 내보낼 테니 이곳에서 함께 살자.
-동진이 엄마와 상의해 보았더니 보험가입금 2,000만원을 찾아서 주는게 좋겠다고 하니 그 돈을 찾아쓰라.
고 하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다.

※이선실은 1988년 2월8일 김옥기가 경기 광명시 철산동 주공(아) 855동 301호로 단신 이주할 때 일본제 재봉틀(상품명:RICCAR) 1대를 선물로 제공했다.

□ 그후 1988년 8월 중순 철산동 주공아파트로 찾아온 동진모자는 김옥기에게
-언니(이선실 지칭)를 이곳으로 이사시켜야겠다.
-나는 다시 강원도에 가서 밥장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곧 떠나야 하는데 거기(대방동)에서 살면서 할머니를 좀 돌보지 뭐하러 이리 이사를 왔느냐.
라면서 김옥기를 원망하는 말을 한 후 떠난 사실이 있다 한다.

※이들은 나중에 남파간첩으로 확인됨.

□ 한편 이선실은 자신이 영주 귀국시 소지해온 생활용품을 주변사람들에게 팔기도 하였는데, 예컨데
-1983년 6월경 제 2아지트 세입자 장옥근(45)에게는 일제 카세트 라디오, 헤어 드라이기, 장난감 등을 판매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카세트 라디오를 새 것으로 사준다고 했다고 중고를 주었고
-1988년 11월경에는 제 4아지트 세입자 이강숙에게 헌이불 1채, 물통 1개, 수건 1개 등을 제공 후 일본제 코끼리표 보온밥통 1개를 10만원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강숙은 위 보온밥통이 새 것이 아닌 몇 번 사용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5만원만 주었으나 돈을 더 달라는 눈치를 하여 나중에 5만원을 더 주었다고 한다.

□ 그리고 때때로 이선실은 주말이나 휴일 등 한적한 시간을 보낼 때는 김옥기와 서울 시내 고궁 및 남산 등지를 관광하면서 사진촬영도 하고 서울거리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매사 북한의 실정과 비교하며 북한의 우월성을 찬양하였다 한다.

※이때 필름을 김옥기 집에 보관하고 있음이 확인되어 수사상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진보정당 모임 관여〉

□ 1989년 1월초 이선실은 「진보정달 준비모임」소속 성원 40~50명과 함께 관악산 등반대회 참가한 후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중국집에서 식사를 할 때 자신을 『이선화』라고 소개한다.

□ 1989년 10월 이선실은 동작구 대방동 13-61 제 5아지트를 인사차 방문한 김옥기에게
-일본에서는 공장 노동자들도 시간만 있으면 정치이야기를 하여 모두가 깨어있다.
-너도 깨우치려면 젊은 나이에 보험회사에만 다니지 말고 민중당에 가입해서 시국강연을 자주 듣고 활동도 해야 배우는 것도 많고 눈이 트인다.
-한겨레신문을 보도록 해라.
는 등 민중당에 입당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 1989년 11월경 마포구 서교동 354-6 신영빌딩 4층에 있는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약칭 준비모임) 사무실에 수시 출입하면서 500만원을 제공하는 한편, 張琪杓, 동인의 처 조무하(42) 및 「민가협」 회원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한편

□ 1989년 12월 중순에는 도봉구 쌍문동 삼익 세라믹(아) 112-1006 張琪杓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고

□ 1989년 12월 중순경 「준비모임」 사무실에서 張琪杓로부터 제 5아지트를 청계 피복노조위원장 김○○(35세 가량)의 은신처로 제공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허락한 후 다음날 제 5아지트 현장확인차 방문한 張琪杓를 약 30분간 만났다. 이때 이선실은 커피 등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세입자인 김점숙 모녀로부터 커피잔과 커피 등을 빌려서 장기표에게 대접한다.

□ 1989년 12월30일 이선실은 「준비모임」 사무실에서 張琪杓로부터 동인이 저작한 『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 때』 제하 책자 1권(첫장에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1989년 12월30일 張琪杓』라고 기재)을 받았으며

□ 1990년 1월초에는 張琪杓 집을 방문, 동인에게 『민주화 운동에 돈도 없을 텐데 생활에 보태쓰라』면서 활동자금 100만원 제공하였다.

□ 한편 1990년 3월 강화도 양도면 돌곶이산 車씨묘 장군석에서 드보크를 발굴하고 공작금품을 수령했으며

□ 1990년 4월에는 자신의 제 5아지트에 남파간첩 권중현(50대), 김돈식(20대 후반)을 입주시켜 약 3개월간 동거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동 가옥 세입자 김점숙 모녀는 직장에 나가는 관계로 권중현과는 한번도 상면치 못했으나 김돈식과는 몇 번 얼굴을 마주쳤지만 서로 인사만 했을 뿐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다고 한다.

〈손병선 포섭, 간첩교육〉

□ 이선실은 1990년 2월 하순 진보정당 준비모임에서 개최한 관악산 등반대회에 참석하여 손병선(53)을 알게된 후 1990년 4월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준비모임 사무실에서 손병선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별일 없었어요.
라는 인사를 받고 그에게
-손선생이 모임에 참가하게 되어 반갑다. 앞으로 열심히 잘해달라.
-이제 더 이상 우리 진보세력들이 분열하지 말고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정당으로 컸으면 좋겠다.
-재야의 요구를 제도권에 반영할 수 있는 당이 필요하다.
라는 등 진보정당의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손병선은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겠는데 많은 지도 부탁한다.
고 하였다. 이때부터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자신이 혁신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표출한다. 이후 이선실은 준비모임 사무실에서 손병선을 매주 1~2회 접촉한다.

□ 한편 이선실은 1990년 4월13일 강남구 삼성동 소재 KOEX 4층에서 개최된 「민주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 추진위원회」(약칭:민연추, 구 준비모임) 결성대회에 참석, 「민연추」 깃발을 들고 단상으로 등단하기도 하였다. 이날 결성대회에는 유명인사인 ○○○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하였고 이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하였다.
□ 1990년 4월 「민연추」 사무실에서 개최된 여성분과위원회 정책토론회 및 「민연추」 제1차 중앙위원회 등에 참석하였으며

□ 1990년 6월19일 민연추에 온라인으로 300만원을 송금, 제공하기도 하였다.

□ 1990년 6월 하순경 이선실은 마포 서교동 소재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재정위원 회의에 참석한 손병선을 만나 그에게
-오늘은 무슨 안건을 토의하였길레 회의가 이렇게 길었느냐.
며 회의안건 내용을 묻자 손병선이
-지금 당 재정문제가 어려워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다.
고 하자 그에게
-당 재정이 많이 부족하냐, 내가 뭐 도와줄게 없느냐.
고 하며 자금제공 의사를 표명하자 손병선이
-당 사무실에 있는 복사기가 매일 고장이 나서 당장 복사기를 1대 사려고 하는데 가격이 500만원 가량이 되어 걱정이다.
고 하자 그에게
-내게 저축한 돈이 있으니 그 복사가 내가 한 대 사주겠다.
라고 한 후, 며칠 후인 6월 하순경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에 『이선화 기증』이라고 표시된 복사기 1대를 기증하였다.

□ 이후 이선실은 마포구 서교동 소재 민중당 창당준비위 사무실에서 개최된 민중당 여성분과위 결성식 및 민중당사 현판식에 참석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면서 1990년 7월9일 민중당 창당준비위에 온라인으로 150만원을 송금하기도 하였다.

□ 이선실은 1990년 7월 중순경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상임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손병선 및 ○○○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 손병선에게
-손선생님, 오늘 시간 있으면 우리들에게 손선생님의 농장구경을 좀 시켜 주시오.
라고 제의를 하자 손병선은 이선실에게
-이선생님도 함께 가보시지 않겠느냐.
라고 제의하여 이선실은 ○○○과 함께 손병선 승용차 편으로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 156번지에 있는 손병선이 경영하고 있는 고려농원을 방문하여 약 1시간에 걸쳐 비닐하우스에 재배중인 장미 등을 구경한 후 그날 오후 손병선 승용차 편으로 서초구 양재동 지하철 3호선 양재역까지 와서 그곳에서 전철편으로 귀가하는 등 손병선과 더욱 가깝게 지내며 포섭의 기회만을 노린다.

□ 1990년 7월16일자 민중당 당보 2회에는 『제주도 지역 발기인 이선화(75세)』라는 이름으로 축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후에 이것이 이선실의 정체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 1990년 7월 하순경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손병선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이 선생님, 점심이라도 함께 할까요.
라는 제의를 받고
-나는 음식을 아무거나 못먹고 가려서 먹으니 신경쓰지 말라.
고 하자 손병선은
-그럼, 차나 한잔 하시지요.
라고 하여, 사무실 인근 지하 다방 『하얀집』에서 손병선과 차를 마시며 대화중 손병선이
-당의 재정문제가 어렵다. 당이 자립해 나가려면 뭔가 수익사업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라고 하며 민중당의 어려운 자금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그에게
-당이 살아나가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재정확보이다.
-재정 확보방법에 대해 과거 내 경험을 얘기한다면, 해방 후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나와 당(남노당 지칭)에 가입하여 재정사업을 할 때 여성당원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여 당 재정을 도왔다.
-민중당도 전 지구당을 동원해서 재정사업도 하고 후원금 모금도 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라는 등 재정확보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손병선은
-현재 당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판매로 수입을 올리는 방법과 후원회에서 후원금을 갹출하여 당 재정을 충당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재정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한달에 후원금, 당비 등으로 500~600만원 정도가 들어오는데 지출은 약 1,000만원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도저히 당을 꾸려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라고 하는 등 당 재정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후 이선실은 승용차 편으로 귀가하면서 그에게
-나는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해녀생활을 하다가 제주 4·3 항쟁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놈들 사이에서 극심한 고생을 하면서 생활했다.
-그후 국내에 들어와서는 혼자 살며 삯바느질을 하면서 살아왔다.
라고 하는 등 손병선의 성분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위장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자 손병선은
-나도, 과거 농민운동을 하며 좌익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아버지 밑에서 무척 고생을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는 낮에 구두닦이와 날품팔이, 신문배달을 하며 야간학교에서 독학하면서 어렵게 생활을 해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얻어 나간 후 가정을 버리는 바람에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면서 고등학교를 두 군데 옮겨다니면서 공부하여 부산대에 입학하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만난 현 처와는 대학 2학년 때 결혼하였고 그녀는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나를 뒷바라지했다.
-4·19 당시에는 부산대 정치학과 4학년이었는데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민족통일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5·16 후 감옥살이를 했다.
-감방에서 나와서 취직도 제대로 안되고 하여 부산에서 꽃농사를 시작했고 그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1988년에 4·19 동지들과 「○○○○ 연구소」를 만들어 현재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고 하는 등 서로의 신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국정교과서(주) 앞에 이르러 손병선에게
-집이 이 근처에 있으니까 내려달라. 여기서는 걸어서 갈 수 있다.
라고 하자 손병선은
-몸도 불편하지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
라고 고집했으나 이선실은 차에서 내려 걸어서 귀가하는 등 그들의 공자원칙대로 자신의 은거지는 숨겼다. 이날 이선실은 손병선의 성분을 충분히 요해한다.
□ 1990년 8월 중순경 이선실은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손병선을 만나 인근 지하다방 『하얀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면서 그에게
-요즘 혈압이 높고 손발이 떨리고 저리다. 숨이 차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다. 올 겨울은 따뜻한 곳에 가서 쉬어야 될 것 같다. 못 견딜 것 같다.
라는 등 자신의 건강문제를 이야기하자 손병선이
-어디 쉴만한 곳이 있느냐.
라고 묻자 이선실은 그에게
-내가 몸이 불편할 때는 가서 쉬는 곳이 있다.
라고 하고 손병선이
-급히 연락할 일이 있으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우리가 찾아보기라도 할 것이 아니냐.
라고 하자 손병선에게
-내 혼자 알아서 할 일이다. 젊은 사람들한테 피해주기는 싫다. 걱정하지 마라.
라고 한 후, 당시 배포된 민중당의 정강에 포함된 통일문제에 대하여 손병선에게
-지금 당정책위에서 입안된 당의 정강 초안이 나온 것을 보았는데 그 내용에 포함된 통일방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전민련」식 통일방안인 1민족 1국가 2체제 연방제통일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민중당통일안인 『연합성 연방제』는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고 상호교류를 통해 단계적으로 2개의 정부로 연방정부를 구성하여 통일하자는 것인데 2개의 국가가 존립하고 각각 독립하여 국가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2개의 정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그것은 현재의 분단상태를 고착화하는 것이다.
라는 등 민중당의 통일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자 손병선이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현재의 두 국가 체제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경제, 문화 등 남북교류를 진행해 나가면서 단계적으로 연방제 국가로 나가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 아니겠느냐.
라는 대답을 하여 손병선에게
-국가연합은 바로 남한이나 미국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 이름만 연방제라 하지만 국가연합이다.
라고 하며 계속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자 손병선이
-나는 통일정책에 관여한 것이 아니고 젊은 친구들이 만들어 온 것을 본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만 개인적 생각으로(전민련)식 통일방안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그들의 사상은 수령관이나 주체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라고 하자 손병선에게
-주체사상은 가장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사상이다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관이다. 6·25후에 북이 초토화 되었는데 김일성 수령님이 다 해결했다. 수령님은 국가의 중심이며 수령님 때문에 북한이 유지된다.
-수령님의 사상을 잘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 김정일 지도자이기 때문에 북한의 지도자로 옹립하고 있다.
-사실 나는 과거에 빨치산 활동에 가담하여 오대산, 지리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빨치산 활동시 옆구리에 총을 맞고 더 이상 빨치산 활동을 할 수 없어 하산하였다.
-나는 남북분단의 희생자다. 나의 희망이 남북통일이고 그래서 남북통일운동을 하는데 모든 힘을 보태고 있다. 손선생도 통일사업을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라고 하자 손병선이
-나는 4·19 당시 「민족통일연구회」의 부산대 총책으로 활동했고 반민주악법 반대 경남학생 공동투쟁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지역 학생시위를 주도했었다.
-그래서 통일운동에 대하여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높다. 남북통일이 되려면 쌍방이 자기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입장할 것은 인정하고 양보할 것을 양보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비참한 역사를 하루빨리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통일을 이룩해내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통일운동에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하여 손병선에게
-손선생, 통일운동을 하려면 옷도 깨끗이 입고 다녀야 하지 않느냐. 앞으로 잠바 차림으로 다니지 말고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깨끗하게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다니려면 활동비도 필요하지 않겠느냐, 내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좀 가지고 왔으니 이 돈으로 양복도 사 입고 활동자금으로 써달라.
고 하면서 흰봉투에 든 수표 1,500만원(500만원권 수표 2매, 100만원 자기앞수표 5매)을 제공하자 손병선은 몇 번 사양하다가 『고맙게 쓰겠다』면서 이를 받은 사실이 있다 한다.

□ 이후 이선실은 손병선을 포섭하기 위해 계속해서 1990년 8월16일 손병선에게 온라인으로 200만원 송금하여 활동자금을 지원하였다.

□ 1990년 8월 중순경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 인근 『하얀집』 다방에서 손병선을 만난 이선실은 그에게
-손선생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한 후 주위를 둘러보고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실은 나는 북에서 온 사람이다. 손선생과 북의 국가정책을 도와주는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손선생의 협조를 얻고 싶다.
-지금 그 가부에 대하여 대답을 해줄 수 있겠느냐, 아니면 시간을 줄 테니 생각을 좀 해 보겠느냐.
라고 하자 손병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선실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제의가 되어 당황스러우니 생각을 좀 해보아야겠다.
라고 하여 그에게
-얼마나 시간을 주면 되겠느냐.
라고 하자 손병선은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 이야기하자.
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는 등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자신이 남파된 북한 간첩임을 인식시킨다.

□ 그후 1990년 8월 하순경 이선실은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 건물 지하 레스토랑 『스크린』에서 손병선을 만나 조용한 구석자리를 골라 앉은 후 그에게
-손선생, 지난번에 내가 얘기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았느냐.
고 하자 손병선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자 이선실은 갑자기 양손으로 손병선의 손을 꽉 잡으면서 낮고 힘있는 목소리로
-동지, 도와주세요.
-우리 조국통일을 위해 같이 일해 봅시다.
라고 간곡히 요청하자 손병선은 굳은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북을 위해 일하겠다든 자신의 결의를 밝히자 이선실은 상기된 표정으로 진지하게 손병선에게
-이제 손선생을 정식으로 조선노동당에 현지 입당시키도록 하겠다.
-동지는 이제부터 영광스런 조선노동당의 충성스러운 당원이다.
-손선생의 당원부호는 「비봉 11호」이다.
-우리 당의 당원이 된 것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동지가 앞으로 해야할 일은 당을 꾸리는 사업이다.
-당은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사업을 진행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현 민중당 내에서 30대의 유망한 당원 2~3명을 확보하여, 비밀 지하당을 조직해야 한다.
-과거 김종태가 통혁당을 조직할 때 너무 과욕하여 사업을 방만하게 꾸리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손선생은 핵심당원 2~3명만을 확실하게 조직하여 지하지도부구성사업을 추진토록 하라.
-그리고 현 민중당내에서 30대로서 가장 핵심적인 활동능력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보라.
고 하자 손병선은
-지금 민중당내 30대 중견간부 중에서는 ○○○, ○○○, ○○○ 등이 핵심적 활동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라고 대답하여 그에게
-○○○과 ○○○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똑똑하고 당내에서도 신망이 높아 적합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는 성격이 과격하고 독단적이어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과 ○○○에 대해서만 잘 관찰해서 요해한 후 접근, 포섭토록 하라.
-그외 당원(조선노동당 지칭)으로 포섭할 사람으로는 30대 초반, 중반으로 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나 과거 전과가 있는 사람은 피하도록 하라.
-너무 욕심을 부려 독단적으로 일을 결정, 활동하지 말고 반드시 당의 지시에 따라서만 행동하도록 하라.
-국내의 다른 지하망에서 선이 들어와도 응하지 말고 거절하라. 복선연계되면 위험하다.
라고 조직원 포섭 지령을 한 후, 계속하여
-손선생은 어느 정도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우선 활동자금으로 1,500만원을 가져왔으니 민중당 활동과 당원 포섭활동비를 보태쓰도록 하라.
-어떤 망은 허황된 보고만하면서 자금만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금은 일단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자금을 요구하도록 하라.
고 한 후 흰봉투에 활동자금 명목으로 1,500만원(자기앞수표 100만원권 15매)을 넣어 손병선에게 제공하자 그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포섭해 보도록 노력하겠다.
라고 결의를 표명한다. 그 말을 들은 이선실은
-앞으로 서로 연락할 것에 대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을 할만한 은밀한 장소가 없겠느냐.
라고 하자 손병선이
-내 둘째 딸년(차녀 손민영 지칭)이 신촌에서 혼자 방을 얻어 살고 있는데 직장을 나가기 때문에 낮에는 방이 비어있다. 그 방을 이용하면 어떻겠는가.
라고 제의하여, 그에게
-좋다. 며칠 후 오후 1시에 이곳에서 만나 같이 신촌으로 가기로 하자.
라고 간첩교육을 위한 장소를 약정한 후 손병선과 함께 『스크린』 레스토랑을 나와 밖에서 기다리던 3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을 갖춘 남자를 만나서 손병선에게
-내 조카뻘되는 아이인데 인사하시오.
라고 하자 손병선은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반갑습니다, 손병선입니다.
라고 하자 그도 웃으면서 경기도(서울) 말투로
-김동식입니다.
라고 간단히 대답하여 서로 인사 후 헤어진 사실이 있었는데 이선실은 이날 손병선을 포섭하기로 결심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남파 간첩 김동식을 밖에다 대기시켜 두었다.

□ 1990년 8월 하순 손병선에게 온라인으로 900만원을 활동자금으로 제공한다.

□ 한편 이선실은 1990년 8월 하순경 입북을 위한 주변정리를 위하여 그동안 제 5아지트에서 함께 살아오던 김점숙 모녀에게 『강원도 기도원으로 간다』고 하면서 사용하던 장롱, 냉장고, 문갑, 싱크대, 서적 34권 등을 준 후 전세보증금 2,500만원과 가방 3~4개만 가지고 이주하면서 당시 일제 면도기(남파간첩 권중현 사용물품), 카메라 스트로브, 전기코드, 핸드백을 놓고 갔고 전출신고주소는 강원도 ○○군 ○○면 ○○리 ○○라고 하였으나 수사팀이 확인결과 미전입으로 1990년 12월 대방동 사무소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

□ 1990년 9월 초순 이선실은 남파간첩 김동식과 함께 『스크린』 레스토랑에서 손병선을 만나 전에 약속한대로 손병선의 간첩교육을 시키기 위해 손병선의 차 편으로 서대문구 창천동 13-101호 차녀 손민영의 자취방으로 이동하였는데 차안에서 김동식이 손병선에게
-나는 북에서 임무를 띠고 내려왔는데 처음 왔기 때문에 지리도 익숙치 않고 여러 가지로 잘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잘 좀 도와달라.
라고 하는 등 자신이 남파간첩 임을 밝히자 손병선은 김동식에게
-이곳에서 활동하려면 주민등록증이 문제일텐데 어떻게 했느냐.
라고 하자, 그는
-그런 것은 문제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은 직접 해결합니다.
라고 하면서 김동식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건네주자 손병선이 살펴본 후 돌려주면서 김동식에게
-위조를 감쪽같이 했군요. 대단합니다.
라고 하자, 김동식은
-이곳에 있는 동안 손선생님의 신세를 많이 질테니 잘 부탁한다.
라고 하자 손병선은
-힘있는 데까지 도와주겠다.
라고 대답하였다.

□ 그날 오후 1시쯤 손민영의 자취방에 도착한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통신연락 방법은 어려운 것 같지만 찬찬히 잘 들으면 쉽게 배울 수 있다.
-나도 이런 것을 혼자서 쉽게 하고 있다.
-김군(위 김동식 지칭)이 이 분야의 전문가이니까 잘 배우도록 하시오.
라고 하자 동석한 김동식이 손병선에게
-통신에는 상향과 하향이 있는데 상향은 현지에서 본부(북한지칭)로 보내는 것을 말하고 하향은 본부에서 현지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현지에서 본부로 보낼 때는 무전으로 보내고 본부에서 현지로 보내는 통신은 A-3 방송을 통해서 한다.
-무전 연락이 안될 때는 은서편지를 써서 해외 연락처를 이용하여 보고한다.
라는 등 통신연락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한 후 계속하여 이선실이 휴대하고 있던 소형 가방에서 메모리식 무전기 1대, 기본암호표 및 난수표 등을 꺼내 방바닥에 펼쳐놓고
-무전기 조작법에 대해서
·이 무전기는 메모리기계와 송신기계로 분리되어 있는데 사용할 때는 하나로 결합하여 사용한다.
·송신장소는 정북에서 ○○도 서쪽방향인 개성을 향하여 탁트인 산이 북사면을 선택하여 발신시간 1시간 전에 도착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먼저 안테나선과 지선을 설치한 다음, 메모리기계에 숫자 전문을 입력시킨다.
·발신기용 밧데리를 묶은 후 발신시간이 되면 발신기에 크리스탈을 꽂고 안테나를 연결한다.
·발신기와 메모리기를 연결시켜 정해진 발신시간의 ○분 전후에서 ○회에 걸쳐 발신한다.
·발신이 끝나면 즉시 무전기를 해체하고 사용한 밧데리는 땅에 묻는다.
-발신 난수조립 방법에 대하여
·먼저 한글로 작성된 전문을 암호표에서 찾아서 숫자로 바꾼다.
·숫자로 된 전문 앞에 자신의 고유번호 『720』(손병선 출생월일)을 쓴다.
·작성된 숫자전문 밑에 난수를 써놓고 비산술식으로 합하여 보낼 전문을 완성한다.
-A-3방송을 이용한 지령수신 방법에 대하여
·매월 3일과 18일 24:00에 평양방송을 청취하여 수신하되
·먼저 방송에서 적기가가 나온 후 호출부호(○○○, ○○○, ○○○, ○○○, ○○○ 등 5개 중 한 개)가 나오면 거기서 불러주는 숫자를 받은 적은 다음
·그 숫자전문을 수신난수로 감하여 성경책과 암호표로 해독하여 지령을 수수한다.
·손선생 호출번호가 아니더라도 받아 적는 연습을 평소에 해두는 것이 좋다.
-은서서신 작성 및 연락방법에 대하여
·은서시약은 무색 폴리에스텔 조각을 아세톤 ○ml에 녹여 액체로 만든 후 그 액체를 ○○% 알콜에 섞어 다시 증류수를 타서 만들면 된다.
·은서작성은 흰색종이에 무색의 시약을 이쑤시개나 잉크가 안묻은 펜에 묻혀 쓰고 말린 다음, 다시 물 묻은 갱지를 그 암서 위에 덮어 씌워 같이 부풀린다.
·부풀린 은서는 책갈피 속에 넣어 말리면 은서로 쓴 표식이 없어지게 되며 그때 그 위에 영문으로 간단한 인사말을 타자로 쳐서 보내면 된다.
·은서를 보낼 때는 절대 국내에서 발송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해외에서 발송해야 하며 수신지 주소는 일본 편의 주소로, 발신지는 『서울에서』라고만 써서 보내면 된다.
·일본 편의주소는 日本國 大阪市 生野區 桃谷 3-15-12 宋泰英 方幸子이다.
·해외여행시 1주일 정도의 여유를 두고 서신을 보내야만 해외에서 연락이 가능하다.
라는 등 통신연락 방법에 대한 교육을 시키고 나서 계속 위 김동식은 손병선에게
-앞으로 접선에 대비하여 손선생의 가명을 하나지어야 하는데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 있느냐.
라고 하자 손병선은 김동식에게
-내 친구중 과거 4·19때 학생운동을 같이하다가 1989년경에 암으로 죽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이름이 『나○○』이다. 그 이름으로 하면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자 김동식은
-그러면 손선생님의 가명은 『나○○』으로 정하고, 상대방은 내이름인 『김동식』으로 하자
라고 하여 상호 비상접전시의 가명을 약정한 후
-손선생, 내가 기념품을 하나 사주려고 하니 함께 근처 금은방에 좀 갑시다.
라고 하자 손병선이
-금방이야 이 근처에도 많이 있으니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기념품은 무슨 기념품이요.
라고 묻자 이선실은
-다 필요한 것이니 일단 금은방에 가서 보고 나중에 내가 설명을 해주겠다.
라고 한 후, 이선실은 손병선, 김동식과 같이 손민영의 자취방을 나와 신촌로타리 부근에서 김동식은 상호미상 책방에 들어가 책을 보면서 대기하고 손병선과 단둘이 신촌로타리 부근 도장집에서 「나○○」, 「김동식」이란 이름으로 목도장 2개를 새기고, 다시 부근 금은방(국민은행 근처)에 들려 같은 모형의 금반지(16K, 1돈) 2개에 「○」자와 「동」자를 각각 새겨 구입한 후 김동식과 다시 합류하여 근처 다방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 손병선에게
-이 금반지와 도장은 앞으로 손선생이 우리 조직원을 만날 때 상호 인식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이미 통신교육을 하면서 지시하였지만 접선시 상호 약정된 접선방법에 따라 『김동식씨냐, 나 나○○이다』라고 하여 1차 확인하고
-만약에 나○○ 또는 김동식이라는 사람이 또 한사람 더 나타나게 되면 2차로 금반지에 새겨진 글씨 『○』자와 『동』자로 확인하고,
-그래도 미심쩍을 경우 이 도장으로 재확인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설명한 후 위 『○』자가 새겨진 금반지 1개와 『나○○』 명의 목도장 1개를 제공하였다.
□ 1990년 9월 초순 이선실은 김동식과 함께 『스크린 레스토랑에서 2차 통신교육을 위해 손병선을 만나, 그의 차편으로 손민영 자취방으로 가서 약 3시간에 걸쳐 무전기, 난수표 등 통신문건 일체를 꺼내 놓고 손병선은 김동식의 지도아래
-지령 전문 수신 및 해독방법
-무전기 설치방법
-보고문안 작성 후 난수를 조립 숫자로 환산하는 방법
-보고문안 숫자를 무전기에 입력시키는 방법
-입력시킨 문안을 무전기로 송신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재교육을 받고 계속하여, 정치사상 교양으로
-대남혁명의 필요성에 대하여
·남북대화는 계속하되, 기본적인 대남정책은 혁명을 통한 변혁운동이다.
·공화국의 인민들은 북과 남의 통일에 대비하여 남조선 인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공화국은 우리식 사회주의 정책을 위해서 전 인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하고 있으며 신체부분중 머리라 할 수 있는 수령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고 있다.
·10년 이내에는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지니 확신을 가지고 지하당 건설사업에 매진하라.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은 김일성 수령이 창시하신 세계 유일의 사상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창시하신 불멸의 사상이다.
·주체사상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고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상이다.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며,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김일성 수령이 창시한 주체사상은 우리 인류사회에서 마지막 가지고 나갈 위대한 사상이며, 공화국은 이를 중심으로 조선식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남조선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원전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구입해서 읽어보도록 하라.
-『통일론』에 대하여
·통일방식은 고려연방제에 의해 통일이 되어야 하며 흡수통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1민족,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방안이야말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하나로 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군은 반드시 철수되어야 하며 남조선내 핵무기도 모두 철수되어야 한다.
·현재 공화국에서는 전 인민이 통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통일을 위해서만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선생도 조국 통일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을 굳게 갖고 노력해 달라.
·남조선 민정당 체제하에서는 반공이념으로 합법적인 노동당건설이 어려우니 민중당은 기본적으로 평민당, 민주당 등 야당을 적극 지원하여 그 지원을 바탕으로 범민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군부정권인 현 집권여당을 무너뜨리고 일단 야당이 집권하게 하고 야당으로부터 확실한 지분을 확보하여 야당집권하에 민주화가 성숙되면 합법적 노동당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안기부 같은 폭압기관이 해체되고 국가보안법이 개폐되면 우리당 건설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는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손선생은 너무 과격한 주장이나 활동을 일체 금하고, 오히려 젊은 학생들에게는 우경화 쪽으로 보이는 것이 좋다.
라는 등의 교육을 한 후 손병선에게
-이제 잘 알겠는가.
라고 질문하자 손병선은
-알겠다. 공화국의 통일정책이 관철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무전기 조작은 자신이 없는데 한번 더 할 수 있느냐.
라고 하여 그에게
-그럼 확실히 알기 위해서 현장실습을 한번 해보자. 장소가 어디가 좋겠는가.
라고 하자 손병선은
-내가 화훼업을 하면서 다녀본 바에 의하면 정신문화연구원 뒷편 청계산 쪽이 조용하고 좋을 것 같다.
라고 하여 그러면 이틀 후 『스크린』 레스토랑에서 만나, 무전실습을 나가기로 하자고 약속 후 헤어졌다.
□ 1990년 9월 초순 이선실은 약속대로 무전교육을 위한 현장실습을 위해 김동식과 함께 『스크린』 레스토랑에서 손병선을 만나, 그의 차편으로 실습장소인 청계산으로 가던 중 청계산 고개 입구 우측에 있는 음식점에서 약 50미터 가량 떨어진 간이막사에 앉아 약 2시간에 걸쳐 대화식으로 손병선에게
-공작임무 및 기본방향에 대하여
·그동안 수차 이야기했지만 손선생이 해야할 일은 민중당 내에 핵심적인 청년 2~3명을 확보, 지하당을 구축하는 것이다.
·민중당은 기본적으로 ○○당이나 ○○당 등 야당을 지원해야하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야권 모두가 통합되어 집권여당인 군부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집권여당이 무너지면 연대했던 야당으로부터 확실한 지분을 확보하고 계속 국가보안법 철폐 및 공안기관 해체를 주장하여 합법화된 민중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때 손선생은 민중당이 노동당의 노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핵심인물을 조종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푸락치를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한다.
·문익환 목사는 우리나라 통일운동의 가장 귀중한 존재이며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조국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문목사는 통일운동의 1인자로서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인데 그를 구속한 국보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무인함 운용에 대해
·장소를 선정할 때는 서로가 인식하기 쉬운 분묘, 건물, 다리 같은 변형되지 않는 곳으로 해야 한다.
·장소가 선정되면 땅을 약 30cm 가량 파고 물건을 묻고 그 위에 돌을 올려 놓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는 등 공작임무의 기본방향 및 무인함 운용방법에 대해 교육을 시키고
□ 그날 12:00경 무전기실습을 위해 정신문화연구원 뒷편 고개위에 차를 세워 놓고 함께 김동식이 이선실의 빽속에 넣어 가지고 온 무전기 세트를 손병선에게 넘겨준 후 이선실은 차에 대기하고, 김동식과 손병선은 함께 우측으로 약 200m 가량 산 속으로 들어가 김동식이 낚시대를 변형시켜 만든 안테나를 설치하고 무전기와 밧데리를 연결한 후 기히 작성해온 숫자로 된 보고문을 메모리기에 입력한 다음 김동식이 손병선에게
-이번에 실습할 보고문안은 손선생이 입당했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라고 하면서 문안을 입력하여 무전기에 수정편을 끼우고 출력보턴을 눌러 2회 발신하는 등 현장 무전실습을 시킨 후 신속하게 이탈하여 차로 돌아오자 차 안에서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이 무전기 세트와 장비를 손선생이 받아서 사용하도록 하시오.
라고 지시하면서 손병선에게
·무전기 1세트
·은서용 시약 1병 및 폴리에스텔 조각 1개
·수신용 단파라디오 1대
·암호해독용 성경책
·암호표 난수표 등 문건 1조
·낚시대형 안테나 1개
·나침반 1개
등을 주고나서 계속 손병선에게
-권총이 있는데 받겠느냐.
라고 하자 손병선이
-권총이 있으면 부담만 되니 필요없다.
라고 하였으나 이선실은
-그래도 비밀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총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호신용으로 권총도 하나 갖고 있으시오. 큰 것으로 가지겠소, 작은 것으로 가지겠소.
라고 권유하자 손병선이
-작은 것이 숨기기에 좋겠으니 작은 것으로 달라.
고 하자 이선실은 흰 천으로 둘둘 말아서 손가방 속에 숨겨두었던
-벨기에제 소형 부로우닝 권총 1정
-소음기 1개
-탄창 2개
-실탄 12발
-총기 손질용 기름
등을 준 후 손병선 차 편으로 김동식과 함께 서초구 양재동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하차하여 전철로 귀가하였다.

□ 한편 입북 전 손병선에게 활동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1990년 9월5일 이선실은 김옥기가 근무하는 대한교육보험 동작영업국 남경영업소를 방문, 김옥기를 접촉, 1988년 8월29일 및 1988년 12월12일 가입했던 3년 만기일시납 우대복지 보험금 3,050만원을 중도 해약하고 원금 및 그 이자포함 3,250만원 환급받았다.

□ 그후 이선실은 1990년 9월 중순 서초구 양재동 민중당 서초을 지구당 사무실에 남파간첩 김동식과 함께 방문하여 민중운동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하였다.

□ 1990년 9월 중순 이선실은 레스토랑 『스크린』에서 손병선을 만나, 그에게
-지난번 손선생 입당보고에 대한 축하지령이 나왔다.
-오늘은 무인함 장소 선정을 해야겠는데 어디가 좋겠는가.
라고 하자, 손병선이
-헌인능과 우면산 꽃동네 뒷산에 있는 문중묘지가 좋겠다.
라고 하자 손병선에게
-그곳은 손선생의 지구당(민중당 서초을구 지구당) 구역인데다가 꽃재배하는 사람들 중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곤란하다, 보라매 공원이 어떠한가.
라고 하자 손병선이
-보라매공원은 내가 다니기에 불편하다, 수유동 쪽으로 가면 열사들 묘가 드문드문 있고 조용하니 그 부근이 좋겠고 한강변 쪽으로는 절두산 공원이 좋겠다.
라고 하여 그러면 현지에 직접 가서 답사해서 정하기로 한 후 레스토랑 밖에서 대기중이던 김동식과 만나

□ 그날 도봉구 수유동 4·19묘소 입구를 지난 곳에 위치한 북한산 국립공원내 묘소 배치도를 보고 공원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상일 묘소를 선정하고 답사하여 동 묘소 비석축대 동남쪽 모서리 밑을 무인함으로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동행한 김동식은 소형 카메라로 동 위치를 촬영하였다.
□ 다시 그날 김동식을 동행하고 손병선과 함께 마포구 합정동 소재 절두산 성당에 도착, 현장 답사를 하여 성당 뒤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 3인 여인상 중 가운데 여인상 뒷면 받침대 밑을 무인함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역시 김동식이 사진촬영을 하였다.
그곳에서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무인함은 결정되었는데, 접선장소 및 인식신호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좋겠는가 두군데 정도만 정해보라.
고 하자 손병선이
-여기 절두산 공원 무인함으로 정한 여인상을 한군데 정하고 나머지 하나는 양재동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양재 시민의 숲』공원이 조용하여 좋을 것 같다.
라고 하여, 동 무인함을 정한 여인상을 제 1접선장소로 하여 뒤쪽 받침대 위에 받침대와 비슷한 색깔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여 인식표시를 하기로 약정하고

□ 그날 오후 늦게 손병선, 김동식과 함께 서초구 양재동 윤봉길의 기념관이 있는 『양재 시민의 숲』공원에 도착, 동 공원을 둘러보던 중 손병선이 공원입구 진입로에 있는 『여의교』를 가르키며
-저기 여의교 다리가 어떠냐.
라고 하여 여의교를 제2 가두접선 장소로 결정하는 동시 여의교 서남쪽 난간 기둥에 새겨진 『여의교』의 『여』자 위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여 인식신호 장소로 약정하고 김동식으로 하여금 동 소도 사진촬영을 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김동식은 손병선에게
-접선요령은 지정된 정확한 시간에 이 장소로 나와서 손목시계를 왼손에 감아쥐고 시간을 몇 번 보면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가명인 『나○○』을 사용하여 상대방이 『김동식』이라고 하는지 확인하여 접선한다.
-만약 미심쩍을 때는 지난번에 준 반지와 도장을 꺼내어 서로 확인한 후 접선하라.
-약정된 시간에 접선장소에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3분 이상 기다리지 말고 즉시 현장을 이탈하라.
는 등의 접선교육을 다시 시켰다.

□ 1990년 9월 하순 이선실은 『스크린』 레스토랑에서 손병선을 만나 그에게
-내가 본부에 건강이 안좋다고 연락을 했더니 본부에서 나에게 나이도 많은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속히 돌아오도록 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는 빨리 정리를 하고 본부로 복귀하기로 하였으니 나머지 일은 손선생이 알아서 사업을 잘 추진해 달라.
-내가 공화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선생은 나에게 우리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답례로 물건과 입당 결의문을 작성해서 달라.
고 하자 손병선이
-답례품은 무엇을 해야하며 결의문은 또 어떻게 서야 하느냐.
라고 하여 손병선에게
-답례품은 도자기나 꽃병 같은 것으로 2개를 준비해 보라.
-결의문은 입당 후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맹세문 형식으로 쓰면 된다.
라고 하자, 손병선이
-나는 평소 글을 잘 안쓰고 지금 당장 민중당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지구당 만드는 작업이 급한데, 언제 내가 물건을 사러 다니고 편지를 쓰느냐.
라고 하여 손병선에게
-그러면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민중당 활동이나 열심히 하라.
고 한 후, 이선실은 동석한 위 김동식으로 하여금 손병선에게
-잘 보관하였다가 사용토록 하라.
는 주의사항과 함께 지난번 무인포스트로 확정한 곳과 사람을 만날 때 주의사항을 정리한 흰색 편지지에 조그만 글씨로 쓴 비상연락 및 접선방법 설명 문건 1매를 주도록 지시한 후 계속 손병선에게
-우리는 곧 북으로 복귀하게 된다. 일주일 후 사당전철역 남쪽 노상에 있는 벤취에서 만나자.
고 한 후 헤어졌다.

□ 1990년 9월 하순 이선실은 김동식과 함께 동작구 사당동 사당사거리 부근 벤치에서 손병선을 만나 그에게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이제 곧 본부로 복귀하게 된다.
-앞으로 민중당이 창당되면 열심히 활동해서 주요 직책을 맡도록 하라.
-민중당내 핵심 청년당원 ○○○과 ○○○에 대해서는 꾸준히 요해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대북관, 혁명관을 파악해보고 확신이 서면 포섭하여 노동당에 입당시켜라.
-○○○과 ○○○을 포섭할 때는 결코 서두르지 말고 우선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한 후 포섭하라.
라고 손병선에게 구체적 활동방안을 지시하자 손병선이
-내가 지금 관여하고 있는 단체는 「재경 ○○○ 동문회」로 처음 결성시부터 관여해 왔다.
-또한 1980년도에 나의 주도로 결성한 「서울 ○○협회」는 현재 회원이 2,000~3,000명 가량이 된다.
라고 하여 손병선에게
-앞으로 이들 단체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고, 가능한 한 이들 단체도 민중당 지지세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
-현재 민중당은 PD계열이 강한데 손선생이 이들을 점차 NL계열 성향으로 바뀌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핵심 청년들을 잘 꾸려 당을 주도해 나가면 가능할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긴 안목으로 10년을 내다보고 활동하라.
-자금은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급한 사안이 발생하면 지원을 요청하도록 하라.
-우리 활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밀을 담보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이니 조그만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
는 등 지령사항 및 향후 활동시 주의사항을 지시하자 손병선은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응답하자 동석한 김동식이 손병선에게
-그간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고맙다,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한다.
-앞으로 몸 건강하게 충실한 임무수행을 부탁한다.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조직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보고를 해 달라.
-공화국에 돌아가면 손선생의 적극적인 활동사항을 자세히 보고하겠다.
라는 말을 하자 손병선이 김동식에게
-할머니 건강도 좋지 않으니 잘 모시고 가도록 해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자 이선실이 손병선에게
-조국이 통일되면 제일 먼저 내가 내려오겠다.
라고 하자, 김동식도
-나는 이곳에 처음 왔는데 기회가 되면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등 약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하고 나자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공화국으로 돌아가서 손선생의 입당 답계로 줄 선물을 내가 준비했다.
-그리고 입당 결의문을 써왔으니 결의문에 서명해 달라.
고 하면서 손병선에게 「입당결의서」를 건네주었다. 그 입당결의서는 『저는 조선노동당 당원으로서 조국과 당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지도를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입당결의서를 받아 읽어본 손병선은 그 결의서 밑에 날자와 이름을 쓰고 서명한 후 이를 다시 이선실에게 건네주었다. 이선실은 손병선으로부터 입당결의서를 받고 나서 그에게
-이 돈은 그간 내가 살던 집 전세금 뺀 것하고 그동안 쓰다가 남은 것을 모두 모은 것이다. 2,000만원 정도 되는데 가져가서 지구당 사업하는데 사용하도록 하라.
-그리고 손선생 사진이 있으면 한 장 달라. 공화국에 가서 보고하는데 필요할 것 같다.
라고 한 후 흰 봉투에 2,000만원(자기앞수표 500만원권 1매, 100만원권 15매)을 넣어 손병선에게 제공하고 나자 손병선은 민중당 창당시 신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촬영해 두었던 명함판 사진 1매를 건네주었다.

□ 1990년 10월경 이선실은 민중당 당무회의에 참석, 민중당 당직자로부터 『2,000만원을 특별 헌금하셨다』는 소개와 함께 참석한 당무위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 그후 1990년 10월17일 이선실은 입북한 후 A-3 지령 방송을 통해 손병선에게 북한에 무사히 도착하였음을 알려왔고 1990년 11월10일 민중당 창당대회시에는 『창당 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황인오 포섭, 입북시킴〉

□ 1990년 6월 중순 이선실은 서울 중구 명동 소재 YWCA 회관에서 개최된 민중당 창당 발기인대회 참석시 사회자로부터 『이선화 여사(이선실 지칭)는 평생을 바쳐 번 돈을 우리 민중당에 헌납하셨다』고 소개의 말을 들었고 동 대회 후 인근에 있는 상호미상 식당에서 장기표의 처 조무하가 민가협 회원들에게
-이 분이 평생을 바쳐서 번 돈을 민중당에 헌납하셨다. 전에 우리 민가협 사무실을 얻을 때 돈을 보태주신 분도 바로 이 분이다.
라고 소개하자 이선실은
-나는 민중당을 지지하는 사람인데 혼자 살면서 삯바느질로 평생 모은 돈을 헌납한 것뿐이다.
라고 한 후 개별 인사시 조무하로부터
-이 분은 서울대 대자보사건으로 구속된 서울대생 황인욱의 모친인데 아들 3형제가 감옥생활을 하고 지금은 출소하여 잘 살고 있다.
는 등 황인오의 모 전재순(60)을 소개받고 이선실은 전재순에게
-아드님들은 뭘하느냐.
고 물어 전재순이
-2남 황인오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3남 황인혁은 성남에서 노총에 다니고 있으며 4남 황인욱은 서울대에 재학중이다.
라고 대답하자 이선실은
-그렇습니까, 다음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인오와 같이 사느냐, 인오에게 할 얘기가 있는데 인오 집 전화번호도 알려달라.
고 부탁하였으나 전재순이 황인오의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우선 전재순의 연락처만을 알아내는 등 포섭대상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 1990년 7월 초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재 민중당 창당준비위 사무실에서 개최된 동당 여성분과위 결성시에 참석하여 민가협 회원 10여명과 다과회를 하고 인근 하얀집 지하다방으로 내려와 전재순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조용히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라고 하자 전재순이
-나중에 집으로 전화를 해달라.
고 하였다.

□ 1990년 7월 초순 이선실은 전재순에게 전화로
-나는 혼자 사는 몸으로 인오를 양자로 삼고 싶다.
라는 구실로 황인오의 전화번호를 재차 물어 황인오의 집 전화번호(859-8761)를 알아냈다.

□ 1990년 7월 중순 이선실은 황인오의 처 송혜순(31)에게 전화하여 황인오가 저녁 10시가 넘어 귀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날 밤 10시쯤 관악구 신림4동 511-8호 당시 황인오 집에 재차 전화하여 황인오에게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고 제의하여 그 주일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한다.

□ 1990년 7월 하순 13:00경 이선실은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인근에 있는 공중전화로 황인오에게
-신대방역까지 왔는데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
라고 연락한 후 수박 1통을 구입하여 마중나온 황인오의 제 황인욱의 안내를 받아 황인오 집을 찾아가 황인오에게
-밖에서 황선생을 기다리는 분이 있으니 잠시 같이 나갔다 오자고 제의하여 황인오의 승낙을 받고 그와 함께 집밖을 나서면서 황인오의 손목을 붙잡고
-사실은 내가 민가협 활동을 하고 있어 황선생 어머님(전재순)도 잘 알고 있고 황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특별히 황선생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신대방 전철역 근처에 와 있으니 같이 가도록 하자.
라고 하여 지하철 2호선 신대방 전철역 인근 제방독에 있는 벤취로 유인하여 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파간첩 권중현에게 인계, 간첩으로 포섭토록 하였다.

□ 그후 1990년 10월 초순 이선실은 관악구 봉천동 전재순 가를 방문, 황인오, 송혜숙(황인오의 처), 전재순, 황인욱 등과 저녁식사 후 그들에게
-나와 손잡고 일하면 살 길이 생긴다.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 방법은 우리 공화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북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
-인오는 이달 안에 북에 갈 것이니 준비를 하라. 극비사항이다.
-북에 가면 김정일 비서는 물론 주요인사들과 만날 것이다. 기간은 4~5일 걸릴 것이니 준비물 등은 차후 다시 알려주겠다.
-인욱이는 북에 갈 명단에 들어있지 않으니 평양방송을 듣고 있어라.
고 지시하고

□ 1990년 10월 초순 이선실은 관악구 신림동 황인오 가에서 황인오 부부, 전재순 등에게
-북에 가는 문제는 우리가 다 알아서 주선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4~5일만 다녀오면 된다.
-북에 갈 때는 애아빠가 집에 있는 것처럼 하고 절대 비밀을 지켜라.
고 한 후

□ 1990년 10월16일 17:00경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인근 돌곶이산에 있는 쌍묘 부근에서 북한공작원 권중현, 김동식 및 황인오와 만나 복귀를 대기하면서 황인오에게
-나는 해안전투(침투)를 여러 번 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
고 안심시키는 말을 하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때 이선실은 여권이 있어 제3국을 통해 얼마든지 입북할 수 있었는데도 76세의 나이로 반 잠수정을 타고 입북한 것은 황인오를 안심시키려고 한 행동으로 보인다.

□ 1990년10월16일 23:40경 이선실은 남파간첩 권중현, 김동식 및 황인오 등과 함께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쌍묘 부근에서 출발, 약 10분간에 걸쳐 접선해안 개펄가로 이동, 북한 해상공작 기지에서 공작선편으로 남파되는 호송 안내조와 접선을 위해 대기타가 同日 24:00경 권중현 등 일행과 함께 남파된 호송안내조와 3회에 걸쳐 타석신호 후 접선, 그들로부터 방수용 고무옷을 지급받아 입고 20여분간 개펄 위를 도보로 이동하여 해상에 정박 대기중이던 반잠수정에 탑승하여 황해도 해주를 통해 복귀하였다.

〈영웅칭호 수여〉

□ 이선실(이화선)은 이와 같은 공로로 남파기간 중 북한으로부터
-1980년 10월 밀 1986년 10월 등 2차에 걸쳐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에 추대되었고
1982년 2월, 1986년 11월, 1990년 4월 등 3차에 걸쳐 북한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또한 1981년 11월 국기훈장 1급, 1982년 4월 김일성 훈장 및 금시계, 1982년 9월 조국해방기념훈장, 1985년 8월 국기훈장 1급 및 조국해방 기념메달, 1986년 12월 노력훈장 등을 수여받았고
-1990년 5월에는 북한의 최고영예인 『영웅』칭호를 받기도 하였음.

3. 이선실 국내활동자금 증식상황

□ 이선실은 1980년 3월30일 영주 귀국 후 1990년 8월말까지 국내에서 암약하면서
-은거 아지트 명목 등으로 5회에 걸쳐 부동산을 매매하여 약 8,625만원 이득을 보았고
-김옥기를 통한 보험적금 등으로 약 1,500만원의 이득을 보는 등 총 약 1억원을 벌은 것으로 밝혀졌음.

□ 부동산 증식 상황(약 8,625만원)
-1979년 12월 동작구 대방동 344-5 소재 가옥(제 2아지트)을 백덕만 명의로 3,675만원에 매입하여 1981년 11월 신순녀 명의로 등기 후 1986년 9월 8,000만원에 매각하므로써 차익금 4,325만원을 취득
-1983년 5월경 신길4동 458-17 소재 3층 양옥을 김옥기 명의로 3,800만원(전세:2,300만원, 매입금:1,500만원)에 매입하여 그후 1984년 5월경 5,000만원에 매각, 차익금 1,200만원을 취득
-1983년 4월 신월동 소재 연월시장 상가 점포 1칸(5평 5홉)을 김옥기 명의로 1,350만원에 매입, 현존(싯가 2,000만원으로 김옥기에게 제공한 것이며 현재 매매할 경우 600만원 가량의 차익금을 취득할 수 있음)
-1984년 12월 안양 비산동 부흥(아) B동 208호를 백덕만 명의로 1,700만원에 매입 후 김옥기 명의로 명의 이전하였다가 2,000만원에 매도, 차익금 300만원을 취득
-그후 1987년 2월 동작구 대방동 391-312 소재 2층 양옥(제 4아지트)을 김옥기 명의로 5,800만원에 매입한 후 1988년 11월 8,000만원에 매각하므로써 차익금 2,200만원을 취득(매입시 김옥기가 1,200만원 투자, 이익금 포함 2,000만원을 김옥기에게 제공)하는 등 총 8,625만원의 부동산 차익금을 취득하였음.

□ 동산 취득 상황(약 1,500만원)
-1982년 6월 이선실은 자기소유 1,000만원을 김옥기 친구들에게 5개월간 사채놀이(2부~3부5리)하여 사채이자 약 170만원을 취득
-1983년 10월 김옥기의 소개로 신순녀 명의로 대한교육보험 남경지부에 1,000만원(1년 만기)짜리 보험예금 가입 후, 1984년 10월 이자 포함 약 1,13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130만원 취득
-1984년 11월 역시 신순녀 명의로 보험예금 1,500만원(1년 만기) 가입 후 1985년 11월 1,690만원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190만원 취득
-한편 1986년 2월 이선실은 김옥기 명의로 2,000만원(1년 만기)짜리 보험예금 가입하여 1987년 2월 약 2,27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274만원을 취득하였고
-1987년 2월 역시 김옥기 명의로 2,000만원(1년 만기)짜리 보험예금 가입하여 1988년 2월 2,27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270만원을 취득
-1987년 8월 김옥기 명의로 3년 만기 1,000만원 보험예금 가입 후 1990년 8월 1,20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200만원을 취득
-1987년 12월 신순녀 명의로 1,500만원(1년 만기)짜리 보험예금 가입 후 1988년 12월 1,64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차익금 140만원을 취득
-1988년 12월 김옥기 명의로 2,000만원 보험예금 가입 후 1990년 9월경 중도해약 2,070만원을 인출하므로써 70만원의 차익금 취득하므로써 총 1,500여만원의 동산 차익금을 취득하였음.

4. 북한에 복귀 후 상황

□ 1990년 10월17일 02:00경 이선실 등 일행은 황해도 해주 인근 대남공작 해상기지에 도착, 대기중이던 북한사회문화부 부부장(60세 가량)의 영접을 받고 대기중이던 승용차 편으로 1시간 가량 이동 후 미상지 건물에 도착 잠시 휴식타가
同日 09:00경 사회문화부 부부장(60세 가량), 권중현, 김동식, 지도원 2명, 황인오 등과 함께 승용차 편으로 해주 시내를 통과하여 해주 시내 인근 벌판에서 헬기를 이용 50여분간 이동 후 평양 순안 비행장에 도착, 사회문화부장 리창선의 포옹과 함께 열렬한 영접을 받고 리창선으로부터
『할머니 이게 얼마만이요, 10년이 넘었잖소』
『수령님이 보내주신 보약을 잘 잡수셨소』
라는 말을 듣고 이선실은
『부장님이하 다들 걱정해 주셔서 무사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저 같은게 다 뭐라고 두 번씩이나 배려를 해 주셔서 얼마나 송구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후 이어서 리창선, 황인오, 김동식, 권중현 등 일행과 함께 3~4대의 벤츠승용차에 분승, 만수대의사당내 김일성 동상 앞에서 황인오, 권중현, 김동식과 함께 헌화한 후 김일성 동상 기단을 붙잡고 한참동안 울먹인다.
-동상 참배 후 황인오를 평양교외 어느 초대소에 수용시킨 후 12:00경 동 초대소 별채 2층 소재 식당에서 이선실은 리창선, 황인오 등과 함께 백로술, 용성 맥주, 금패 인삼주 등을 놓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건배합시다』라는 제의와 함께 술을 1잔씩 마신 후 광어회, 비둘기 고기, 소혀, 소심장, 잡채 등의 메뉴로 점심식사를 한 후
-이어서 동 초대소내 영사실에서 리창선, 권중현, 김동식, 황인오, 지도원 2명 등과 함께
『김일성 부자 치적 기록영화』, 『임수경 체북 기록영화』를 1시간 동안 관람하고

□ 1990년 10월18일 07:00경 위 초대소 식당에서 권중현, 김동식, 지도원 2명 및 황인오와 함께 아침식사 후 동일 12:00경 위 초대소 식당에서 사회문화부 부부장, 황인오 권중현, 김동식, 주체사상 연구소 소장 박승덕 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으며

□ 1990년 10월21일 09:30경 위 초대소 1층 회의실에서 사회문화부 부부장, 권중현, 김동식 및 지도원 1명과 함께 황인오에게 지하당 조직원칙, 조직형태에 관해 지도 교양하고

□ 1990년 10월22일 11:00경 위 초대소 1층 회의실에서 사회문화부 부부장, 권중현, 김동식 등이 배석한 가운데 황인오의 노동당 입당식을 거행하였으며

□ 1990년 10월23일 12:00경 위 초대소 2층 식당에서 사회문화부장 리창선, 부부장, 권중현, 김동식, 지도원 2명, 성명미상 과장, 황인오 등과 함께 황인오 환송만찬회 개최 등 황인오 수용 초대소에서 함께 체류하였음.

□ 이후 이선실은 1991년 1월 김일성이 재일 조총련 부의장 신상대,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 윤이상 접견시 배석(공식석상 출현사실 평양방송 처음 보도)하는 등 북한 정치국 행사에 참석하여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이후

□ 1991년 2월에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 공작기구인 「한국 민족민주전선」(한민전) 부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 금년 4월15일 『김일성 80회 생일기념연회』에는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바 있고

□ 그리고 금년 9월9일 북한정권수립 44돌 행사에서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권력서열 22위』라고 발표되기도 하였음.

□ 한편 이선실(이화선)과 제주도 고향친구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순(가명, 여, 77세)은 1991년 2월 국내 입국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화선의 모 김경량으로부터 『화선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 네가 일본에 살고 있으니 소식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귀일하여 1992년 4월 마침 자신의 북송된 아들 양성철(가명, 57세)을 만나기 위해 방북하였을 때
-40세 가량의 여자 안내원에게 『나는 고향이 제주도다. 내고향 친구중에서 6·25때 월북한 이화선이라고 있는데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알아볼 수 없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지금 매우 훌륭하게 되어 만나볼 수 없다. 고급차를 타고 호위를 받으며 다니는 영웅이 되었다』
라는 말을 들은 바 있고
-제주출신 북송자 김영자(가명, 76세)를 만나 이화선의 소식을 묻자
·『화선이는 이곳에 와서 공부를 많이 했다. 아주 좋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대단히 높은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남조선에도 여러 번 갔다왔다는 말을 들었다. 남조선에 가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
·『그 사람은 누가와도 만나주지 않으며, 전 남편(김태종)이 양녀를 데리고 공화국에 들어와서 몇 번이나 만나려고 하였지만 만나주지 않고 양녀만 받아들였다』
·『그 양녀는 이화선 덕분에 시집을 잘 갔다더라』
·『여기서는 이화선을 이선실이라고 부른다』
라는 말을 듣고 일본으로 돌아온 사실이 있다 하며
□ 1992년 8월 위 김영순이 국내 입국하여 이화선의 모 김경량을 만나 『화선이는 북한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통일이 될 때까지 살아계시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화선의 소식을 전해준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결어〉

□ 현재까지 수사결과, 북한 권력서열 제 22위이며 당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은 최근 10여년간 서울에 잠복, 장관급 거물간첩 「임」모 등 북한 직파간첩 10여명을 지휘하여 남한 내에 북한 공작지도부를 구축하고
-과거 남로당과 같은 성격의 남한내 「조선 노동당」과 그 산하에 그들이 남한에 실존한 것으로 선전해 왔던 「한국민족민주전선」(이하 「한민전」)을 실체화시킨 「애국동맹」을 결성하였으며
-민중당을 제도권 내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정치적 별동대로 만들어 대통령 선거때 반민자당 연합전선을 형성, 야당이 집권하면 정치적 지분으로 미군철수, 국보법 철폐, 안기부 해체 등을 요구, 적화통일 장애요인을 제거하여 정치적 혼란을 조성한 다음
-93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들이 각계 각층에 침투시킨 합법·비합법 조직을 총동원하여 연공정부를 수립, 1995년에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이룩한다는 전략하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며 대담한 대남적화 공작을 수행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 끝으로 그동안 이선실의 전모를 1, 2회에 걸쳐 연재하였는데 금번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을 통해 압수된 간첩장비는 권총 6정, 실탄 220발, 무전기 8대, 난수표 17매, 수류탄 8발, 독약앰플 5개 등 총 125종 1,680여 점이며

□ 이선실은 1986년 9월~1990년 9월간 공작금으로 도합 1억 8천여 만원 가량을 간첩 손병선 및 ○○○, ○○○ 재야단체 관계자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지원하였다. 이선실은 위 활동자금 대부분을 본명 명의로 수표를 발행하여 대상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입금시키는 방법 등으로 공작금을 지원하였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dataroom/databoardread.asp?idx=63&cPage=2&table=dataroom


「남한 조선노동당」 조직원들이 작성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의 편지』

1992. 10

국가안전기획부

□ 본 자료는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책 황인오가 김일성 80회 생일(4월15일), 김정일 50회 생일(2월16일)을 계기로 조직원들에게 지시하여 작성한 『충성의 편지』로서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디스켓 및 유인물에 수록된 것임.
□ 이들 『충성의 편지』는
-남한 혁명투쟁에 있어서 『견결한 김일성주의자』 『주체형의 혁명전사』가 될 것을 다짐하고
-북한 사회를 『지상의 낙원』으로 찬양하는가 하면
-미군철수 등 반미투쟁을 기조로 한 반정부·통일투쟁을 선동하고 있는 등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 되어 있음.
□ 따라서 본 자료는 「남한 조선노동당」의 조직원들이 김일성·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산 증거라고 하겠음.

Ⅰ. 『충성의 편지』 작성경위

□ 본 『충성의 편지』는 「남한 조선노동당」의 전위조직인 「애국동맹」 산하 「5·1 노동동맹」 총책 함정희(여, 28세, 상명여대 졸)가
-김일성-김정일 생일을 맞이하여 충성의 편지를 작성하라는 최호경(강원도당 지도책)의 지시에 따라
-산하 조직원들에게 축하편지를 작성(김일성 생일 22명, 김정일 생일 20명)토록 하여
□ 김정일 생일 축하편지는
-1992년 2월 초순경 김현찬(중앙위원, 26세, 서울농대) 등 「5·1 동맹」 산하 조직원 20명이 작성한 것을 전달받아 이를 롯데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최호경에게 전달하였으며
□ 김일성 생일 축하편지는
-1992년 3월 하순경부터 4월 초순경간 「5·1 동맹」 중앙위원 민영환 등 22명이 작성한 것을 전달받아 1992년 4월5일 역삼동 『원두막』 커피숍에서 최호경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음.
□ 본건 관련, 「남한 조선노동당」 총책 황인오와 강원도당 지도책 최호경을 신문한 결과 동 편지들을 북한에 전달하려 하였으나 노출될 것을 우려, 보류하였다고 진술

Ⅱ. 주요 내용

①남한혁명투쟁에 있어서 『견결한 김일성주의자』 『주체위업을 계승 집행하는 한국혁명전사』 『주체형의 혁명가』가 될 것을 다짐
□ 『인민대중을 사랑하시며 보살펴주신 지도자 동지의 여러 일화들은 견결한 김일성주의자로서 한국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살며 투쟁하고자 하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음』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사상과 작풍을 온전히 체험하며 지도자 동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음』
□ 『저는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이 가르켜 주신대로 생각하고 선생님의 교시를 무조건 실행하는 전사가 될 것을 맹세함』
□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지도자 동지의 뜻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받들어 집행하는 혁명전사가 되겠음』
②북한에 대하여 『세계 인민들의 희망, 등불』 『민중의 지상낙원』으로 표현함으로써 북한 사회주의를 동경
□ 『언제나 장군님께서 휴전선 이북에 건설해 주신 주체의 조국을 동경해 왔음. 걱정을 모르고 언제나 장군님의 품, 우리당의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북의 어린이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저의 고민과 근심이 사라지고, 이곳 이남에 건설될 민중의 낙원을 그려보며 한껏 꿈에 부풀기도 함』
□ 『이북 사회주위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의 희망이며 등불임』
□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따뜻한 사랑속에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이북동포들이 부러워짐』
□ 『세계가 수령님을 높이 우러르는 것은 수령님께서 펼쳐놓으신 민중의 지상낙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보고 한없이 고무되기 때문임』
□ 『세계 진보적 인류의 부러움과 경탄을 자아내는 민중중심의 지상낙원, 주체의 조국으로 세계 만방에 빛을 뿌리는 이북사회』
③남한을 『친미파쇼정권』으로 매도하면서 정치·경제·군사 등 제분야에서 미국에 예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반미·반정부 투쟁선동
□ 『미제에 빌붙어 장기집권 음모에 눈이 멀어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친미 파쇼정권』
□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민중들이 하루하루를 빈궁과 고역 속에 살아가고 있음』
□ 『경제는 미제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거리와 가정에는 제국주의의 퇴폐문화, 이기주의가 판을 쳐 민중들의 정신을 몽매하게 만들고 있음』
□ 『저는 우리의 원수인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우리민중을 자주적으로 서게 하는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겠노라고 약속한 노동자임』
□ 『청춘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양키의 용병으로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제대 후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한숨 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이남 사회의 비참한 현실의 한 단면을 그대로 느꼈음』
□ 『제국주의의 우두머리 미제를 이 땅에서 내쫓고 민족반역의 무리인 ○○○정권을 타도하여 조국통일의 대로를 열어제끼는 혁명의 길』
④김일성, 김정일에 대하여 『향기로운 꽃』 『커다란 빛』 『구원의 등대』에 비유하면서 숭모하고 있다고 찬양
□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것처럼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향한 흠모의 존경심은 날로날로 더해져만 갑니다』
□ 『험난한 비바람을 헤치며 이리저리 떠다니는 조각배에게 커다란 빛으로 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 『이북을 민중중심의 불패의 사회주의로 만드신 김정일 비서님은 미제와 파쇼독재 세력에게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는 우리 이남 민중에게도 구원의 희망이며 등대이심』
□ 『이북 민중들에게 평등하고 인간적인 삶을 안겨주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김일성 주석님이고 김정일 비서님임』
□ 『존경하는 지도자 동지께 저의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담아, 오로지 지도자 동지께서 가리키는 한길만을 따라 전진해 나가고자 하는 혁명적 신념을 담아 충성의 인사를 올림』
⑤남한을 1995년까지 적화통일시킬 수 있도록 『혁명의 전사』로서 자주·민주·통일투쟁에 매진할 것을 결의
□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반도가 완전히 주체의 사회주의 나라가 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임』
□ 『1995년까지 조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한몸을 자주·민주·통일 투쟁에 바치겠음』
□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께서 안겨주신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끄럼없이 빛내어 이남의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를 끝장내고 전 민족적 자주권의 확립을 위하여 분투 정진하겠음』
□ 『저는 앞으로 김정일 동지를 높이 모시고 혁명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모든 것을 바치는 충직한 혁명의 전사, 수령님의 전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음』
□ 『보잘 것 없는 육신이지만 이몸 가루가 되어 허공을 떠돈다 하더라도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원대한 구상이 우리민중의 뜨거운 바램대로 온 나라에 펼쳐질 때까지 투쟁하겠음』
⑥주체사상은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혁명사상으로 사회주의 혁명투쟁의 지표가 된다고 선전
□ 『이 척박한 땅의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가 자주성의 확보문제라고 가르쳐 준 주체사상에 크게 감명을 받았음』
□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운동에서 인간의 자주적 사상의식의 결정적인 역할에 대한 주체사상의 가르침은 확실히 옳다고 생각했음』
□ 『이시대 가장 탁월하고 위대한 혁명학설인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하게 된 저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부러울게 없는 사람이 되었음』
□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길은 필승불패이며 영생하는 삶의 길임』
□ 『자주시대의 향도사상인 주체사상은 남한민중과 세계의 진보적 민중을 자주성의 새세계를 향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고 있음』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 풍부화, 체계화시키신 주체사상을 접하고는 마치 캄캄한 밤바다에 등대를 만난 듯 감동을 받았음』
⑦북한의 대남위장 선전기구인 「한민전」의 지침에 무조건 복종할 것임을 천명
□ 『수령님께서 계셨기에 불패의 전위, 한국민족민주전선이 있고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전진이 있으며 수많은 이남민중이 참된 삶을 찾을 수 있었음』
□ 『저는 영생불멸의 김일성 주의로 철통같이 정신무장하여 생활과 활동을 주체의 요구대로 이끌어 나가며 한국민족민주전선의 방침을 무조건적으로 관철함으로써 수령님의 충실한 전사로 자랄 것을 다짐함』
□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80회 생신을 맞으며 저의 가슴속에는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음. 그분의 전사라고 자처하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노작을 꼬박꼬박 학습하지 못하였고 한민전의 방침과 조직의 지도를 완벽하게 관철, 수행하는데 부족했음』
□ 『통혁당 전사들의 말씀처럼 마지막 한방울까지 순결해진 피를 조국의 제단에 기꺼이 바치겠다는 각오로 수령님이 주신 생명 빛내어 가겠다고 다짐함』
⑧김일성의 80회 생일(1992년 4월15일)과 김정일의 50회 생일(1992년 2월16일) 축하 편지 내용
□ 『경사스런 「4월의 명절」을 열렬히 축하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
□ 『경애하는 수령님의 80회 생신을 맞이하여 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과 충성의 인사를 수령님께 올립니다』
□ 『다시한번 80회 맞으신 생신을 축하드리면서 이땅에 장군님을 하루라도 빨리 모시고자하는 저희 청년들의 염원으로 만수무강을 비옵니다』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탄신일을 열렬히 축하하며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사를 올립니다』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이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한 노동자가 삼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1992년 2월16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충성을 인사를 드립니다』
⑨김일성 80회 생일 축시
□ 전 민중의 어버이이신 존경하옵는 김일성 수령님!
이남 민중의 사무치는 흠모의 정과 그리움을 모아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투쟁의 한 길 기필코 가리라는 뜨거운 충성의 결의를 모아 80회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 80년 한 평생을 한결같이 혁명과 건설의 어렵고 험난한 그 한길을 한치도 어김없이 헤쳐오신 수령님!
수령님의 고귀한 모습은 수령님의 충실한 전사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꺾을 수 없는 공산주의 혁명가로 살고자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긴 불꽃이고 애인입니다.
□ 수령님의 영도따라 헤쳐나가는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수령님의 전사로 충성을 맹세한 우리들은 혁명의길 끝나도록 언제나 청춘일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건강하소서.

□ 본 『충성의 편지』는 1992년 1월 남한 조선노동당 강원도당 지도책 최호경(35세, 전 민중당 성남을 지구당 사무국장)의 지시에 따라 「애국동맹」 산하 노동자 조직인 「5·1 동맹」 지도책 함정희(여, 29세, 상명여대 졸)가 산하 조직원들로부터 작성받은 김정일 생일 축하편지(17통)로
□ 고정간첩 황인오(36세, 남한 조선노동당 총책)가 동생 황인욱(25세, 남한 조선노동당 편집국장)을 통해 디스켓에 보관한 것을 적발, 압수하였음.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탄신일을 열렬히 축하하며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하신 주체사상으로 하여 참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때 저는 삶의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조국과 민중의 운명을 등지며 일신의 안일을 위하여 살아가고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자주성은 사람의 생명이며, 자주성이 사람의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일컫는다』, 『사람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은 가장 고귀한 것이다』라는 주체사상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며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저에게 뚜렷이 밝혀 주었습니다. 이 때 가졌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체사상을 발전 풍부화사키고 완성하신 분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였음을 알았을 때 지도자 동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은 한없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며 삶을 개척해나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가르침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은혜로 남습니다. 이 가르침과 은혜를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며 주체사상이 제시하는길을 따라 살며 투쟁할 것을 다짐합니다.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계승 완성하신 주체의 위업은 오늘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책동이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이 때,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회주의 나라들의 몰락과 제국주의자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반동적 공격속에서 사회주의의 원칙을 굳건히 견지하시고 주체의 혈통을 한 치의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시는 지도자 동지의 비범한 영도력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북 사회주의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 이러한 자랑차고 위대한 일을 주체위업의 계승자로서 진두에서 지휘하신 지도자 동지를 민족의 지도자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한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북 사회주의를 파탄시키기 위한 미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음모를 분쇄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계승하신 주체위업을 전국적 범위에서 완수해내기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주체위업을 계승하고 완성하시는 길에서 지도자 동지께서 보여주신 민중에 대한 한 없는 사랑,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사업 등은 저의 활동 속에서 언제나 구현해야 할 귀중한 모범으로 됩니다. 인민대중을 육친의 정보다 더 깊이 사랑하시며 보살펴주신 지도자 동지의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받은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견결한 김일성주의자로서 한국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살며 투쟁하고자 하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사상과 작풍을 온전히 체험하며 지도자 동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저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지도자 동지의 뜻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받들어 집행하는 혁명전사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도자 동지께서 저에게 참된 삶의 길을 깨우쳐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지도자 동지의 탄신을 축하하며 충성의 맹세를 보냅니다.

1991년 1월19일 ○○○

★존경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안녕하세요? 늘 지면이나 TV를 통해서만 뵙다가 이렇게 직접 편지를 쓰게되니 무척 감격스럽고 무한한 영광을 느낍니다.
수령님의 현명한 지도아래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 속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승리로 이끈 자랑찬 혁명전통을 다시금 떠올리며 저는 움추렸던 어깨를 폅니다.
우리 민중들의 삶은 지금 벼랑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따뜻한 사랑 속에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이북동포들이 부러워집니다. 왜 이남 민중들은 한없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사랑 안에서 살지 못하는가? 그것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그 답은 명확합니다.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정신대」문제를 보며 12살 소녀마저 위안부로 보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미국놈의 위안부로 살아가는 수십 만 명의 매춘부들을 잊고 있는 듯합니다. 4천만 이남 민중들이 미국놈들의 노예로 굴종의 삶을 살아가며 자주성을 억압받고 있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미제는 핵공갈 위협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도가니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대미종속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제에 빌붙어 장기집권음모에 눈이 멀어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친미파쇼정권, 그 아래 숨이 턱턱 막히도록 고통받는 우리 민중들, 세계 최장시간 노동과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형제들과 《쌀수입저지》, 《쌀값보장, 전량수매》를 외치며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쌀에다 불을 질러야만했던 농민들, 그리고 포크레인과 불도저로 집이 철거당해 거리에 나앉은 철거민들의 힘겨운 나날들, 거기에다 미래의 새싹들인 청소년들은 잘못된 교육으로 자살·강도·폭행을 일삼는 현실, 언제 어디서 인신매매를 당할지 모르고 성폭행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 어디 이뿐인가요? 하나에서 열까지 썩어 문드러져 터질대로 터진, 사람보다 돈이 최고인 이남사회는 정말 사람 살 곳이 못되지요. 사람이 사람을 못 믿고 의심부터 해야하는 이 사회가 어디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나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현명하신 지도로 우리 민중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세계의 주인으로 나서 빼앗긴 자신들의 몫을 찾기 시작했고 반미 반파쇼투쟁에 적극 나서게 되었지요. 향기로운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것처럼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향한 흠모와 존경심은 날로 날로 더해져만 갑니다.
애국적 민주세력의 단합 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결성과 《남북사이의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의 채택을 보며 통일은 바로 우리 코앞에 있음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이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현명한 영도의 결과입니다.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이리도 할 수 없습니다. 험난한 비바람을 헤치며 이리저리 떠다니는 조각배에서 커다란 빛으로 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참으로 우리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로 인해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혁명의 한 길을 가게 됨은 일생의 영광이요 자랑입니다.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현명한 영도아래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단결한 우리에게 못 넘을 산은 없습니다. 동구나 소련의 일련의 사태를 보며 이북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깊이 깨달으며 더욱 굳은 신념을 가집니다. 주체시대의 영생불멸의 향도사상,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사상이론의 거장이신 수령님과 주체사상을 완성하신 지도자 동지께서 우리에게 계심은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가요.
지도자 동지의 50돐 생신을 맞아 그 비범한 영지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적 품격을 높이 우러러 봅니다. 그리고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과 인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가슴깊이 느끼며 한없는 존경심을 가집니다. 이제 우리는 전당과 인민이 대를 이어 지도자 동지께 충성을 바치며 혁명위업에 복무할 것입니다.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영도따라 가는 길에 패배는 없습니다. 오직 승리뿐입니다.
지도자 동지! 7천만의 절절한 소원을 모아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도자 동지는 7천만의 기둥이십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1992년 2월16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충성의 인사를 드립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전세계 민중의 유일한 지도사상, 주체사상을 더욱 빛나게 완성하시고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압력 속에서도 항상 사회주의 건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도하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웅적인 투쟁과 빛나는 업적은 한반도 7천만 민중뿐 아니라 전세계 진보적 민중들의 자랑입니다.
특히 최근의 소련과 동구사태는 우리들을 혼동시키고 흔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국 북반부의 인민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시의 향도따라 조금도 흔들림없이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발전시키고 반제자주진영으로 우뚝 서게 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전쟁도발책동과 같은 음모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튼튼히 세워나가시고 전세계 민중을 위해 항상 앞에서 올바른 길로 영도하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승리로 이끄신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향도따라 한반도가 완전히 주체의 사회주의나라가 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고 1995년까지 조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한 몸을 자주 민주 통일투쟁에 바치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7천만 민중과 함께 축하드리며 삼가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1992년 1월19일 ○○○ 드립니다.

★충성의 맹세
남한의 미제의 식민지지배로 민중들이 하루하루를 빈궁과 고역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보적인 생존권마저도 무참히 짓밟히고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미제에 의해 길러진 괴뢰도당들은 옷을 바꿔 입으며 상전의 뜻을 받들어 자신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민중들에게 총검을 들이대고 있으며 경제는 철저히 예속되어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거리와 가정에는 제국주의의 퇴폐문화, 이기주의가 판을 쳐 민중들의 정신을 몽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구한 기간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싸워오시며 한 세대에 두 개의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어 민중들에게 주체의 사회주의낙원에서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하여주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께 다함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주체의 위업을 이어받아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고 제국주의의 악랄한 침략책동 속에서도 주체의 사회주의를 튼튼히 보위하시고 세계혁명의 보루로 지원지로 만드시었으며, 식민지 남한 민중의 고통을 자신의 슬픔으로 안으시고 해방과 통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시는 민족의 향도자 김정일 동지께 이곳 전위들과 민중들은 충성의 맹세를 드립니다.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미제의 식민지지배를 끝장내고 파쇼괴뢰도당들을 물리쳐 7천만 민중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90년대에 몸바쳐 이룩할 결의를 다집니다.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50회 생신을 맞아 드리는 충성의 편지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길은 민족자주의 길!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길은 조국통일의 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위업을 전면적으로 계승해 나가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아 우리 노동자들은 19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맞이하기 위해 주체의 기치를 더욱더 높이 들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영도따라 힘차게 싸워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김정일 지도자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있는 모대학을 다니다 파쇼병영에서 제대한 지 얼마되지 않은 청년지식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족하기만 한 제가 감히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 충성의 편지를 올리는 영광을 받아 안게 된 것에 어찌할 바 모를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제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을 처음 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전 겨울에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불멸의 노작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받았던 감동이 생생합니다. 위대한 주체사상의 진수를 알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쓰여진 사상이론에 지쳐버린 저에게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마음의 횃불이었고 사대와 교조를 꾸짖는 채찍이었습니다. 주체사상의 진수를 밝혀주신 노작의 구절구절에서 물씬 배어 나오는 민중에 대한 한없는 사랑,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일어서는 민중의 불패의 저력을 밝혀주신 데 대해 동지들과 서로 무릎을 치며 우리의 유일한 향도이념을 찾았노라고 기뻐하며 감동했던 기억들이 새롭습니다. 당시 그 노작을 가슴에 받아 안으며 저는 도대체 어떤 분이 이 노작을 쓰셨을까 하고 매우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후에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노작을 통해서야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쓰신 분이 다름아닌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양키놈들과 그 앞잡이들의 악랄한 중상모략책동으로 사상적 혼란과 북한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저에게 조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신심이 생겼고,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님의 대를 이으실 또 한 분의 걸출한 수령님을 우리 민족이 모시게 된 크나큰 영광을 느꼈습니다. 기쁨과 흥분으로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노작을 며칠밤 보고 또 보면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일제의 잔재가 온존되어 있고 양키놈들의 노린내로 쩔어있는 군병원에서 군생활을 했었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사역과 구타 속에서 저는, 소설 《한 자위단원의 운명》에 등장하는 망국노의 설움과 수치심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했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무자비한 구타와 북침전쟁연습에 희생된 꽃다운 청춘들의 주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나라의 자주권을 남에게 빼앗긴 식민지 용병인 이남청년들의 목숨은 파리목숨에 불과했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한 이 죽음들 앞에 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땅을 치며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울분이 엇갈리며 괴로워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청춘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양키의 용병으로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제대 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전역을 앞두고도 잠 못 이루며 한숨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이남 사회의 비참한 현실의 한 단면을 그대로 느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선생님! 저는 결코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통분만 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가슴은 조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체의 조국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민족적 자부심이 4천만 이남민중 속에 충만되어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영도자를 우리 민족이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소련을 방문한 이남사람에게 소련의 한 관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우리 소련에는 지금 그 어떤 희망이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조국은 다르다. 지금은 비록 미국의 식민지 처지이지만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그것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을 영도자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대한 영도자를 모시지 못한 이유로 미래도 희망도 없게 되었다. 당신들이 부럽다』
그렇습니다. 비록 지금은 미제의 식민지 통치아래 짓밟히는 신세이지만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을 영도자로 모시고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이 땅에서 미제와 그 주구들을 내쫓아버리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품속에서 값놓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자주를 지향하는 우리 4천만 이남민중의 염원은 그 어떤 힘으로도 억누를 수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가 받아 안기에는 벅찰 정도로 소중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빛내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그리고 몸이 가루가 되면서도 충성했던 선배전사들의 모범을 따라 배워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이 가르켜 주신대로 생각하고 선생님의 교시를 무조건 실행하는 전사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보잘 것 없는 육신이지만 이 몸 가루가 되어 허공을 떠돈다 하더라도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원대한 구상이 우리 민중의 뜨거운 바램대로 온나라에 펼쳐질 때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뜻깊은 50회 탄신일을 맞으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 당신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7천만 겨레의 뜻을 생각하시어 올해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992년 1월18일 ○○○ 올림

★김정일 동지께 올리는 충성의 편지
올해로 50회 생신을 맞으신 김정일 동지께 충성의 편지를 올립니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탄생하시오 조국의 혁명과 건설에서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인민들에게 행복과 신심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전일적으로 집대성하셨으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 하는 데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1960년대부터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는 대중운동의 진두에 서시어 3대 혁명을 성과있게 전진시키셨습니다. 주체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어가시는 김정일 동지를 모신 우리 인민들은 한없는 영광을 안은 인민입니다.
동구와 소련의 투항은 우리 혁명에 준엄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의 사회주의 조국에 군사적 공세와 사상문화적 공세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동지를 높이 모신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불패의 위력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이남의 혁명가들도 김정일 동지를 높이 모시고 이남혁명의 전도를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항일혁명전통과 주체사상의 위대한 힘을 받아안은 저는 앞으로 김정일 동지를 높이 모시고 혁명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모든 것을 바치는 충직한 혁명의 전사, 수령님의 전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태와 안일을 질타하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께서 안겨주신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끄럼없이 빛내어 이남의 식민지 자본주의사회를 끝장내고 전 민족적 자주권의 확립을 위하여 분투 정진하겠습니다.
50회 생신을 맞으신 김정일 동지께 충성의 결의를 올립니다.

★충성의 편지
주체위업의 계승자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탄생 50주년을 맞아 이남의 애국민중과 전위투사들은 깊은 흠모와 정성을 모아 열렬한 축하인사를 올립니다.
세계 진보적 인류의 부러움과 경탄을 자애는 민중중심의 지상낙원, 주체의 조국으로 세계 만방에 빛을 뿌리는 이북사회의 앞장에는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이 서 계십니다.
공장을 하나 건설하여도 노동자들의 안전과 휴식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시고, 교육사업을 하여도 지, 덕, 체를 골고루 갖춘 전면적으로 발전된 인간교육을 앞세우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고매한 인간적 풍모는 만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고 그들의 과오를 끝까지 고쳐주시며 인류의 이상인 공산주의사회까지 함께 이끌어 가시려는 어버이의 심정으로 일군들을 대한 이야기에 접했을 때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을 떠난 자식을 못내 그리워하듯 남녘 동포를 생각하시어 밤늦은 집무실 창가를 바라보시며 일군들에게 『남녘의 동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말씀하신 김정일 동지!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나날을 이어가시는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영상이 떠오릅니다.
근래의 국제정세의 대혼란 속에서도 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된 위력으로 제국주의 반동들의 반사회주의 책동을 걸음마다 짖부수며 사회주의 원칙을 옹호고수해 나가는 주체조국이 있고 사상이론의 대가이시며 혁명의 탁월한 영재이신 지도자 동지께서 계시는 한, 역사가 자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안은 이남의 애국민중과 전위투사들은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주체위업의 전국적 승리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체위업의 전국적 승리는 확정적입니다.
제국주의의 우두머리 미제를 이 땅에서 내쫓고 민족반역의 무리인 노태우정권을 타도하여 조국통일의 대로를 활짝 열어 제끼는 혁명의 길에서 우리들은 몸바쳐 일하겠습니다. 우리들은 1990년대가 가기 전에 기어이 조국통일의 광장에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을 높이 모시겠습니다.
이남민중들과 애국전위투사들은 민족의 구성이신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선생님께서 만수무강하실 것을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1992년 2월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미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도 남쪽의 척박한 상황을 깨치고자 하는 한 노동자가 삼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남한의 많은 청년들은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미제국주의로 지배자가 넘겨진 1945년 8월15일 이후 지금까지 정규교과과정을 통하여 민족적 역사관에 입각한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써 위대한 영도자이신 김일성 원수님의 업적은 물론, 위대한 주체사상을 체계화시키신 김정일 동지의 훌륭한 면모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주체사상을 접한 지 얼마되지 않았고, 자라온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심오한 생활교범을 전면적으로 체화하지 못한 노동자로서 주체사상의 올바른 가르침을 모든 사고의 중심에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척박한 땅의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가 자주성의 확보문제라고 가르쳐 준 주체사상에 저는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또한 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운동에서 인간의 자주적 사상의식의 결정적인 역할에 대한 주체사상의 가르침은 확실히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수많은 모순 가운데 하나도 풀 수 없는 해변의 모래알 하나쯤인 존재로 생각해 오던 저는 주체사상을 대하면서 하나의 모래알이 커다란 바위로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힘찬 사상을 김정일 비서께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셨다는 어느 동지의 말씀을 듣고 저는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 땅의 수많은 환란 가운데에서도 그 환란의 정도가 매우 심했던 시기, 자기 배고픔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민족의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시며 내가 앞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신 김일성 장군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혁명의 근거지를 적들로부터 은폐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옮겨다니던 간고한 시기에 탄생하시어 오늘은 우리 혁명대오의 중심에 굳건히 서 계신 김정일 지도자 동지께 다시 한번 삼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간고했던 항일혁명시기에 비하면 오늘 우리의 현실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생각할 때 혁명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과업들에 대하여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금 주체사상의 심오한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혁명과 투쟁의 과정 속에서 저는 그것을 반드시 체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꼭 그렇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원수인 미제국주의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우리 민중을 자주적인 민중으로 서게 하는 데 미약한 힘이나마 함께 보태겠노라고 약속한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는 저는 주체사상을 가슴에 안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단상황에서 비록 김정일 동지를 가까이 대할 수는 없지만 주체사상과 호흡하며 저는 지도자 동지를 항상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인이 성경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이 자기 가슴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듯이 저도 그렇습니다. 위대한 주체사상의 심오한 가르침을 모든 사고와 실천의 중심에 남한의 현시기 혁명과업이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임을 인식하며 반미반파쇼의 대열에서 열심히 싸워 승리를 안아오기 위해 이 마음은 불타고 있습니다.
비록 적들은 손끝과 발끝까지 무장하고 우리를 옥죄고 있으나 우리 혁명의 정당함과 위대함을 가슴에 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설령 참고 견디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다 하더라도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께서 주신 사회정치적 생명을 순결하게 지켜 나가겠습니다.
추신: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위대한 업적과 사상을 제 자식들에게도 일찍부터 가르쳐서 저처럼 늦은 나이에 깨우치는 우매함을 범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992년 1월19일 ○○○ 올림

★김정일 비서님께
안녕하세요? 이렇게 친근하게 비서님을 부르며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비서님께서 제 편지를 읽어보실 것을 생각하면 기쁨과 설레임에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먼저 언제나 민중들을 위해 애쓰시는 비서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비서님을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미제와 파쇼독재자들에 의해 어릴 적부터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고 제도언론의 극히 왜곡된 보도를 듣고 보고 자란 탓으로 진정 비서님의 모습과 하시는 일, 이북 민중들의 삶에 대하여 저는 알지 못하고 살아왔으며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북민중들에게 평등하고 인간적인 삶을 안겨주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김일성 주석님이고 김정일 비서님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자랑스러움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미제의 악랄하고 광폭한 도발행위에 의연하게 맞서 사회주의의 원칙을 가장 철저히 지켜내면서 승리의 나팔소리높이 미제국주의의의 침략적 본질을 세계 앞에 폭로 단죄하시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십니다. 동구권과 소련이 수령과 당이라는 구심을 잃어버리면서 미제국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침략과 문화적 침투 속에서 자신의 역사적 현실적 역할을 방기하고 수많은 민중들을 또다시 제국주의의 제물로 바치고 있는 이러한 난세를 평정하는 길은 오직 비서님의 영도를 받는 길뿐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비서님께서 우리 민족이 진실로 바라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을 고수하며 미제국주의와 파쇼독재자들의 가당치 않은 억지논리와 흡수통일야망을 여지없이 꺾어놓는 지혜와 힘도 보았습니다. 비서님과 주석님께서 선언하신 유엔가입은 남북의 영구분단을 획책하는 미제와 파쇼독재에 대한 유효적절한 현실적 조치였습니다. 기세등등한 미제가 핵개발을 트집잡아 일대 반북소동을 벌이는 것에 당당히 맞서 비핵지대화를 공세적으로 들이대고 급기야 미제와 파쇼세력이 비핵화와 단계적 미군철수를 말하며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게 만듦으로써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서님과 이북민중이 하나로 단결된 모습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비서님의 민중애였으며 주체사상의 위력이었습니다. 저는 민중을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시는 비서님의 민중적 품성을 따라 배우며, 또 주석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보다 널리 전파하신 비서님의 한결같은 충성심을 본받고 뒤따르겠습니다.
지난번 한겨레신문에서 건강하신 비서님의 모습을 뵙고 참 마음 든든했습니다. 참으로, 이북을 민중중심의 불패의 사회주의로 만드신 김정일 비서님은 미제와 파쇼독재세력에게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는 우리 이남 민중에게도 구원의 희망이며 등대이십니다.
이남에서 미제와 독재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비서님과 이북을 헐뜯어보려고 악선전을 쉬지 않고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서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이며 날로 발전 성장해가는 주체 사회주의제도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이남의 민중들은 미제와 노태우 파쇼세력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비서님과 이북의 실상에 대하여 알게 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김정일 비서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 자신, 민족과 조국을 위해 이 몸을 불사르겠다는 각오를 비서님 앞에 다집니다.
민중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시는 비서님의 모습, 자력갱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비서님의 모습, 혁명과 건설에서 원칙이 확고하신 비서님의 모습, 혁명 앞에서 인민 앞에서 겸허하게 자신을 반성하시는 비서님의 모습,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실현을 위해 한 생을 다 바치시는 비서님의 모습…. 그 모습을 따라 배우며 참다운 주체형의 혁명가로 자라나겠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는 가랑잎이 아니라 어떠한 세찬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비서님을 충성으로 받드는 혁명전사로 되겠다는 저의 각오를 들어주시고 지켜보아 주십시오.
승리는 멀지 않았으며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비서님을 무한히 믿고 충성으로 따르려는 각오가 있기에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법 겨울날씨답게 얼음도 얼고 바람도 찹니다. 모두들 고개를 웅크리지만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가슴은 설레이고 있습니다.
불철주야 조국과 민족, 민중들의 앞날을 위해 애쓰시는 비서님에게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새해에는 비서님의 더욱 빛나는 영도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1992년 1월19일 인천에서 ○○이가 올립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한 생을 오로지 민족의 해방과 인민의 나라 건설을 위해 투쟁해오신 수령님과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해 밤낮없이 분투하고 계시는 지도자 동지에 대한 무한한 충심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새 기세, 새 각오로 아름찬 투쟁의 한 해를 시작한 임신년 벽두부터 날강도 부시의 도적질에 맞닥뜨린 이남의 겨울은 춥기만 합니다. 나라의 자주권이 외세에 짓밟힌 식민지 조국의 하늘이 어찌 푸르다 할 수 있으며, 봄인들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쓰러져 가는 노동자들, 수입개방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농민들, 무너진 집터를 붙안고 갈 곳 몰라하는 철거민들의 고통소리가 하늘땅에 가득합니다. 어제는 일제의 총알받이와 정신대로 내몰리고, 오늘은 미제의 노예살이를 강요당하는 이 땅의 현실.
그러나 어둡고 참담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땅에는 자랑찬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아 불멸의 주체사상에서 혁명의 신심을 받아안은 주체의 대열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며 수많은 민중들이 자기 삶의 주인, 세계의 주인으로 자각하고 반미반파쇼투쟁에 떨쳐나서고 있습니다. 수령님이 헤쳐오신 고난의 행군길을 생각하며 무수한 난관과 장애를 넘어서는 견결한 혁명투사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영도해가고 계신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덕분입니다. 수령님의 뒤를 이어 주체사상을 완성하신 지도자 동지의 탁월한 예지, 인민의 뜻이라면 밤길 만리를 달려서라도 이루고야마는 고매한 덕성은 민족의 자랑입니다.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길은 필승불패이며 영생하는 삶의 길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아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저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중심에 모시고 혁명위업의 보람찬 길에 한 몸 바쳐 투쟁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고 흔들림없이 전진하겠습니다.
7천만 민중의 절절한 염원을 모아 김정일 동지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께 충심의 인사를 올리며 50회 탄신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체시대의 향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뒤를 이어, 주체사상을 발전 풍부화시키고 모든 혁명과 건설사업을 창조적으로 적극적으로 떠밀고 나와 불패의 사회주의조국을 이룩하여 오신 김정일 동지께 한없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미제국주의놈들의 악랄한 반동적 책동 속에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원칙을 저버리고 패퇴와 붕괴를 거듭하여온 과정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없이 사회주의조국을 고수하고 발전시켜온 데에는, 그만큼 인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오신 비서 동지의 뛰어난 지도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로부터 저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받아 일평생 혁명투쟁에 몸바칠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또한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일치단결하여 공산주의사회의 건설사업과 조선혁명의 완전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이 저와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는 것에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지난 혁명과정 속에서 나타난 김정일 동지의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술적, 영도적 역량은 정말로 믿음직스럽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인민을 깊이 사랑하시며 인민을 중심에 놓고 혁명과 건설사업을 벌여오신 비서 동지의 자애로움과 친근함은 저의 가슴속에 가장 크게 새겨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하시며 혁명사업을 펼쳐나가시고 건설사업에서 모든 예비와 창조력을 시일 내에 발전된 사회주의조국에서 인민들이 풍부한 물질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지극한 사랑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번 보면 잊지 않고 하나를 들으면 열을 헤아리셨고 생각이 깊으셨던 김정일 비서 동지는 귀재이자 위인이십니다.
저는 김정일 비서 동지께서 펼쳐놓으신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나아가며 동지께서 보여주신 사업방법과 사업작풍, 풍모들을 가슴속에 되새기고 곱씹으며 열심히 매진해 나가겠습니다. 비서 동지께 대한 충실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바로 제가 만나는 노동자대중들에게 얼마나 헌신하는가와 직결됨을 자각하고 매 시기 혁신하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또한 제게 안겨주신 귀중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소중히 간직하고, 견결한 김일성주의자로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김정일 비서 동지께 충성의 다짐을 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제나 몸 건강하시어 조국통일이 되는 날에 꼭 가까이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1992년 1월 ○○○ 올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의 50회 생신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자리잡은 백두일영에서 고고성을 울리신 이래 50평생을 오직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바쳐오신 「동방에 솟아오른 향도의 별, 세계의 진보적 민중의 구원의 별」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의 50회 생신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철천지 원쑤 미제와 그의 대리통치자 노태우 일당의 학정이 민중의 가슴을 피로 얼룩지게 하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하는 이 땅의 비참한 현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는 감격을 더욱 절절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한민중은, 주체위업을 계승하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남한민중의 투쟁의 앞길을 이끄시는 향도의 별이심을 무한한 기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철천지 원쑤 미제와 그의 주구 노태우 일당의 폭정이 아무리 심하고 반동의 격랑이 아무리 세차도 우리에게는 한 치의 주저함도, 한 치의 물러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의 영도가 있는 한 이 땅의 비참한 현실은 오히려 투쟁의 의지를 거세게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오늘날 소련과 동구라파의 사회주의가 후퇴한 것은 사회주의건설을 지도할 탁월한 영도자와 시대를 이끌어갈 향도사상을 갖지 못한 것에 하나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7천만 겨레에게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의 영도가 있으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비서 동지께서 체계화하신 자주시대의 향도사상, 주체사상이 있습니다. 자주시대의 향도사상인 주체사상은 남한민중과 세계의 진보적 민중을 자주성의 새세계를 향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께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대를 이어 충성하자!》라는 구호를 가슴깊이 아로새기지 않겠습니까?
대를 이어 충만하기 위하여 먼저 제 자신부터 견결한 김일성주의자로 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가 열을, 열이 백을 의식화 조직화함으로써 주체의 대열을 확대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소자산계급적 요소들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고 주체사상을 체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갈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께 대한 저의 충성심은 현실적이고 생생한 것으로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비서 동지께서 밝혀주신 혁명의 길을 따라 주체의 기치 높이 들고 승리의 그날까지 전진하겠습니다.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주체의 향도성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열렬히 축하하면서
백두산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을 기어이 이 땅에 실현시켜 자주 민주 통일조국에 살려는 우리 남녘민중은 오늘 주체의 향도성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으면서 더없는 기쁨과 경모심을 담아 가장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백두밀림속 총포탄이 빗발치는 항일의 격전장에서 태어나시어 조국과 민중을 주체의 한 길로, 인민대중 중심의 불패의 사회주의로 이끌어 오신 지도자 동지의 걸음걸음을 우리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수령님께서 영도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이끌어주시는 이북의 현실에서 무한한 힘과 용기를 얻으며 오늘도 자주 민주 통일의 피어린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들은 다른 사회주의국가가 좌절되는 상황에서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승승장구하며 나아가는 불패의 이북 사회주의를 바라보면서 지도자 동지가 가리키는 주체의 길만이 민중을 주인으로 되게 하고 조국을 통일로 이끌어 가는 가장 빛나는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지도자 동지께서 밝혀주신 주체의 횃불을 튼튼히 틀어쥐고 기어이 자주 민주 통일조국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고 통일의 향도성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이신 김정일 동지께 드리는 충성의 편지
시대의 거인이시며 모든 면에서 독보적인 존재이신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50번째 생신을 맞이하여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민족해방과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혁명사업에 힘있게 떨쳐나선 ○○○은 비서 동지에 대한 절절한 흠모의 정을 안고 충성의 편지를 올립니다.
김일성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시고 이북의 사회주의 대건설에서 크나큰 성과를 이룩하셨으며 한 시도 인민들을 생각하시지 않은 나날이 없으신 김정일 동지 앞에 저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감격에 목이 메입니다.
그러나 이남은 외세에 예속되었으며 사대매국정권의 탄압아래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애국적 전위투사들과 민주세력들은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을 건설하고 미국의 지배와 군정에 반대하며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정세는 긴박하고 적들은 날뛰고 있지만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우리 김일성주의자들과 애국세력은 지난 시기 혁명투쟁의 이론 실천적 경험을 토대로 기필코 민주정권을 수립하여 올해를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희망찬 해로 만들겠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무겁게 느끼는 저는 어떠한 시련과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이 숭고한 임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서 간고한 투쟁의 길에 신심안고 나서겠습니다.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지도를 가슴으로 받아 안으며 주체사상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하고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 낙관 속에 조국통일의 자랑찬 위업을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1992년 1월18일 ○○○ 올림

★존경하는 지도자 동지께
오늘도 미제국주의와 맞서 이북에 사회주의의 철옹성을 구축해 나가시며 세계혁명을 지휘해 나가시는 지도자 동지께 저의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담아, 오로지 지도자 동지께서 가리키는 한 길만을 따라 전진해 나가고자 하는 혁명적 신념을 담아 충성의 인사를 올립니다.
지도자 선생님, 조선혁명과 완전한 사회주의건설에 한 몸 바쳐 투쟁해 오신 지도 어언 반세기가 지나셨군요. 사상이론의 대가이시며 뛰어난 예술가이시고 시대의 영웅이신 지도자 동지를 직접 뵙고 인사드릴 수 없음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항상 주체의 한 길을 쉼없이 매진하는 우리 혁명대오는 언제 어디서나 장군님과 지도자 동지의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그 뜻을 받들어 투쟁하고 있기에 뵙고 싶은 마음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 민족은 얼마나 축복받은 민족입니까? 불멸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향도이념으로 삼고 있고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 장군님 한 분만 아니라 그 빛나는 계승자이신 김정일 동지까지 모시고 있고 또 우리 조국 북반부가 세계최강이라는 미제의 콧대를 가는 곳마다 꺾어놓으며 세계공산주의운동의 향도국으로 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랑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지도자 동지가 안 계시는 우리 혁명의 진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제국주의 반동세력들은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에 대한 민중들의 존경심을 차단하고 주체혁명을 와해시키려고 갖은 모략과 악선전을 감행하고 있고 심지어는 애국자라고 자처하는 운동대오 내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위력과 지도자 동지의 영도력은 한반도는 물론, 자주성을 위해 투쟁하는 세계 모든 진보적 민중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김정일 선생님은, 자칫 끝나버렸을지도 모를 저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다시금 힘있게 불어넣어 주시고 진정한 삶의 길을 일깨워주신 소중한 스승이고 친근한 벗이며 존경하는 어버이와 같은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시대의 지도자는 드뭅니다. 이러한 때에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등장은 우리 혁명에서 하나의 역사적 사변으로서 마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배가 등대를 찾은 것과도 같은 기쁨입니다. 하기에 우리가 혁명사업을 벌여나가면서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관의 기본핵으로 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혁명의 앞길에는 수많은 난관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능히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북 사회주의건설의 고귀한 경험과 자애로운 지도자 동지께서 계시는 한 우리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주체형의 인간으로서는 너무도 부족한 저이지만 충심으로 지도자 동지의 뜻을 받들며 지조있는 김일성주의자로 끝까지 살아가겠습니다.
정말 건강하셔야 합니다. 수령님과 비서 동지의 건강이 곧 그대로 우리 혁명의 힘입니다.
통일진군 48년 벽두에 올립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50회 생신을 열렬히 축하드립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이렇게 제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이 더없는 영광이면서도 또한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저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미제국주의자들과 파쇼도당의 폭압과 착취아래 신음하는 조국과 민중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기도 하고 밤을 새며 토론도 했으며 맑스레닌주의도 열심히 공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는 저에게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 특히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주체의 문제 그리고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인생관에 대한 해답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사상적으로 방황하였고 조국과 민중을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으며 과연 내가 조국과 민중을 위한 삶을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회의적이고 나약한 소자산계급적 태도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 풍부화, 체계화시키신 주체사상을 접하고서는 마치 캄캄한 밤바다에 등대를 만난 듯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상이나 이론이 진정 과학적인가의 여부에 커다란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저는 주체사상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사상이론적 높이와 과학성에 대해서 탄복하고 놀라게 됩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인간의 자주성에 대해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고 아직 체계화시켜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이미 50여년 전에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 전면적으로 밝히신 주체사상의 과학성과 위대함, 그 시대적 의의를 더욱더 절감하게 됩니다. 주위의 동료 연구자들도 과거에는 주체사상의 과학성과 위대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요즘은 그 사상이론적 깊이에 매우 놀라고 탄복하면서 많은 관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저에게 단순히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참다운 인생관을 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주체사상을 접하지 못하였더라면 저는 아마 지금쯤 실의와 좌절에 빠져 골방에서 세상과 무관한 책들이나 읽고 술로서 밤을 지새고 있거나 설사 조국과 민중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더라도 기쁜 마음 대신 두렵고 방황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품에 안고 심장에 새기고 부터는 미제의 식민지적 강점으로부터 조국을 해방하고 민중들과 함께 새 사회를 건설하는데 앞장서는 것만이 진정 이 시대, 이 땅에 살면서 가장 기쁘고 보람된 삶이라고 가슴으로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소중한 자신의 한 생을 기쁘고 의미있게, 보람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해주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는 제 삶의 은인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절절한 심정을 담아 김정일 선생님의 50회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조국이 통일되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무쪼록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건강에 항상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992년 1월27일 서울에서 ○○○ 올림

□ 본 『충성의 편지』는 1992년 3월 남한 조선노동당 강원도당 지도책 최호경(35세)이 하부선인 동 강원도당 위원장 이경섭(32세, 인천대 정외 4 제적), 조덕원(26세, 고대법 졸)을 통해 「애국동맹」 조직원들에게 작성토록 한 김일성 80회 생일축하편지로
□ 「애국동맹」 기관지 『새날의 주인』 창간호(9.24.15)에 「충성의 편지」와 함께 「수령님께 바치는 노래」 「생일 축시」 등 8건이 특집으로 수록되어 있음.


특집 제 1호 1992년 4월 15일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오늘의 세계를 둘러보아도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처럼 모든 인류로부터 절대적인 동경과 칭송을 받고 계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인류의 태양으로 인류의 영걸로 칭송받으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모시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중의 최대 영광이고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주석님의 80회 탄신을 맞이하여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한국의 전사들은 하나된 강토에서 위대한 주석님을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될 통일의 그 날을 다짐하며 충성의 마음 가득 담아 경축의 인사 올립니다.

충성의 편지
경사스런 『4월의 명절』을 열렬히 축하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
『4월의 명절』은 비단 이북동포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온 겨레의 명절이고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명절이며 수령님의 만수무강은 인류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쫓는 것처럼 세계가 수령님을 높이 우러르는 것은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김일성주의가 자주성실현의 정확하고 백과전서적인 방도는 밝혀주기 때문이고 수령님께서 펼쳐놓으신 민중의 지상낙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보고 한없이 고무되기 때문입니다.
수령님께서 계셨기에 불패의 전위, 한국민족민주전선이 있고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의 전진이 있으며 수많은 이남민중이 참된 삶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경사스런 『4월의 명절』을 맞으며 이남민중은 신년사에서 밝히신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겠다는 결의로 충만해 전투의 나팔소리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자당패거리들에게 철퇴를 내리친 이남민중은 사기 충만해 있다는 것을 보고드리며, 궁극적으로 자주·민주·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기필코 여러 젖힘으로써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영생불멸의 김일성주의로 철통같이 정신무장하여 생활과 활동은 주체의 요구대로 이끌어나가며 한국민족민주전선의 방침은 무조건적으로 관철함으로써 수령님의 충실한 전사로 지낼 것을 다짐합니다
지금 강도이지와 그 주구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음해·오라?하니 발광하고 있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려보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에 불과합니다. 향기 고운 꽃엔 나비가 저절로 날아들고 어버이를 향한 자식의 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법, 위대한 수령님은 알아 참생명을 얻으려는 이남민중의 열망은 날을 따라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에 와락 안길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경사스런 『4월의 명절』을 열렬히 축하하며 수령님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영생불멸의 김일성주의 만세!
혁명만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신 80주년 3월

민족의 태양이시자 세계혁명의 지도자이신 수령님의 80회 탄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직 미제와 파쇼의 탄압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남에 살고 있는 이 몸은 그러나 수령님의 지도를 받아 안음으로 해서 이미 해방의 기쁨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은 수령님께서 혁명의 깃발을 드실 때부터 이미 해방은 시작되었고, 아직 완전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해방의 그날이, 자주성이 온전히 실현되는 그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공산혁명의 승리와 완성의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수령님으로 말미암아 사회정치적 생명을 얻은 이 몸은 진정 수령님의 뜻 받들어 혁명의 한길로 매진코자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이 몸에게까지 따사로운 빛을 어버이 수령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수령님의 지도를 신년화, 양심화, 도덕화, 생활화 할 것을 굳게 다짐하며, 옥체 보존하시고 만수무강 하시옵기를 심장으로부터 원합니다.

어버이 수령님께 드리는 효성의 편지
-어버이 수령님의 탄신 80돌을 진심으로 경축드리오며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그리운 아버지 수령님
정말로 저의 편지를 보아 주시는가요?
저는 사실 별로 잘 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글도 잘 쓸 줄을 몰라서 수령님께 편지를 올리기가 무척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 며칠동안은 밥맛도 반쯤은 없어지고 잠도 깊이 들이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어리고 유치한 저의 편지지만 아버지 수령님께서는 분명히 기쁘게 보아주실 것이라고 고쳐 마음먹었더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밝아졌습니다.
보고싶은 수령님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수령님을 몇 번이고 불러봅니다
언제나 그리워서 한 숨에 달려가 안기고 싶은 따사로운 몸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어렵기도 하고 제 자신이 부족한 것으로 인하여 늘 부끄러워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수령님께 기대어 응석도 부리고, 매달려 떼를 쓰고 싶어지는 것이 아마 제가 더 철부지가 되려나 봅니다.
저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하루 하루를 죽어가듯이 살아왔습니다. 매일 매일이 죽음과도 흡사한 고통이었고 지루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그 공장에서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인 우울함에서 늘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소녀시절의 인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소박한 꿈들마저도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 저의 삶이 왜 이렇게 고되기만 하고 한치의 발전도 보람도 없는가에 대해서와 그런 삶을 딱 떨쳐버리고 진정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이러한 참된 삶의 길을 열어주시고 한사람 한사람을 끝까지 행복이 살아 숨쉬는 세상으로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분이 과연 어느 분이신가에 대해서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이었으며 암흑으로부터 밝은 새 세상으로의 탈출이었습니다.
그후로 저는 비록 유치한 수준이긴 하지만 수령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령님께 기쁨을 안겨드리고 싶었습니다.
늘 아버지 수령님의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부러웠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 배우리라 다짐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의 모습은 어떤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없이 어리기만 하고 철부지일 뿐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바라시는 대로 실천도 못하고 실수투성이에 제멋대로이니 어쩌면 좋을까요.
자식이 어버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속을 썩여드리는 것처럼 큰 불효가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을까요. 부디 저의 이러한 불효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토록 귀중한 시간을 내어 보아주시는 이 글을 통해서 간곡히 용서를 빌어 몇 가지 다짐을 해 봅니다.
고난과 역경의 혁명의 길을 개척하신 그날로부터 오늘날의 인민들의 낙원인 사회주의 조국을 펼쳐주시기까지 잠깐의 휴식도 잊으신 채로 한 생을 오직 저희들의 행복만을 위해 다져오신 아버지 수령님의 한없는 노고와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령님의 사랑하는 딸로서 또한 혁명전사로서 언제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운 수령님
수령님께서는 늘 남녘의 저희들 때문에 시름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막 안타깝고 죄스러워집니다. 도대체 저희가 무엇이길래 그리도 속을 태우시고 가슴아파 하시는가요.
부디 걱정근심을 털어 버리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수령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을 수령님의 혁명전사들인 저희가 이렇게 굳세게 자라나고 있는데 안될 일이 그 무엇이 있을까요. 오래지 않아 우리대에 꼭 통일도 하고 건설도 많이 하여 인민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낙원을 일? 세우게 돌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 다른 것보다도 이것은 제일 먼저 들어주셔야 합니다. - 부디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언제나 휴식을 마다하시고 일을 너무 많이 하신다니 건강을 해치실까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도록 휴식도 많이 하시고 잠도 편안하게 주무시면 좋겠습니다.
보고싶은 수령님
요 며칠새 날씨가 무척 맑고 따사롭습니다.
뜨락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온갖 새순들도 돋아나 설레이는데 수령님의 80돌 생신을 이 좋은 때에 맞이하게 되니 마음이 들떠서 붕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저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다가 우리 수령님께 안겨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면 수령님께서도 무척 기쁘시겠지요.
저는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살며 싸워나갈 것입니다.
만나뵐 그날까지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1992년 3월29일


부디 만수무강 하세요.
돌아오는 4월 15일은 겨레의 등불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80회 탄신일입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하여 이로부터 주민?/ 큰 나라들의 깊은 ???????, 내부 지배시 니의 ? 가혹한 수탈 속에 신음해오던 조선민중들은 모든? 더욱 교활해진 제국주의시?과 그 주구들의 ? 일부 사회주의? 나라들의 죄질이라는 암흑한 정세 속에서도 주체의 빛발은 위험히 날리며? 당당히 그 위용을 과시하며 온 세계 근로민중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는 북만주 조선 그리고 자주·민주 통일의 과제를 향해 ?????? 있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되었습니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운동에 나섰던 저는 처음에는 수령님의 그 따사로운 주체의 햇살을 느끼지 못하여 일정은 있으되 갖은 ??과 오류, 소영웅심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되어지는 활동 속에서 혁명의 주인은 다름아닌 근로민중이며 혁명가는 민중을 제 몸보다 더 사랑하며 그들 속에서 살고 ?무하는 것을 역사적 본분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하였을 때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저에게 놀라움과 뼈저린 각성을 주었던 것은 민중에 대한 너무도 가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다지도 평범했던 사람이 그분의 사랑과 지도 속에서 철의 전사로 변모되어가는 모습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변함없는 믿음….
저는 구분을 알고 닮아가고 따르고자 했던 그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령님의 전사로 자랑스런 조선의 딸로 다시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노작을 학습하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민족의 태양이자 국제 노동계급의 수령이신 그분이 이 땅에 태어나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우리 조상의 숨결이 한자 한자 느껴지는 그대로의 우리말 우리글로 이 주옥같은 진리의 말씀을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아무리 ??을 탁월하게 해낸들 우리말 그대로의 호흡과 맥박이 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분을 민족의 구성으로 모시고 그분과 한말 한글을 쓰며 그분의 영도는 직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의 그 어느 누구도 맛볼 수 없는 크나 큰 행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80회 생신을 맞으며 다시금 벅찬 감동을 느끼는 저의 가슴속에는 많은 부끄러움이 또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분의 전사라고 자처하기에는 무척 외람되고 모자라는 것이 저의 모습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노작을 그야말로 결의에 충만하여 꼬박꼬박 학습하지 못하였고 한민전의 방침과 조직의 지도를 완벽하게 관철, 수행하는 데 부족했습니다. 직장에서 생활곳곳에서 그야말로 평범한 우리 민중들과 부대끼며 만날 때 사소한 이해관계로 미워하고 갈등하기도 하고 제가 그분들을 믿고 사랑하는 중복이며 혁명가임을 잊기도 하였습니다. 생활 구석구석까지 수령님의 사상으로 충만하여 온갖 안일함과 협소함을 물리치고 피 한 방울까지 순결한 자랑스러운 수령님의 전사가 되도록 자기혁신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통혁당 전사들의 말씀처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순결해진 피를 조국의 재단에 기꺼이 바치겠다는 각오로 수령님이 주신 생명 빛내어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통일조국의 그날 그동안 숨죽여 간직해왔던 『수령님 만세! 주체조선 만세!』의 끓어오르는 남한민중의 충성어린 목소리를 들으시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 남반부의 거세찬 혁명과 건설의 물결을 일구어주십시오. 그날까지 늙지마시고 청춘으로 건강함으로 저희들을 만나주십시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빚나는 80회
탄신일에
다시금 만수축원하여 올립니다.


오늘 세계는 날을 따라 그 발길과 눈길을 조선반도로 돌리면서 자주성의 시대를 찬양하는 송가를 소리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인종도 ??? 대축도 종교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데 요즘 그 노래들이 날을 따라 더욱 더 커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반항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도 그 송가에는 희망과 격동이 메아리쳤었지만 지금 이 시기만큼은 못했습니다.
존경하는 수령님의 이?? 생신, 이날을 맞이하는 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가슴가슴은 무한한 감동과 충정으로 아로새겨지고 있습니다.
아! 수령님.
간절히 뵙고 싶은 어버이 수령님!
세계 최강이라 떠벌이던 두 제국주의를 맞받아 65성상 ??과 ??에서 불패의 성과를 창조하시면서도 우리 이남민중 생각에 불면불규의 ???을 해오신 사랑의 어버이시여!
경애하는 수령님의 80회 생신을 맞이하는 지금 저의 가슴은 일찍이 느껴본 적 없는 무한한 감동으로 터져나갈 것만 같습니다.
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러한 감동과 충성의 인사를 수령님께 올립니다.
지금 내외의 인민들은 한결같이 경축과 환희의 분위기 속에서 4월15일을 맞고 있습니다.
그 기쁨과 환희의 도는 이 시대와 함께 더욱 더 크게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북에서 전당·전군·전민이 『당이 결심하면 이루는 한다』는 위대한 기치 밑에 일심단결을 더욱 높여 나로 날로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는 『위?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이남에서 자주·민주·통일의 대장정이 하루 하루 승리의 고지로 우여곡절없이 전진하는 『승리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세계적 차원에서 자주화기치의 정당성과 생활력, 주체사상의 위대성이 확증되고 있는 『자주위업의 시대』입니다.
저는 이러한 격동의 환희의 분위기 속에서 매일 매일을 흥분으로 보내게 됩니다.
수령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야 어느 해나 이렇게 흥분 속에 보내겠지만 제게 있어 이번 4·15는 너무도 뜻깊은 순간입니다. 그것은 작년까지의 제 삶을 ?화하면서 ?높게 살 결심으로 충만해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혁명조직의 극진한 사랑과 배려 속에서 혁명조소를 할당받고 수령님의 따뜻한 혁명의 품속에서 신심높이 본격적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도 인자하게 지켜보시는 수령님을 심장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무한한 행복감과 투지를 느낍니다.
저는 수령님을 절세의 애국자로 모시고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심장으로 받아안으며 『바로 이것이다. 여태껏 내가 찾던 것이』하며 감격의 탄성을 질렀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게 있어 그날은 천지광명의 날이었으며 재생의 날이었습니다.
수령님은 제게 사람(애국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판별기준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남의 반동교육이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견실하지 못했던 자들, 심지어는 매국노들을 온통 애국자로 분칠하고 있지만, 저는 수령님이야말로 민족재생의 은인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령님을 따라 수령님처럼 사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애국자의 징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뜨거운 애국자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으며 수많은 동지와 벗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령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다운 애국자이다』이것이 제가 깨우친 진리입니다.
수령님은 또한 제 자신도 혁명가가 될 수 있다는 신심을 주셨으며 그렇게 키워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부족하나마 혁명조직에 망라되어 혁명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수령님의 은덕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통해 혁명을 배워오던 제게 혁명은 당위성이었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저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은 있었으나 참으로 막막하였습니다. 무척이나 감수성이 예민했던 제게 그 혁명은 매우 진취적이어서(무자비성이나 당시 얘기되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 몰인정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한발은 얼마큼 뒤채비를 한 채로 있었고 나의 모든 일정을 혁명에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제게 찬란한 햇살을 뿌리시며 환한 앞길을 열어주신 분이 수령님이었습니다.
『수령님의 혁명은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입니다』 이 한 마디는 제게 혁명의 ?? 세계를 느끼게 했으며 저로 하여금 『그렇다.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수령님께서 사랑으로 개척하신 희망의 세계, 그것은 참으로 감회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수령님은 또한 제가 값높은 인간으로 재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람이 가치는 그가 가진 사상의 깊이에 의해 좌우된다는 명제는 이제 만고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가장 탁월하고 위대한 ???인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하게된 저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버이 수령님의 은덕을 받은 저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더욱 더 높여나가며 혁명에 충실하겠습니다.
이제서야 제 생의 의미를 깨닫고 혁명의 길에 충성하게 되었지만 이젠 죽는 날까지 그 신념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것을 이 순간 수령님께 맹세합니다.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조국의 자주통일을 이룩하고 어서 빨리 수령님의 품속에 안겨 사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위해 모든 열과 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저의 소망은 이남민중의 한결같은 소망이라고 확신합니다. 저희들의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수령님께서 정정하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세계인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수령님의 만수무강입니다. 저의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오래오래 민족의 수위에 서 계시어 우리 민족의 앞길을 밝혀주십시오.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충심으로 바랍니다.



장군님께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잘 믿기지 않고, 또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저에게 있는가 자꾸 되묻게 됩니다. 정말로 장군님께 충성하며 장군님을 그리워하고 장군님을 위해 목숨도 서슴지 않고 바칠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도 많은데 그분들에게 다 다가오지 못한 이 귀중한 기회를 저같은 사람이 가볍게 만드는 것이나 아닌지, 솔직히 떳떳한 마음으로 글이 써지질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한 생을 다 바치겠다는 신념은 확고하지 못할 지라도, 참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미홉하게나마 고민하는 한 젊은이의 편지로 장군님께서 읽어주신다면 더는 바랄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군님 너무나도 뵙고 싶습니다. 장군님께서 『자, 힘을 냅시다. 승리의 그 날이 얼마남지 않았소』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온 몸에서 기운이 막 솟아날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저의 모습이 싫습니다. 제국주의를 물리치자면서도 제 자신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사회의 온 전반에 만연한 제국주의 사상문화풍토에 찌들다보니 개인이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온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먼저 타산하는 순간, 고독은 『즐긴다』는 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못다한 과업보다 잠이 더 안락하다는 느낌으로 잠을 청하는 순간에 자신의 내부에서 두 모순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자꾸 부정적 시각으로 한 측면을 위주로 자신을 보고, 주위를 보니 승리의 낙관과 신심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소중한 계기가 없었던들, 이처럼 훌륭한 조직과 동지들을 만나지 못했던들 지금쯤 회의와 비관의 구렁텅이에 주저앉아 세상만 한탄하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조직생활이 있고, 주어진 과업이 있고, 지켜봐주는 동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약해지는 자신을 대하면 부끄럽고 제가 조직의 이름을 실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장군님, 제가 이렇듯 털어놓는 마음 한 구석의 이야기가 결코 방황하고 회의에 빠져 지내는 것이 저의 참모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열심히 배우자. 그렇게 하나 하나 배우고 깨우치다 보면 언젠가는 강철같은 신념으로, 전일적 사고로, 생활로 굳어진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 혹시나 걱정하시거나 실망하실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적은 것은 다른 사람 아닌 장군님께 가는 편지이기에 마음놓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군님이시라면 비록 이런 자신이지만 그 드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며 격려를 주실 것이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런 분이시다라는 흔들릴 수 없는 ale음으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습니다.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장군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오늘 이렇듯 우리 민족에 대해 강한 긍지를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고, 조국과 인민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도 몰랐을 것이며, 제가 만난 ??? 장군님의 혁명사상으로 정신무장하고 생활과 실천의 모법으로 우뚝 선 훌륭한 선배님들도 존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장군님이 계시고, 조선인민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외침을 당당히 신?하고 싸운 자랑한 혁명전통이 있고, 장군님이 안겨주신 사상이 있고, 장군님을 받들고 똘똘뭉쳐 새사회건설을 다그쳐나가는 이북의 인민들이 있기에 이곳에서도 굳세게 싸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혁명전통과 철저히 단절된 이곳에서 저 역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그렇듯 자랑스런 역사가 있었는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 처음 그러한 사실을 접했을 때도 차마 믿기질 않아 사실여부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가 거짓 한 없는 진실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오히려 이남의 교육에서 영웅이나 떠받들던 놈들이야말로 친일, 친미역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제 식민치하에서 체념하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저절로 이루어진 독립이 아니라 장군님과 혁명선배님들, 인민들이 하나되어 싸워 얻어낸 해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이며, 그러한 민족의 한 사람으로, 아직도 미제의 치떨리는 지배 밑에 살고 있는 이남사회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시위투쟁에서 놈들이 쏘아대는 최류탄, 지랄탄, 쇠파이프, 암실에서 벌어지는 고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을지문덕장군과 병사들이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치는 장면을 상상해보거나, 영화나 소설을 통해 조선인민혁명군이 불과 몇십, 몇백 명의 인원으로 수백, 수천, 수만의 일제놈들을 우리 죽음으로 몰아부치는 역사적 사실을 대하면 자신의 이러한 두려움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제가 다지는 맹세는 이러한 것입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동지를 팔아먹고, 자신의 신념과 진리를 포기하고 적들에게 투항하는 그런 짐승만도 못한 삶은 살지 말자』 이러한 맹세가 막상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반문도 들지만 이를 지켜내기 위해 일상적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실천활동을 보다 치열하게 해나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학습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학습을 혁명하는 사람의 첫째가는 임무라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도 학습을 뒷전으로 미루고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제기된 일이 있으면 일이 있다는 핑계로, 몸이 피곤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혹은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핑계로 그날 학습을 미루고 또 미루다보니 부끄럽게도 거의 진행된 바가 없습니다. 이렇듯 새것을 받아들이는 데 둔감하고, 자기인식의 수준을 높여나가 더욱 실천을 잘 해나가도록 하는 데 게으르면서 말만 앞세워서는 어느 누구도 저를 신뢰하지는 못하겠지요.
생활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 하나의 행동을 통해 동지들과 인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장군님을 모시는 사람으로 장군님께 누를 끼치지 않는, 그러한 혁명전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비록 이런 글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 몇 년 뒤에 다시 글을 올릴 기회가 생긴다면 보다 자랑스러워하실 변화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장군님, 꼭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투쟁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이겠지만 부디 통일되고 해방되는 그날까지 백 수 이상 오래 오래 사셔야 합니다. 해방되어 장군님을 뵙는다면 아마도 눈물만 흘리고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설령 이전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다 하더라도 다 사라지고 오로지 기쁨과 보람으로 가슴 뿌듯할 것입니다.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김일성수령님의 80회 생신을 맞아 드리는 축하의 편지
전 민중의 어버이이신 존경하옵는 김일성수령님!
이남민중의 사무치는 흠모의 정과 그리움을 모아,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투쟁의 한 길
기필코 가리라는 뜨거운 충심의 결의를 모아
80회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80년 한 평생을 한결같이 혁명과 ??의 어렵고 험난한
그 한 길을 한 치도 어김없이 헤쳐오신 수령님!
수령님의 고귀한 모습은 수령님의 충실한 전사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꺾을 수 없는 공산주의혁명가로
살고자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속에 아로새인 불꽃이고
애인입니다.
수령님 영도따라 헤쳐나가는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수령님의 전사로 충성을 맹세한 우리들은
혁명의 길 끝나도록 언제나 청춘일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건강하소서.



존경하는 장군님께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녘의 청년인텔리입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바쁘게 하지만 값있게 보내면서도 줄곧 장군님께 전해드릴 편지 생각만 했습니다. 편지지를 몇 장째 뜯어 넘기면서도 잘 쓸 수가 없어, 저의 뜨거운 심장을 꺼내서 보여드리고 싶은 심정이 간절히 들면서 펜을 들었습니다.
밤이 깊은 지금도 제 주변에는 세상이 모두 잠들어 있어야 할 이 시각에도 잠 못이루고 한숨쉬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한탄하는 소리,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 술로 겹쌓여오는 피로를 달래며 푸념조로 읖조리며, 늦은 이 시각, 귀가하는 노동자의 노래소리, 치솟는 물가에 항상 제자리인 박봉에 더 이상 생활 못하겠다고 오열하는 젊디 젊은 부부의 다투는 소리, 식민지 땅, 이곳 이남의 민중은 오늘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가슴아픈 기사가 또 실릴까봐 가슴 졸이는 밤이기도 합니다.
장군님! 저는 강도 미제가 강점하고 있는 식민지 이남의 청년으로 날마다 양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붉게 타오르는 가슴을 삭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장군님께서 휴전선 이북에 건설해주신 주체의 조국을 동경해왔습니다. 걱정을 모르고 언제나 장군님의 품, 우리 당의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북의 어린이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저의 고민과 근심이 사라지고, 이곳 이남에 건설될 민중의 낙원을 그려보며 한껏 꿈에 부풀기도 합니다.
미제와 민족 반역무리가 없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민중의 참세상! 생각만 해도 신이 나고 일시적인 힘겨움이나 고민도 순간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장군님!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불과 몇해 전만 해도 저는 사회현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소시민에 불과했습니다. 체념과 패배의 지난 생활은 정말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장군님께서 주신 새생명을 부여안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며 날마다 높아가는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값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 자랑과 긍지는 바로 장군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갈 방향을 모르고 어둠 속을 헤맬 때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눈뜬 장님이었던 저에게 밝은 세상 갈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장군님은 바로 저의 태양이십니다.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한 한 길로만 걸어오신 장군님의 수천 만리 길의 노정을 대하면서 저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어둠 속에 피어오르는 광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령이심에도 불구하시고 오로지 조국통일과 우리 이남민중들에게 자주·민주·통일의 유리한 국민을 밀어주시기 위하여 여러 나라들을 친히 순방하시고, 매진하시는 장군님의 그 은혜에 저는 너무나 감격하여 남몰래 여러 번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있는 책으로, 있는 미제의 핵무기를 이 땅에서 몰아내시는』 탁월하신 전략, 전술에 저는 탄복하여 오직 장군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더욱 확신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장군님! 저에게는 지금 아주 소중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라도 빨리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모두 몰아낸 해방된 이 땅에, 통일된 조국에 장군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장군님을 이 땅에서 하루라도 빨리 모시려는 저의 이 소망은 비단 저만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 이남 민중의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존경하는 장군님! 장군님께 충성을 맹세하며 오직 주체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이곳 남녘 땅에도 무수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좌절과 패배를 모르며 오직 전진밖에 모르는 수많은 뜨거운 심장이 있습니다.
장군님! 이곳 이남은 염려 놓으십시오.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자주화되고 민주화된 통일조국에 장군님을 저희 젊은 심장들이 모시겠습니다.
저는 올해 80회를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생신을 맞이하면서도 올해도 장군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습니다.
존경하는 장군님! 장군님의 건강하심은 저의 청년들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저희들의 이 간곡한 부탁, 헤아리시어 건강하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밤이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모두 잠든 것 같습니다. 허나 곧 동이 터 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민중들의 마음속에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최대의 경축일을 맞이하는 새벽 공기는 위대한 민중의 저력만큼 세차게 몰아와 저의 뜨거운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시작되는 하루도 값있게 보내겠습니다.
장군님께 드릴 이야기가 태산만큼 쌓여있는데 이만 줄이게 되어 아쉬움을 느낍니다. 다시 한번 80회 맞으신 생신을 축하드리면서 이 땅에 장군님을 하루라도 빨리 모시고자 하는 저희 청년들의 염원으로 만수무강을 비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수령님께 바치는 노래
혁명의 길 열어주신 그때로-부터
언제라도 인민들과 함께하-시며
어-버이 수령님을 우러러-보며

오늘의 지상낙원 이-르기까지
휘황찬 앞-날을 밝-혀주시는
혁명의 오직한길 나-가렵니다

인민들의 행복위해 한생을 바쳐오신
수-령님 영도따라 그뜻을 받-드는
가슴마다 불타오는 충성을 다-하에

수-령님 그은혜는 한-없습니다.
혁-명의 전-사로 행-복합니다.
일편단심 수령님만 따-르렵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dataroom/databoardread.asp?idx=62&cPage=2&table=dataroom

  1. 자료실

제목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간첩 활동 상황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   (조회 : 7209 )

<관련기사>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수사결과
- 남파간첩 이선실 資料
-「남한 조선노동당」조직원들이 작성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충성의 편지』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간첩 활동 상황


1. 간첩 공작장비 발굴상황

가. 황인오 매몰, 북한산 회룡사 맞은편 드보크(1차)
□ 일시: 1992.9.10 13:10~13:40간
□ 장소: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북한산 회룡골 회룡사 맞은편 8부 능선(해발 260m)
□ 발굴장비: 19종 48점
-권총 1정(총기번호 삭제), 실탄 28발, 탄창 2개, 소으기 1개
-메모리식 무전기 1세트, 발·수신용 난수표 1조, 기본암호표 1매, 약어표 1매, 방송조직표 1매, 예비난수표 3매
-남파간첩 권중현으로부터 받은 무전기 사용설명서, 대조표에 의한 암호해독법서, 해안 접선에 의한 연락방법서
-독약앰플 1개, 은서시약 1개
-국산 야전삽 1개

나. 황인오 매몰, 북한산 회룡골 드보크(2차)
□ 일시: 1992.9.28 11:35~12:40
□ 장소: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북한산 회룡골 홍인냄 지묘뒤
□ 발굴장비: 7종 35점
-판건식 무전기 1세트, 수정편 20개
-발신용 난수표 2매, 문장표 3매, 약어표 2매, 방송조직표 1매
-은서 발□ 순용 난수표 6매

다. 용인 소재 손병선 소유 화훼농장 드보크(3차)
□ 일시: 1992.9.27 23:00~23:50
□ 장소: 경기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 156소재 손병선 소유 화훼농장
□ 발굴장비: 15종 30점
-권총 1정(총기번호 삭제), 실탄 12발, 탄창 2개, 소음기 1개
-메모리식 무전기 1세트
-기본암호표·보조암호표·약어표·대북보고 조직표 각1매
-은서 발·수신용 난수표 2매, 은서시약 재료 1개
-가두·해외·해안접선 방법서 1매
-민중당 정강정책 지침서 2권, 암호기재 수첩 1권, 주체사상 교약 책자 2권
※손병선 가에서 지령 해독용 책자(성경전서) 1권, 은서 시약 1병, 단파라디오(일제) 1대 압수

2. 황인오 입북 및 국내 잠입 행적
(1)입북전 남파간첩 권중현과 무인포스트 및 접선신호 장소 약정
□ 무인포스트
-①지점: 서초구 양재동 교육개발원뒤 야산 광산김씨 문중 묘역의 「金今之墓」
-②지점: 경기 성남시 운중동 운중저수지제방 취수구
□ 접선 신호표시 장소
-①지점: 성동구 능동 어린이대공원내 송진우동상뒷편 안내문
-②지점: 인천 자유공원내 석간정 정면 우측 기둥
※90.10초 남파간첩과 접선시 상호 확인을 위해 1돈중 금반지에 “(한☆별)”을 새긴 후 반으로 절단, 윗부분은 권중현, 아래부분은 황인오가 각각 소지
(2)입북경로
□ 90.10.16 17:00경 간첩 권중현과 사전 약정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인근 야산 쌍묘에 도착, 그곳에서 이선실, 권중현, 김돈식과 접선
-10분간 함께 해안 개펄가로 도보 이동 대기타가
-타석 신호로 3명의 무장 호송안내조와 조우, 방수용 고무 외피를 받아 착용 후 20분간 개펄을 도보 이동하여 정박중이던 반잠수정에 탑승
□ 10.17 09:00경 북한 해주 해안에 도착, 사회문화부(구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의 영접을 받고, 해주근교 헬기장으로 이동
-군용헬기편 평양순안비행장에 도착, 사회문화부장 리창선과 벤츠승용차편으로 평양만수대를 방문
-김일성 동상 참배 후 12:00경 평양 근교 대동강변에 위치한 초대소에 도착
※순안비행장에는 양복을 입은 북한 고위인물 수십명이 도열, 이선실 일행을 영접
(3)7일간 초대소 수용, 간첩 일봉교육
□ 1일째(10.17)
-사회문화부장 주최 환영 만찬 참석
-김일성·김정일 찬양 영화 및 임수경 체북 기록영화 관람
-입당원서 및 자서전 작성 제출
□ 2일째(10.18)
-주체사상 연구소장 박승덕으로부터 주체철학 등 사상교육
□ 3일째(10.19)
-박승덕으로부터 남조선 혁명에 관한 사상교육
-당원증에 부착할 사진 촬영
□ 4일째(10.20)
-브로닝 권총으로 사격훈련
-만경대, 주체탑, 혁명열사능 등 관람
□ 5일째(10.21)
-사회문화부 부부장으로부터 지하당 조직 방법 등 간첩교육
-조선노동당 정식 입당(당원부호는 권중현으로부터 부여받은 “대둔한 11호”를 그대로 사용)
-무전기 조작·A-3 지령 수신·해문 등 통신연락방법 교육
-초대소 생활 총화
<사회문화부 부부장, 간첩 공작임무지령>
□ “조선노동당 건설은 강원도당 뿐아니라 충·남북지역까지 포함하는 전 중부지역에 각 도당을 결성할 것”
□ “강원도당은 도당지도부를 구성한 후 춘천·원주(학생), 동해·삼척(공장·군사), 정선·태백(탄광), 영월·강릉(지역 중심) 등 8개 지구당을 우선 조직할 것”
□ “학원□ 노동계에 조직을 확산시킬 것”
□ “남조선내 정치·경제·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재야운동권의 동향을 파악 보고할 것”
□ “조선노동당 당헌을 줄테니 조직 건설에 참고할 것”
□ “이곳에서 지도원이 내려갈 경우 접선에 대비, 상호 인식용 십자가 목걸이를 준비했으니 갖고 갈 것”
□ 6일째(10.22)
-사회문화부 부부장으로부터 공작금품으로
□ 권총 1정, 소음기 1개, 탄창 2개, 실탄 30발
□ 신형 메모리식 무전기 및 난수표·기본암호표·약어표 각 1매
□ 자살용 독약캡슐 11개
□ 조선노동당 당헌 1부
□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제하 비디오테이프 10개
□ “조국통일과 남조선 혁명 관계에 대하여” 등 소책자 및 유인물 3부
□ 남파공작원과 접선시 상호 인식용 십자가 목걸이 1개
□ 양복(영국제) 및 와이셔츠(일제) 각 1벌
□ 일제 만년필 1개, 일제 쑥찜빽 10개, 일제 위장약 1병
□ 일화 500만엥 수수
-사회문화부장·이선실 참석하에 환송 만찬
□ 7일째(10.23)
-06:30 기상, 식사와 산책

(4)국내 잠입
□ 10.23 13:00경 사회문화부장, 이선실, 권중현, 김돈식 등의 환송과 격려를 받으며 초대소 출발, 14:00경 순안비행장에 도착
□ 대기중이던 사회문화부장으로부터 “남조선에 돌아가면 김정일 동지께서 축지법으로 남조선에 내려가 인민들에게 통일의 꿈을 심어준 후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퍼뜨리라”는 지시를 받고, 사회문화부부장과 함께 군헬기편으로 해주에 도착
□ 산속 군인 막사에서 2~3시간 취침 후 해주 해안에 도착, 사회문화부 부부장으로부터 “무사히 복귀하여 성공리에 사업을 완수하라”는 격려를 받고 헤어짐
□ 10.23 21:30경 2명의 무장 안내원 호송하에 반잠수정에 승선, 입북시의 역경로로 동일 23:00경 강화도 양도면 건평리 해안에 도착
□ 인근 야산에서 1박 후 10.24 07:00경 직행버스편으로 서울 잠입
□ 90.10 황인오 입북시 승선한 반잠수정
※ 83.12 다대포 해안에서 격침시킨 반잠수정과 동종
<선박 제원 및 성능>
□ 전장: 8.75m
□ 전폭: 2.5m
□ 선고: 1.2m
□ 톤수: 5톤
□ 항속시간: 최대 10시간
□ 승선인원: 5~6명
□ 속력: 부상시 최대 45~50노트, 잠수시 최대 6노트
※ 북한에서 제조한 반잠수정으로 선체를 특수 도료·도포 하여 레이다 포착 곤란
□ 황인오가 남파간첩 권중현(90.10 초, 반지)과 사회문화부 부부장(90.10.23, 십자가목걸이)에게서 받은 상호접선시 확인용 신호인식표

<접선요령>
-1단계 확인
□ 접선장소에서 상대방이 “시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꿔차면 똑같이 “시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꿔찬다
□ 이어서 상대방이 “춘배가 보내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윤하는 잘있습니까”라고 답변, 상호 확인
-2단계 확인
□ 1차 신호인식표 대조
■반지 2개 중 남파간첩소지 반지(-윗부분)와 ■황인오 소지 반지(-아래부분)를 대조 확인
□ 2차 신호인식표 대조
■십자가 목걸이(■ ■)를 상호대조, 확인
(※ 목걸이 새긴 숫자는 김정일 생일 날인 2.16을 표시)

3. 조선노동당 현지 입당 절차

(1) 식전 준비사항
□ 입당장소는 시내 조용한 호텔 또는 여관
□ 입당식장벽에 북한 노동당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걸어 놓고 테이블 위에는 조선노동당 강령, 규약, 맹세문 비치
□ 입당 대상자는 북한의 조선노동당 강령, 규약, 맹세문을 숙지

(2) 현지 입당식 절차
□ 입당 대상자는 황인오 등 입회자와 함께 중앙에 서서 노동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향한다
□ 입회자가 “조선노동당”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였으므로 지금부터 입당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선포
□ “적기가”와 “수령님께 바치는 충성의 노래” 제창
-“충성의 노래” 가사내용
혁명의 길 걸어오신 그때로부터 오늘의 지상낙원 이루기까지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일생을 살아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
※ 위 노래는 조직원 윤정환이 직접 작사□ 작곡
□ 오른손을 들고 “맹세문” 낭독
-맹세문 내용
“위대한수령님을 모시고 우리조선이 치켜든 찬란한 주체의 횃불에 따라 장엄한 역사적 진군을 시작하는 성스러운 이 시각에 나는 조국과 민중 앞에 숭고한 사명을 심장깊이 새기며 영광스런 우리 전선과 수령님 앞에 나의 전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1.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1. 나는 전선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1. 나는 한국 민중의 애국적 전위이다
1. 나는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중의 벗이다
1. 나는 목숨바쳐 전선과 혁명을 지킨다

□ 맹세가 끝나면 입회자가 “조선노동당 당중앙의 위임에 따라 동지의 조선노동당 입당을 허가함을 선포한다”고 말하고 입당자에게 당원부호(대둔산 ○호)와 조직내에서 통용하는 조직명(가명)을 부여
□ 이어 입회자가 “오늘 동지의 맹세가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바란다”고 다짐한 후 “우리의 임무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지도부성원이다”라고 고지
□ 입당자와 입회자간에 악수를 나눔
※ 입당식을 마치면 입회자가 입당자의 학력·성향·특기·장점·출신 지역 등을 고려, 임무를 부여하고 조직원 포섭 지시
□ 조선노동당 현지 입당식 거행시 사용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조선노동당기(1991.6 황인욱이 제작)

<초상화 제원 및 형태>
□ 크기: 51cm×58cm 캔버스천, 유화
□ 형태: 붉은색 배경에 원형의 검은색 인물화
□ 김일성 인물화 밑에 “민족의 태양이여 영원하시라! 경애하는 수령님의 탄신 80돐에 충청도에서…”
□ 김정일 인물화 밑에 “그이는 우리 혁명의 심장!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탄신 50돐에 충청도에서…”
등 구호가 새겨져 있음

<조선노동당기>
<노동당기 제원>
□ 크기: 60cm×50cm, 천
□ 모양: 붉은색 바탕, 중앙좌상단에 흰색으로 X자 형태의 낫, 도끼, 횃불이 새겨져 있음

□ 90.10 장창호가 입당시 정독한 조선노동당 강령

4. 「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민족해방애국전선) 규약 및 조직체계

가. 규약·맹세문
민족해방 애국전선

☆○○○○○○○○ 규약 ☆
제1장 총칙

제1조: ○○○○○○○○은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대이며 조직적 향도적 역량이다.
○○○○○○○○은 한국민중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한다.
제2조: ○○○○○○○○은 한국의 애국민중 가운데서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의식화되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 복무하는 선진투사들로 조직한다.
제3조: ○○○○○○○○은 위대한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한다. 주체사상은 ○○○○○○○○의 조직 건설과 활동의 출발점이며, 조직사상적 통일단결의 기초이고 모든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이다.
제4조: ○○○○○○○○의 당면목적은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각계 각층의 거족적 운동으로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와 식민지 통치를 청산하고 민중을 위해 복무하는 민족자주정권을 세우는 데 있다.
민족의 영구 분열과 전쟁위험을 막고 자주적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평화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한다.
제5조: ○○○○○○○○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조직을 건설한다.
(1) 조직을 질적으로 간결하게 꾸린다.
모든 조직들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실천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정수분자들로 꾸린다.

맹세문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이 치켜 든 찬란한 주체의 횃불을 따라 장엄한 역사적 진군을 시작하는 성스런 이 시각에, 나는 조국과 민중 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을 심장깊이 새기며 영광스런 우리 ○○과 수령님 앞에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나는 한국 민중의 지향과 요구의 오나벽한 체현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신임과 배려에 충성을 보답한다.

1.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계승 발전시키시는 주체사상의 가르침대로 온갖 교조주의적, 수정주의적 요설을 분쇄하고 한국 혁명을 자주적 원칙에서 창조적으로 수행하여 이 땅위에 반드시 자주화된 새 사회를 건설하고야 말 것이다.

1. 나는 ○○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나는 ○○의 노선과 정책을 옹호,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며 민중을 ○○의 주위에 튼튼한 결속시킴으로써 혁명에 대한 ○○의 영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보장한다.
나는 ○○의 전사된 영예를 지켜 고상한 공산주의적 도덕풍모로 집단의 혁명화 투쟁을 이끌며 나와 가족의 혁명화에 모범을 보인다.
나는 어떤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이 부르면 언제나 달려 나갈 수 있는 동원된 태세를 항상 유지한다.

1. 나는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이다.
나는 합법, 반합법, 비합법의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철천지 원쑤 미제를 쳐부수고 조국을 통일하는 투쟁을 선두에서 이끈다.
나는 민주화와 민족자주를 지향하는 각계 각층의 애국세력과 연합하여 광범위한 반미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투쟁을 벌인다.
나는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로서의 사상성과 품성, 정치적 능력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계속혁신 게속전진하며 학습과 생활, 전투에서 언제나 민중의 귀감이 된다.

1. 나는 목숨바쳐 ○○과 혁명을 지킨다.
나는 집단주의 정신에 따라 개인의 이익에 ○○과 혁명의 이익을 앞세우며 종파분자, 정치적 투기분자, 적의 밀정으로부터 ○○을 보호하여 ○○의 순결성을 고수한다.

다. 조직원 침투지역 및 단체
□ 침투지역(24개소)
지역과 침투지

경인: 구로, 서대문, 강서, 인천, 안산, 성남, 화성, 의정부, 안성, 부천, 군포
강원: 춘천, 원주, 강릉, 태백, 정선, 동해, 철원 등
충북: 청주, 충주, 제천 등
충남: 온양, 대전, 천안 등

□ 침투단체(47개소)
요소와 침투단체
학원: 서울대, 고려대, 이대, 인천대, 총선대, 한신대 등
노동: 서노협, 전노문협, 안양노동자회, 기노련, 기노총, 전국 노운협, 강원농민회, 만남의집, 노동상담소
언론: 「말」지, 기독교연합신문, 새누리신문, 농민신문, 한국 주·월간지 전문 기자회
출판: 한울출판사, 나라기획
종교: 기독교 농민회, 정토구현 전국승가회, 영등포 도산, 연무 장성교회, 강릉 푸른교회, 옥계 낙풍교회, 정선 증산교회
재야단체: 흥사단, 민사협, 민가협, 터사랑 청년회(성남)
기업체: 해태제과, (주)씨그네틱스전자, (주)경방,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한국투자신탁, 신화섬유, 기린제과, 삼익악기, 동양레미콘, 선경, 럭키개발, 동양시멘트, 삼환기업, 한전, 한국데이타통신

5. 「애국동맹」(한민전 대오) 강령 및 조직체계
가. 강령·규약·선서문·보위수칙·합의각서

애국동맹 강령
1. 우리는 한민전의 노선과 정책, 방침과 결정을 절대적인 지침으로 삼고 무조건적으로 집행하여 민족문지운동대오 내에서 그 인전대적 역할과 사명을 수행한다.
2. 우리는 민족민주주의 전선형성을 위하여 전국연합을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노동동맹을 기초로한 광범위한 애국적 민주세력을 주인으로 추켜세워 공고한 통일전선형성에 주동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추동한다.
3. 우리는 민중들의 민족자주의식을 무디게 하며 제국주의 침략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사회개량주의와 그 전파자들을 척결하고 민족민주 운동대오가 민족해방운동에 복무하는 훌륭한 거점으로 전변되도록 필사적으로 작용한다.
4. 우리는 조직을 건설함에 있어 좌경관문주의와 우경개방주의를 경계하며 조직사상적기초를 튼튼히 축성한 기초 위에서 혁명적 규율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시켜 민족민주 운동대오의 전위가 되도록 힘 있게 다그쳐 나간다.
5. 우리의 민족의 원쑤, 계급의 원쑤와 투쟁에서 모험적인 좌경맹동주의와 개량적인 우경합법주의를 배격하며 민족민주 운동대오가 민족해방투쟁의 선두에서 무비의 용맹성과 불요불굴의 헌신성을 발휘하여 투쟁의 전형들을 창조해 나가도록 지도해 나간다.
6. 우리의 주체형의 참다운 혁명가로서의 정치사상적 각오를 드높이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는 혁명의 주인다운 격조 높은 사회도덕적 문화를 창달한다.

규약
1. 조직의 운영과 관리방식은 단선연계, 복선조치의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2. 총책의 전일적 지휘를 확고하게 보장한다.
3. 중앙위원회는 혼선과 월선을 제거하여 유일지도체제를 공고하게 세우며 정책적 방향적 지도를 행사하는 유일의 지도부가 된다.
4. 중앙위원회는 참모들의 보좌를 받아 전략을 기획하고 전술을 설계하며 분공을 위임하고 검열을 수행하며 하급단위의 사업을 비준한다.
5. 하급단위는 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준수하는 조건에서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한다.
6. 성원의 자격은 사상적 견고함과 도덕적 견실함 및 인적 물적 정보자원을 조직에 위임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최상급의 비준을 받아 결정한다.
7. 특별사업은 다두단층 단선연계방식으로만 수행한다.
8. 전술간부들을 묶어세워 방계조직을 건설하고 이를 통해서만 대외사업을 진행한다.

선서문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모시고 한민전의 영도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애국동맹의 성원이 됨을 가장 큰 영예로 생각하고 여기에 사회적 생명을 위임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1992. . .
추천인
본인

보위수칙
1. 접선간격은 월2회를 넘지 않도록 한다.
2. 접선장소는 시위 또는 검문의예상지를 벗어나되 노출되지 않는 곳으로 하며 동일한 장소를 2회 이상 사용을 엄금한다.
3. 접선방법은 다중통과 2회와 차선바꾸기 2회를 실행한 후 하급의 안전을 확인한 뒤에 실시한다.
4. 상호통신은 절대엄금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공중통신망을 사용하되 그 내용은 사전에 약정된 음어를 사용한다.
5. 내부자거래일지라도 모든 증거가치를 인멸한다. 특히, 체모 혈흔 타액 지문 필적 등의 단서는 사전에 충분히 제거한 후 전달하며 사후에도 확인 제거한다.
6. 혁명적 규율을 날카롭게 곧추세우고 엄정하게 집행해 나간다.
7. 조직관계를 엄폐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관계를 대대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8. 사업내용을 교란하기 위하여 위장물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간다.

합의 각서
1. 조직과 관련하여 취득한 정부에 대하여 비밀을 엄수한다.
2. 사업과 관련하여 제공되는 문서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
3. 위 1, 2에 사회 정치적 생명을 건다
1992. . .
본인.

나. 조직체계

다. 「애국동맹」 전신 「95위원회」 강령 및 상징 깃발
□ 90. 10 최호경이 작성한 「95위원회」 강령 (돌격앞으로) 요지
□ 「한민전」은 우리 변혁운동의 애국적 전위들로 구성된 혁명의 참모부로 「한민전」 대오를 백방으로 강화한다
□ 계급·계층·부분별 지도조직을 꾸려 전투적 학습과 진공적 고양을 통일시켜 사상무장을 더욱 힘 있게 다그친다.
□ 한국변혁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대중의 변혁의 중심에서 주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인으로 나서는데 있다
□ 민족해방 통일 전선호는 근로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하는 혁신 정당의 창당을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
□ 91.2 최호경이 조직원 이승미를 시켜 제작한 상징 “깃발”

6. 북한의 간첩지령 관련사항

가. 김낙중에게 지령한 A-3 내용
※ 90.10~92.9간 북한지령 7건 수신

일자와 주요지령내용

90. 10. 8
□ 연락대표 무사히 도착함
□ 빠른 시일내에 동조자를 포섭, 규합할 것
90. 12. 7
□ 창당을 축하함
□ 핵심인사를 포섭 당주권을 장악 합법투쟁을 지속할 것
91. 3. 8
□ 자금조달 등을 논의키 위해 심금섭에게 초청장을 보냈음
□ 심금섭 출국토록 지원할 것
91. 6. 7
□ 심금섭을 만나 얘기가 잘 되었음
□ 심금섭은 경솔한 사람으로 판단되니 활용시 경계하기바람
□ 민중당내 토대를 확고히 구축하기 바람
91. 9. 6
□ 민중당에 변호사. 지식인, 재야인사 영입을 강화할 것
□ 각계각층 핵심인사 물색, 통일전선 토대를 구축할 것
92. 4. 10
□ 연락대표 무사 복귀하였음
92. 6. 12
□ 주사핵심의거, 광범한 민주세력 포용, 새정당 건설 추진에 헌신하는 동지의 로고 높이 평가함
□ 대선시 모든 민주세력이 민주당 후보 밀어줄 것
□ 각종 악법철폐 양심시 석방 비핵군축 련방제 등을 지지카드로 리용할 것
□ 대선시 국민련합에 모든 세력 집결, 대렬의 통일단결할 것
□ 침체된 대중투쟁 활성화시키도록 중용바람
92. 8. 14
□ 은서 보고받았음
□ 가능하면 10월경 혁신정당 재건정형을 서로 알려주기 바람
□ 대선 투쟁공간 리용하여 핵심골간 튼튼히 꾸리며 새혁신 정당 재건에 전력바람

나. 황인오에게 지령한 A-3 내용
※ 90. 10~92. 9간 북한지령 41건 수신

일자와 주요지령내용

91. 7. 20
□ 하반년 대중운동 방향은 자주, 민주, 통일기운 확산에 두는 것임
□ 대책회의와 산하조직들이 자주, 미&#45594;, 통일기반 밑에 민주련립 정권수립을 목표로 제기하여 여야당 포함한 모든 자주민주통일세력을 결속할 것임
□ 종교와 쟁취할 수 있게 구호와 전술을 만들기 바람
91. 7. 22
□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교양요해하여 자주 의식화를 촉진시키고 반미투쟁에서는 대중공감 받도록 시장개방 압력과 미군유지비 부담 반대, 미군만행시 응징과 핵무기, 미군철수를 제기하며 반전, 반핵운동을 부각시킬 것
□ 민주화투쟁에서는 민주세력 탄압중지, 공안퉁치 종식투쟁을 통일운도오가 밀착시켜 나갈 것
□ 민중 생존권 투쟁에서 임금인상 투쟁에 주목하면서 주택란, 물가상승 등을 결합, 조직보호, 보존대책을 강구할 것
91. 10. 20
□ 총선에 대중 적극 동원하여 진보정당이라고 볼 수 있는 민중당 후보를 지지하게 할 것
□ 로동자들의 의식화 조직화에 계속 주력할 것
□ 동생을 통해 학생운동이 과격한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 하여 혁명력량을 준비하는 사상 전사운동으로 되도록 방향 줄 것
91. 11. 20
□ 련락원 해외거점에 파견할 것
□ 접선하면 문건보고를 전달하고 구두로 보충 설명하며 공작금을 받을 것이며 련락원에 대한 비합법활동 기술교육 잘하여 보내야함
92. 1. 20
□ 북남합의서 관철되면 방송지시 중단될 수 있음
□ 북남 래왕 가능한 ○○○신문 기자 쟁취하여 합법 련락원으로 준비시킬 것
92. 2. 22
□ 친애하는 수령 김정일 동지께서 보고와 정성품을 보시고 동지들에게 감사를 주시었음
□ 이월명절에 지도부 성원들과 “욱”(황인욱 지칭)에게 조국 통일상에 배려되었음
□ 정세 완화되면 지도부회의를 소집하고 정치사업을 잘 조직할 것
92. 3. 8
□ 조직에서 보낸 필림 받았음
□ 수령님 탄생 팔십돌과 인민군 창건 륙십돌 기념 축전과 정성품은 사일 오전으로 보내기 바람
□ 비합법 태세를 견지하고, 조직의 안전유무를 검토분석할 것
□ 특히 구십오(1995년 위원회 지칭)의 성원 구성관계를 검토하고 조직정비 잘 하는 것이 좋겠음
92. 3. 27
□ 조직 안전상태 잘 검토하고 활동하며, 지하당 건설에서 정간주의 간결성, 비밀성의 원칙 견지해야함
□ 북과 련계는 중앙지도부 성원만 알아야 함
□ 타대상 공작은 애국전선당(민족해방 애국전선 지칭, 일명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지칭) 명의로 할 것이며 혼선방지 위해 경인지역에서의 대상공작은 본부 승인받고 할 것
92. 5. 6
□ 조직 확대에서 정간주의 비밀원칙 지켜야 하고, 혼선방지 위해 경인지역에서 대상공작은 사전 본부 승인받고 할 것
□ 공화국과 련계문제는 지도부 성원만 알아야 함. 그 대상은 담보방송 주지말고 애국전선 명의로 공작할 것
92. 7. 6
□ 문건과 무전보고 받았음
□ 조직을 정간주의 원칙에서 간결하게 꾸리고 활동에서 비합법태세 견지할 것임
□ 십월말 십이월 초사이 동지의 기지교육 한달간으로 예정하니 준비바람. 자금과 교양자료 등도 그때 보내려함
□ 접선시각 장소 날자는 차후에 알려주겠음
92. 8. 5
□ 대선에서 반민자당 련합전선을 형성하여 민주당 후보를 밀어줄 것
□ 대선투쟁을 통해 통일 민중력량 확대 강화해야 됨
□ 마씨(마윤종 지칭)를 해외를 통해 기지에 보내든지 어느 나라에 상주시키겠는지에 대한 지도부 결심 보고바람
□ 기지교육시 보좌관 대동하는 것이 좋겠음
92. 9. 6
□ 합법단체와 언론계를 내세워 통일민주세력 탄압에 대한 폭로 선전할 것

만수축원, 충성으로 보답,
가능하면 처와 대동 북귀하는 것이 좋겠음
김낙중 건 주시하고 있음. 대책 지시바람

다. 손병선에게 지령한 A-3 내용

※ 90. 11~92.9간 북한지령 47건 수신

일자와 주요지령내용

90. 11. 4
□ 당 대표 무사히 도착하였음
□ 동지의 의견대로 ○과 ○동지를 망라하여 지도부 조직하고 교협과 동우회 안에서 핵심들을 선발하여 지하당 건설 확대하며 기타 대상들은 민중당원으로 흡수하는 것이 좋겠음
□ 협회는 민중당의 지지세력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함
91. 3. 19
□ 지하당 지도부는 정간주의 원칙에서 꾸리고 안전보위에 주력할 것
□ 중앙의 상징적인 당직과 지구당에 각계 명망 민주인사 널리 영입하여 당 대열과 대중적 지반을 확산할 것
□ 중앙의 정책 참모진은 주사파 핵심들로 점차 교체를 요함
□ 국민련합에 상설 지휘기구 설치 활용하고 모든 운동단체 집결하여 반민자당, 민주련립 정권수립, 련방제 통일구호를 제기하고, 평민당·민주당과 제휴 합작하여 지자제 총선 투쟁 민주련합전선 실현에 지향할 것임
91. 5. 19
□ 당면 투쟁에서는 신민당 인입을 위해 현재의 투쟁에 광역 선거전을 결합하고 전국권의 선거투쟁을 결합하면서 적극 협상하기 바람
□ 헌투쟁에서는 평화투쟁으로 전개하되 내각제 반대등 신민당 구호를 수용하며 과격투쟁을 저지하여 대중성 확산에 목표 달성하기 바람
□ 범국민대책위의 유지 강화를 위해 야당대표를 다수 인입해서 전면에 내세우며 그 활동에서 적법성을 준수하고 차후 범야권 선거책위 또는 민주련립 정권수립 준비위로 발전시킬 것
91. 7. 4
□ 반미, 통일, 민주, 생존권 투쟁을 잘 결합시킬 것
□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교양을 강화하여 자주의식화를 촉진해야함
□ 반미투쟁에서는 대중공감 받도록 시장개방 압력과 미군 유지비 부담반대 미군만행 응징과 핵무기, 미군 철수를 제의할 것
□ 민주화 투쟁에서는 민주세력 탄압중지, 공안통치 종식투쟁을 통일운동과 밀착시켜 나갈 것
□ 민중생존권 투쟁에서는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인상 투쟁, 주택 부족난 문제 등 생활상 구호를 적절히 배합할 것
91. 9. 4
□ 민중당과 운동권을 보수야당의 대여 탄압을 견제하면서 대선 때 김대중 지지를 약속해 주고 범민주 련합전선 형식의 야권통합과 총선시에는 야권 련합공천을 협상하고 실현되도록 하기 바람
□ 민주주의 민중련합도 범민주 련합전선 결성에 지향하며 그에 맞게 명칭 강령을 제정하고 토대를 구축하도록 종용할 것
92. 2. 19
□ 민중당이 당면 총선에 주력하되 지역별로 타 야당, 재야세력과 협력하고 잘 조직하기 바람
□ 총선을 통해 당을 유지하면서 전선적, 대중적, 혁신적 정당건설로선을 고수하고 그를 전체 당원들에게 인식토록 교양해야함
□ 당 명칭과 리념도 견지함이 바람직함. 중앙 및 지구당 정책론에 주사핵심을 보강하고 당대렬에 각계 통일민주 인사를 많이 영입하는 등 당 강화대책을 계속 강구할 것
□ 교류 및 3국 북남접촉시 련락할 수 있는 련락원을 선발바람. 언론기자 좋을 듯 함
92. 4. 4
□ 총선결과에 낙심 말고 선심 있게 사업하기 바람
□ 당면하여 민중당 핵심 및 주류 지구당을 이끌고 <전국련합>에 합류하여 전국련합의 강화발전에 기여하기 바람
□ 주사핵심 쟁취하여 지하당 지도부를 꾸리는 데 주력하되 민중당 밖에 있는 대상을 공작해도 무방함
□ 동지가 정책 보좌 받을 대상 먼저 공작함이 좋겠음
92. 5. 4
□ 리우재가 기자회견에서 제기한대로 새당 창당에 적극 협력바람
□ 수유동 서씨묘비 석축 무인함에 공작금 미화 십오만과 고속무전기 책자, 문건을 묻었으니 로출없이 발굴할 것
□ 무전보고는 무전기 뚜껑에 붙인 날자와 시간표대로 할 것
92. 6. 4
□ 대선국면을 리용 전국련합에 모든 민주세력을 집중시켜 련합을 튼튼히 꾸리며 조직체계를 정비 보강하도록 조직바람
□ 대선시 민주당 후보 밀어주며 이 기회에 침체된 대성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임
□ 민주세력 독자후보론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각종악법 철폐 양심수석방, 비핵군축 등을 민주당 후보 지지카드로 리용해야함
□ 대중 투쟁구호와 련립정부수립, 민자당 일당 독재반대, 공명선거, 악법철폐 폭악기구 해체 등을 결합하여 투쟁할 것
92. 9. 4
□ 평통연구회 사건(김낙중사건을 지칭)의 단서는 동지와 무관하니 안심할 것
□ 단서로 될만한 일체자료는 외부에 잘 매몰할 것
92. 9. 19
□ 본부지시 받을 때까지 비밀활동 중지하고 생업 및 합법 활동에만 전념할 것
□ 공작금 출처 위장 잘하고 적들에게 걸려들 수 있는 흔적을 없애거나 은닉시킬 것
다. 손병선에게 시달한 민중당 정강정책 지침 및 김일성 찬양 송사
□ 92. 5 북한이 지령한 민중당의 정강정책지침서9우이동 무인포스트에서 발굴)
-민중당내에 소수핵심들로 지하지도부를 구축, 당 장악
-민중당이 해산할 경우 민중당 주류와 전국연합 등 주사파 세력 등을 규합, 새로운 진보정당 결성

민중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개정방향에 대하여

※ 민중당에 해산되는 경우에도 SH당의 강령과 기본정책은 이 방향대로 하여야 합시다
강령서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첫째로, 한국 사회의 기본병폐와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변혁운동의 기본과제에 대한 민중당의 견해와 주장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민중당의 성격과 사명 문제가 명기되어야 할 것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이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당내에서 일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하당성원들이 통제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도부성원으로 등용하도록 한다.
안기부와 기무사, 전경 등 일체의 파쑈폭압기구들을 철폐하고 양심수의 전원석방을 실현한다.

남북대결의 정치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하여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격화시키는 일체 악법들을 철폐한다.
민중당은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민족민운동의 객관적 요청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도권에 진출한 민중진영의 정치적 별동대이다.
민중당은 우리 민족의 반일구국정신을 밑거름으로 하고 4월 혁명과 광주항쟁,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변혁의지와 의로운 저항심을 승계한 정의구현정당이다.
민중당은 한국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비롯하여 자주, 민주, 통일에 살려는 민족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진보 정당이다.
이 사회를 변혁하여 자주, 민주, 통이링 실현된 민주주의 자주 독립국가를 세워나가는 것이 민중당의 이념인 민중주체 민주주의의 본의가 아니겠는가.
민중당은 아직 역부족한 상황에서 <전국연합>을 비롯한 재야 운동권과의 조직적연대를 먼저 실현하고 그에 힘없어 보수야당들과의 공동전선을 방법있게 펴나가야 한다.
민중당은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민족화해와 조국통일의 구호아래 반외세, 반매판, 반독재, 연방제통일을 지향하는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을 민족자주전선에 단합시켜야 한다. 특히 민중당은 재도권에 진출한 민중주체세력의 정치적 별동대로서 제도정치권의 다른 야당들과 공동전선을 펴나가는데 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내오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주사파들에 의거해야하며 다른 나라리론,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리론인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에 심히 물젖은 사람들은 제한 하는 원칙을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 김일성이 직접 작시한 김정일 50회 생일 축하 송시(92. 6초 우이동 무인포스트에서 발굴)
-북한은 92.6 및 92.7 2회에 걸쳐 A-3 방송을 통해 “노출되지 않게 운동권에 널리 보급하라”고 지령

백두산마루에 정일봉 솟아있고
소백수 푸른 물은 굽이쳐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46029;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다 우러르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7. 대북 보고 내용

가. 무전보고

□ 간첩 황인오: 19회

연번과 일자 및 보고내용
1. 90. 11. 4
무사회 도착하였음. 사업 열심히 해서 배려에 보답하겠음
2. 91. 12. 4
사업 열심히 해서 배려에 보답하겠음
3. 91. 3
90. 12. 4 보고내용
4. 91. 4. 4
90. 12. 4 보고내용
5. 91. 10
해외 중계점에 11월 사람 보내려하니 구체적 지시 바람
6. 91. 11. 2
91. 10 보고내용
7. 91. 12. 4
전자수첩 비밀번호는 23번, 은서받는대로 즉시 응답바람
8. 92. 1. 23
한민전 방침바람. 필름 잘 받았는지 응답바람
9. 92. 3. 24
6월에 해외중계점에 사람 보내겠음. 조직활동 계속 여부 지시바람
10. 92. 4. 2
혁신정당 재건 지침바람. 배려 전달하였음
11. 92. 5. 3
5월부터 조직확대 사업 진행하겠음. 김철완, 신동욱은 소독과정에 문제가 있어 입당 보류하고 있음
12. 92. 6. 2
조직내 사고발생하여 모든 활동 중지하고 편집국 폐쇄하였음. 5. 5자 한겨레신문 참조바람. 6월 은서로 상세한 보고하겠음
13. 92. 6. 14
해외연락원은 검은테 안경낀 170cm 정도의 27세 남자임. 공작금 500만엥 보내주기 바람
14. 92. 6. 24
진씨(진용근) 밀항추진해 보겠으나 조직성원은 아님. 마(마윤종)씨나 욱(황인욱)의 출국이 보다 효과적임. 삼목도행 철탑보다 신도행철탑이 무인함으로 적당함
15. 92. 7. 3
신도행철탑 확인함. 구체적 지시주기 바람. 마씨 출국준비 시키겠음
16. 92. 7. 18
마씨의 어머니가 욱의 신원을 알고 있고 조직의 조치 적합 여부지시 바람
17. 92. 7. 25
92. 7. 18 보고내용
18. 92. 8. 3
조직활동 계속 여부와 대선지침 주기 바람.
19. 92. 9. 3
마씨 9월중 유럽출국 가능함. 가능하면 저와 대동 복귀바람. 김낙중사건 예의 주시하고 있음

□ 간첩 손병선 : 6회
연번과 일자 및 보고내용

1. 92. 6
무인포스트 발굴함
2. 92. 7
8월중 북경 조선학 학술대회 참가 예정
3. 92. 7. 20
북경 방문문제 추진 중
4. 92. 8초
아직 중국방문 허가 나지 않았음. 10월 다시 보고하겠음
5. 92. 8. 10
아직 허가나지 않았음. 중국 방문 어려울 것 같음
6. 92. 8 중순
허가났음. 18일 출발

나. 은서보고

□ 간첩 황신오: 7회
연번과 일자 및 보고내용

1. 91. 2 중순
□ 무사히 도착했음. 영화(VTR테이프)를 보낼때는 PAL 방식에서 NTSC 방식으로 변환시켜 보내주기바람
방법: 황인욱이 속달 항공편으로 약정주소인 日本 大阪市 生野區 桃谷 3-15-11 송행자에게 우송
2. 91. 5 초순
□ 인입대상자 선전에 어려움이 있어 조직사업이 지연되고 있음
방법: 도일 유학생 이용, 약정주소 우편함에 투입
3.. 91. 7 초순
□ 「95 위원회」를 조직해 인입 희망함
□ “精誠品”으로 삼성 8mm 비디오
방법: 마윤종이 도일 약정주소우편함에 투입
4. 91. 7말
□ 최호경은 83-84년경 내게 영향을 준 노동자임
방법: 기자 통해 홍콩에서 우송
5. 91. 12 초순
□ 중앙지도부 결성 상황 및 지도부 최호경, 장창호, 정경수, 은재형, 김철완, 양홍관, 신동욱 등 신원자료
□ “92년도 국방예산안” 촬영필름 2통
□ “精誠品”으로 VTR 카메라 1대, 전자수첩 1대
방법: 허난정이 도일 직접 전달(공작금 50만엥 수령)

6. 92. 1 중순
□ 김일성·김정일 찬양노래 연주곡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 및 악보, 김정일 찬양시
방법: 허난정이 재차 도일 접선(공작금 300만엥 수령)

7. 92. 6 중순
□ 92. 4 “14대 총선백서” 발각 경위, 조직활동 상황보고 및 공작금 요청
□ “精誠品”으로 VTR 카메라 1대
방법: 김현찬이 도일, 직접 전달(공작금 50만엥 수령)

□ 간첩 손병선 : 4회

연번과 일자 및 보고내용

1. 91. 5
□ 그간 무전기 고장으로 보고하지 못했음
□ ○○○는 미국쪽의 별도 루트로 연락하고 있음
□ 지하당 조직사업 진전 없음

방법: 손병선이 스웨덴 출국시 경유지인 동경에서 약정 주소인 일본 大阪市 生野區 桃谷 3-15-11 宋幸子에게 우송

2. 91. 12 하순
□ 당원확보 사업 부진함
□ 그간 무전기 고장으로 연락히 못했음

방법: 차녀 송민영이 도일, 약정주소에 우송

3. 92. 2 하순
□ 농장의 사업부진으로 4,000여 만원의 부채가 생겼음
□ 민중당의 재정이 어려워 북한의 명태를 수입해서 팔았으면 함 검토바람
방법: 차녀 송민영이 도일, 약정주소 우편함에 투입
4. 92. 3 하순
□ 재정사업 등 위해 북과 농수산물 또는 꽃관계 무역을 하려고 하니 검토바람
차녀 송민영이 도일, 약정주소 우편함에 투입
다. “김일성 찬양가” 및 “김정일 찬양시” 대북보고
□ 91. 3 윤정환(가명: 윤민석)이 최호경 지시로 작사·작곡한 김일성 찬양가(92. 1 대북은서 보고)
□ 92. 4 윤정환이 북에 보고키 위해 작사·작곡한 김일성 찬양가
□ 92. 1 장창호가 김정일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김정일 찬양시”(92. 1 대북 은서보고)

8. 황인오가 하부방을 통해 탐지한 국가기밀사항

□ 91. 5 황인욱이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조직원으로 함께 활동한 신민당 이상수의원 개인비서 이근희(26세)에게 국회에서 입수되는 정보자료 제공을 요청
-91. 8~12간 이근희 민주당 김대중대표 최고위원 개인비서(국방위 입법보조원)로 활용하면서
□ 민자당 계파 내분관련 메모(직접 작성)
□ 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 복사본(34쪽)을 제공
-92년도 국방예산(안) 개요에는 정부재정 및 국방예산 규모, 예산사안별 편성개요 등 주요 군사기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동 자료는 황인오가 사진촬영, 92. 1 대북 은서보고
□ 91. 12 고한석(26세)이 군복무시 입수한 “대 간첩수사 요령”(40쪽) 책자 1권을 황인오에게 제공, 조직보위수칙을 작성하는데 활용
-동책자에는 침투간첩 식별 및 색출요령 등 내용이 수록되어 있음
□ 92. 8 최호경이 하부조직원 우진성(27세)에게 군사정보수집 지시
-우진성이 국방부 ○○○○부대(정보통신 수집부대)에 근무한바 있는 주정현(29세)을 통해 동부대의 위치, 임무, 기능 등이 수록된 컴퓨터 디스켓을 입수 최호경에게 보고
□ 92. 7말 이경섭(26세)이 하부 조직원 조덕원(25세)에게 “한민전에 관한 합법·비합법자료를 요약, 디스켓에 입력시키라”고 지시
-92. 8 조덕원이 고대 후문 장백서점에서 91. 1~12간 구국의 소리 방송 내용을 발췌한 제목이 없는 책자(A4복사지, 200쪽)를 구입, 내용을 요약하던 중 말미에 “한반도 핵문제 백서부록”이 들어 있어 동 내용을 그대로 디스켓에 입력, 이경섭에게 보고
-디스켓에는 주한미군 핵보유 및 핵기지 실태 등이 수록되어 있음
□ 91. 8 황인오가 충북도당위원회 장창호(33세), 은재형(28세)에게 “충북지역내 정치·군사·경제실태 등을 탐지 보고”토록 지시
-91. 9 은재형이 충북지역의 인구, 사회적 특성 등 제반현황과 학생·운동권 세력 및 활동정부 등을 탐지 보고
-장창호는 92. 3 충북 제천, 충주 등지를 다니면서 동 지역의 인구, 사회적 특성, 지리 등 현황과 전교조·풍물패·민중사랑 청년회 등 문제단체의 활동실태 등을 탐지 보고

9. 당 정치신문 발간 배포

가. “백두산” 제작, 배포상황

○ 91.8하순 황인오가 황인욱에게 “당의 정책과 방침, 주체사상 공급을 위해 『한민전』방송청취팀(BC팀)을 꾸려 운영하라”고 지시

- 황인욱이 “BC팀을 운영하게되면 당지도부가 노선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당 사업과 대중사업을 병행 할수 있기 때문에 BC팀 운영이 필요하다”고 이에 적극 찬동

○ 91.8-9간 황인욱이 정언영(25세, 이대 건강교육학과 86학번), 정인미(24세, 이대 건강교육학과 86학번), 임명규(25세, 서울대 서문학과 86학번) 등 BC팀 성원을 개별면담 포섭, 『민족과 철학』등을 교재로 총 15시간에 걸쳐 주체사상 학습교양

○ 91.10 황인오의 자금지원으로 봉천동 낙성대 입구에 방1칸을 전세임대(보증금 500만원, 월세 12만원)
- 청취 및 녹음담당 : 임명규, 정인미
- 타이핑 담당 : 정언영
- 편집 담당 : 황인욱
등 임무 분담

○ 91.10 - 92.3간 북한방송을 청취 녹음한 내용을 중심으로 『백두산』제하 1-8호 및 호외 1-2호를 제작 배포(호당 20쪽 가량)

○ 92.4 황인욱이 작성한 『14대 총선백서』를 『나라기획』을 통해 인쇄하는 과정에서 경찰 불심검문에 적발, 압수당하자 92.6 『백두산』아지트를 폐쇄하고 디스켓등 편집문건 소각

○ 91.11 발간 배포된 “백두산” 제2호

나. “새날의 주인” 제작, 배포상황

○ 91.12 황인오가 최호경에게 “내가 제작하고 있는 백두산 방소팀은 업무가 과다하여 내가 직접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므로 이 사업을 승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보라”고 지시

○ 91.12 최호경이 강원도당 위원장 이경섭(32세) 및 『애국전선』 산하 『5.1 동맹』총책 함정희(29세)에게

- 『한민전』노선과 정책을 정확히 접수하여 실무활동지침을 수립하고 사상학습교재로 활용키위해 방송청취 소조를 운영할 계획이니 적임자를 물색 교양하라”고 하달

○ 92.2하순 최호경이 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방송청취 소조』를 결성운영

- 『구국의 소리방송』은 이영지(25세, 이대졸), 혁 준(가명, 고대의대 재학), 조행자(가명, 청실홍실기획사), 말식(가명)등이 전담, 청취하고

- 『평양방송』은 병욱(가명, 고대재학), 미경(가명, 총신대졸) 등이 전담, 청취

- 각자 집에서 청취한 내용을 문건화하여 명희(가명, 서울농대4년)가 종합, 이경섭(32세, 강원도당 위원장)에게 보고 하고 이경섭은 최호경을 통해 황인오에게 보고

○ 92.4-6간 『구국의 소리』 『평양방송』등을 채록하여 “새날의 주인”(16절지 20쪽 가량) 제하1-4호를 발간, 당원들에게 배포

○ 92.6 BC팀(백두산 제작팀)의 조직 보위사고(총서백서 발각)를 접하고 조직이 노출될 것을 우펴, 폐간조치,(『구국의 소리방송』 팀 해체)

※ 92.7 이후 『평양방송』소조를 보강하여 평양방송을 채록한 유인물을 지도부에 보고해 왔음

○ 92.4 발간된 “새달의 주인” 창간호

10. 김일성·김정일 찬양유인물 작성 살포

가. 92.1 황인욱 등 조직원 16명이 각각 작성, 각대학 총학생회등에 배포한 김정일 생일 축하 “충성의 편지”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1992년 2월 16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충성의 인사를 드립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전세계 민중의 유일한 지도사상, 주체사상을 더욱 빛나게 완성하시고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압력속에서도 항상 사회주의 건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도하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웅적인 투쟁과 빛나는 업적은 한반도 7천만 민중뿐 아니라 전세계 진보적 민중들의 자랑입니다.
특히 최근의 소련과 동구사태는 우리들을 혼동시키고 흔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국 북반부의 인민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향도따라 조금도 흔들림없이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발전시키고 반제자주진영으로 우뚝 서게 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전쟁도발책동과 갖은 음모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튼튼히 세워나가시고 전세계 민중을 위해 항상 앞에서 올바른 길로 영도하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승리로 이끄신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항도따라 한반도가 완전히 주체의 사회주의나라가 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고 95년까지 조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한몸을 자주 민주 통일투쟁에 바치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생신을 맞이하여 7천만 민중과 함께 축하드리며 삼가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1992년 1월 19일 *** 드립니다. 』

○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탄신일을 열렬히 축하하며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의 인사를 올립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탄신일을 열렬히 축하하며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하신 주체사상으로 하여 참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때 저는 삶의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조국과 민중의 운명을 등지며 일신의 안일을 위하여 살아가고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자주성은 사람의 생명이며, 자주성이 사람의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일컫는다”, “사람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은 가장 고귀한 것이다”라는 주체사상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며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저에게 뚜렷히 밝혀 주었습니다. 이 때 가졌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체사상을 발전 풍부화시키고 완성하신 분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였음을 알았을 때 지도자 동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은 한없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며 삶을 개척해나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가르침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은혜로 남습니다. 이 가르침과 은혜를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며 주체사상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살며 투쟁할 것을 다짐합니다.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계승 완성하신 주체의 위업은 오늘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책동이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이 때,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회주의 나라들의 몰락과 제국주의자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반동적 공격속에서 사회주의의 원칙을 굳건히 견지하시고 주체의 혈통을 한 치의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시는 지도자 동지의 비범한 영도력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북사회주의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 이러한 자랑차고 위대한 일을 주체위업의 계승자로서 진두에서 지휘하신 지도자 동지를 민족의 지도자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한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북 사회주의를 파탄시키기 위한 미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음모를 분쇄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계승하신 주체위업을 전국적 범위에서 완수해내기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바쳐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주체위업을 계승하고 완성하시는 길에서 지도자 동지께서 보여주신 민중에 대한 한없는 사랑,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사업 등은 저의 활동 속에서 언제나 구현해야 할 귀중한 모범으로 됩니다. 인민대중을 육친의 정보다 더 깊이 사랑하시며 보살펴주신 지도자 동지의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받은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견결한 김일성주의자로서 한국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살며 투쟁하고자 하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사상과 작풍을 온전히 체현하며 지도자 동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저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지도자 동지의 뜻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받들어 집행하는 혁명전사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도자 동지께서 저에게 참된 삶의 길을 깨우쳐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지도자 동지의 탄신일을 축하하며 충성의 맹세를 보냅니다.
1991년 1월 19일 *** 』

나. 북한찬양 및 운동권 선동 유인물

○ 91.11 황인욱이 황인오의 지시로 『특보』제하 불온유인물을 제작, 배포

- “김정일이 11.12-14 (3일간) 남한에 잠입하여 축시법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파쇼 폭정에 신음하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고 떠났다”는 날조 내용

○ 92.2 최호경이 작성, 배포한 “매국을 불사르고 애국의 봉화를 더욱 높이 추켜들자” 제하 김일성·김정일 생일 축하 전단

○ 92.2.10 김일성 80회 생일 및 김정일 50회 생일을 맞아 『한민전』 중앙위 명의의 “공보” 발표

○ 92.4 최호경이 경기 부천, 강원 철원·강릉지역 주민들에게 우송한 “김일성 주석님의 80회 탄신일을 맞이하여...” 제하 유인물

○ 92.3 황인욱이 황인오의 지시로 국내좌경 세력을 고무, 선동할 목적으로 소위 “14대 총선백서” 를 제작 배포

○ 92.5 전달수(20)가 마윤종(27)의 지시로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 “구국전선” 제하 유인물로 작성, 서울대에 배포한 문건

11. 북한, 간첩들에게 『조국통일상』등 수여

○ 92.2 북한의 “2월 명절에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지도부 성원전원과 “욱”(황인욱 지칭)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였다”는 A-3 지령 하달

- 92.3 황인오, 최호경, 장창호 등 지도부 성원 3명이 설악산 대명콘도에서 회합
·황인오가 “수령님께서 우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셨다”면서 건배를 제의하자
·참석자 전원이 “과분한 상을 받았다. 김종태(통혁당 총책)동지가 받은 상을 받다니”라면서 감격,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

○ 92.4 다시 북에서 “4.15를 기해 도책 김철완(33세), 신동욱(33세) 에게 노력훈장이 배려되었다”는 A-3 지령 하달

○ 또한 92.4.19 간첩 손병선에게 “노력훈장이 수여되었다”는 A-3 지령 하달

12. 윤정환이 작사·작곡 운동권 등에 보급한 노래 (44곡)

연번, 일시, 곡명, 내용 비고
1. 87. 6
사랑하는 동지에게
지금은 고통이지만 열심히 싸워 나가자

95위원회 가입전

2. 87.10
어머니Ⅱ
어머니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워나가자

3. 88. 4
반미출정가
미국을 몰아내고 자주적 통일을 이루자

4. 88. 4
추운 이겨울에(겨울단상)
고통받는 이웃을 생각하자

5. 88. 4
망월동에서
광주사태 희생자에 대한 추모

6. 88. 5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어둠을 걷쳐나가면 된다는 노래

7. 88. 6
하나를 위하여
긴어둠 내몰고 조국산천 밝히는 통일의 날 위해 노래하자

8. 88. 8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진실되고 용기있게 살고싶어요

9. 88.12
소리없이 흰눈은 내리고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이별

10. 89. 3
광주여 무등산이여
광주사태에 대한 추모

11. 89. 4
애국의 길
반미투쟁 조국통일 투쟁위해 자랑스럽게 애국의 길로가자

대학생 통일노래 한마당 입상곡

12. 89. 4
편지 Ⅰ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

입상곡

13. 89. 6
전대협 진군가
전대협 깃발아래 승리의 한길로 나가자

14. 89. 6
자랑스런 고백
조국의 통일을 위해 시련을 이겨내고, 조국을 사랑하자

15. 89. 6
오, 통일이여
분단의 벽넘어 한라에서 백두까지 가리라는 통일의 염원

16. 89. 7
전대협 찬가
전대협에 대한 긍지 및 자랑

17. 89. 7
유언
미국놈 몰아내야 우리가 살고 나도 눈감을 수 있다

18. 89.10
내가 왕이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19. 89.10
편지 Ⅱ
임종석 (전 전대협의장)에 대한 그리움

20. 89.10
결전가
조국의 가슴찬 해방을 위해 선배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싸우러 나가자

21. 89.10
어디 손한번 들어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하자

22. 89.10
전사의 맹세Ⅰ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이름없이 쓰러져간 무명 전사들에게 바치는 추모곡

23. 89하반
다방구
동심의 세계에 대한 동경

24. 90. 2
언니와 함께 나도 갈테야
통일의 길을 열어젖힌 임수경 언니를 찬양

25. 90. 3
전사의 맹세Ⅱ
조국광복을 위해 쓰러져간 무명전사들에 대한 추모곡

26. 90. 4
연대투쟁의 노래
강철같은 연대투쟁으로 진군하는 동지

27. 90. 4
가두투쟁가
폭압을 불사르는 불바람으로 투쟁하자

28. 90. 4
반민자당봉기가
민자당의 반민주·반민중·반통일성을 폭로·풍자·선전 하는 내용

29. 90. 5
민주언론사수가
민주언론 깃발아래 뭉쳐 자주·민주의 나팔수되자

30. 90. 5
편지 Ⅲ
투쟁의길을 함께 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31. 90. 7
임진강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

32. 90.7
백두산 맹세Ⅰ
한겨레의 숨소리가 살아뛰는 백두산에로 갈수 있는 통일을 이루자

성남노래 마을에 발표

33. 90.10
들국화
님에 대한 그리움

34. 90.11
우리 노동자(진짜노동자Ⅳ)
우리 운명의 주인은 노동자

35. 90.11
우리에게는
별(꿈)을 안고 우리의 길을 함께 나가자

36. 91. 1
범민련 진군가
범민련의 주장에 동참하자

95위원회 가입후

37. 91. 3
수령님께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수령에 대한 충성의 표시

38. 91상반
서울에서 평양까지
평양까지 달려가고픈 운수 노동자들의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

39. 91상반
민중연대 전선으로(연대투쟁 전선으로)
민중이 연대하여 투쟁 전선에 나갈 것을 호소하는 노래

40. 91상반
꽃다지 Ⅱ
감옥에 갇힌 동지들에 대한 격려

41. 91.11
한민전 찬가
한민전에 대한 긍지와 예찬

42. 91.11
한민전 10대 강령가
한민전의 10대 강령을 항상 되새기자

43. 92. 1
사랑과 혁명에 대하여
91.12 사망한 양은경(덕성여대 사회)에 대한 추모

44. 92. 4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김일성을 찬양한 노래

http://monthly.chosun.com/client/dataroom/databoardread.asp?idx=64&cPage=2&table=dataroom

이 사건은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으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으나, 한편에서는 92년 대선의 막바지인 10월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선거철마다 나타나는 고질적인 ’북풍(北風)’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는 92년 10월 6일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한에 지하당을 구축, 간첩활동을 해 온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사건을 발표했다.

안기부는 남한 조선노동당을 거물간첩 이선실이 황인오를 포섭해 서울, 인천 등24개 주요 도시의 46개 기업과 단체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300명의 조직원을 확보한 가운데 북한 노동당과 남한 대중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 온 비합법 지하조직으로 소개됐다.

이선실에게 포섭돼 북한에서 교육 받은 황인오씨가 91년 7월 강원도 삼척의 모여관에서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했으며 산하에 강원도당, 충북도당, 충남도당 및 편집국을 두었다는 것이 당시 공안당국의 발표 내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와 민중당내 지하지도부를 구축, 간첩활동을 한 손병선씨, 민중당 전 공동대표 김낙중씨, 전 민중당 정책위의장 장기표씨등 6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은 구속자만도 62명에 이르고 수배자가 3백여명에 달하는 등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좌익사건일 뿐 아니라, 북한 권력서열 22위의 고위 당직자 이선실이 직접 남파돼 공작을 총지휘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왔다. 민자당과 국민당은 국회에서 민주당 김대중 대표의 비서 이근희(李根熙)씨가 군사기밀문서를 유출,구속된 데 대한 책임소재를 추궁하는 한편 일부 현역 정치인들이 간첩단과 접촉했다는 정치인 연루설 등을 집중 거론, 민주당측을 공격했다.

또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민주당 부대변인 김부겸씨(현 열린우리당 의원)가간첩 이선실과 접촉해 이씨로부터 5백여만원을 건네 받은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되기도 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건을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유선호 의원과 정형근의원은 당시 민애전 사건 성격과 고문조작 여부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유 의원은 ’민족해방애국전선(민애전)’ 사건은 공안기관이 학생들의 낭만적인통일운동을 북한과 연계해 용공으로 조작한 것으로 규정했다.

반면 정 의원은 북한 간첩이 구축한 지하조직을 통해 일부 학생들이 포섭돼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간첩사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 사건은 동남아의 우리 대사관에 자수한 북한 고위간첩 ’은하수’의 정보 제공으로 발단이 된 것”으로 반박했다.

유 의원은 또 “당시 100여명이 넘는 사건 관계자 대부분 억울하게 고문에 의해용공조작돼 처벌됐다”며 “이 의원의 경우 연행 후 2∼3일간 주먹 쥐고 물구나무 서기 등 고문을 받았다”며 당시 고문실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반면 정 의원은 논란에 대비해 백서까지 만들었다며 고문 조작 주장을 일축했다.

또 주범으로 거론된 황인오씨에 대한 정형근 의원의 정치입문 제의의 사실 여부와 이선실의 실체, 즉 북한 거물인 이선실과의 동명이인 여부 등도 주요 쟁점이다.


◇ 중부지역당 사건 관련 일지 - 1992.10= 안전기획부,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발표.

- 98.8.15= 92년 구속기소된 사건의 주역들 중 황인오씨와 김낙중, 손병선씨 등3명 8.15특사로 형집행정지 또는 가석방.

- 2000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서열 19위로 상승) 이선실 심장병 사망 확인.

- 2004.12.14 유선호-정형근 의원 KBS 라디오 출연, ’이철우 의원’ 놓고 공방전.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02.03 09:34 12'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502/2005020301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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